[박현택 문화산책] 멋진 사나이

입력 2019. 11. 07   14:15
업데이트 2019. 11. 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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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현 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박 현 택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작가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군가 ‘멋진 사나이’의 일부다. 그렇다. 군인은 멋져야 한다. 멋진 군인은 고개를 숙인 채 어슬렁거리며 걷지 않는다. 멋진 군인이라면 늘어진 티셔츠에 밀짚모자 따위를 삐딱하게 쓰고 있어서도 안 된다. 단정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늠름함과 굳건함을 표출해야 한다.

멋? 그런데 멋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 공 선생(孔子)의 말을 빌리자면 형식과 내용이 조화롭게 결합된 상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말한다. 문은 형식을, 질은 내용을 뜻하는데, “문이 질을 따라가지 못하면 촌[野]스러워지고 문이 질을 압도해 버리면 추(醜)해진다”고 했다. 촌스럽다는 것은 꾸밈이 어설퍼 밋밋해졌다는 것이고, 추하다는 것은 꾸밈이 지나쳐 천박해졌다는 것이다. 형식(꾸밈)은 필수적이지만, 꾸밈에만 몰두하면 거짓이 생겨날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문질빈빈이란 화려하지만 번잡하지 않고, 간결하지만 싱겁지 않은 균형 상태를 말한다.

‘워리어 플랫폼(Warrior Platform)’이란 ‘육군의 미래형 전투체계’로 각종 장비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전투복·전투화·헬멧·수통·조준경·소총 등 장비 전반을 첨단화하는 종합계획으로 전투용 보안경도 포함될 거다. 이 품목은 우선 눈을 보호하고 항상 동일한 시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겠지만, 자외선 차단용 렌즈로 교체할 수도 있고 마침내 방탄기능까지 장착되면 꽤 요긴한 장구가 될 것이다. 폼 나는 전투용 보안경은 현대 보병의 필수 아이템 중 하나다. 군수용품에도 디자인이 개입돼야 할 이유는 많다.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생김새를 좋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이들은 디자인을 실내장식 혹은 소파나 커튼의 천처럼 겉치장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의 의미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근본적인 영혼으로서 제품과 서비스가 겹겹이 쌓이며 사물의 바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단순한 꾸미기가 아니라 제대로 ‘멋을 내는 것’을 말한다.

혹자들은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들이 멋을 부린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게 무슨 얘긴가? 멋없는 군인을 제대로 된 군인이라 할 수 있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나 수류탄 훈련 중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안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처럼 귀감이 될 만한 군인이라면 그 누구도 멋지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강건한 체력과 용맹한 품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언행을 잘 관리한 이들이다. 제대로 된 군인이라면 문질빈빈이 실현된, 잘 디자인된, 멋있는 군인이어야 한다.

일상용어 중에 ‘야(野)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야(野)하다는 것은 본바탕에 걸맞게 꾸미지 못해 촌스러워진 것을 이르는 것이다. 반면 본바탕에 비해 꾸밈이 앞서면 추해진다고 했다. 투박하지도 번드르르하지도 않은 것, 그게 진정한 멋이다. 멋은 군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다. 자고로 군인은 멋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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