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철통요새, 살아 있는 평화의 역사로

입력 2019. 02. 14   17:06
업데이트 2019. 02. 1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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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보존 고성GP 현장을 가다



동해와 금강산을 끼고 능선 한복판에 우뚝 선 ‘강원도 고성GP’. 왼쪽에는 금강산 채하봉과 백마봉, 오른쪽에는 동해의 푸른 바다와 해금강, 구선봉과 감호가 위치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고성=이경원 기자
동해와 금강산을 끼고 능선 한복판에 우뚝 선 ‘강원도 고성GP’. 왼쪽에는 금강산 채하봉과 백마봉, 오른쪽에는 동해의 푸른 바다와 해금강, 구선봉과 감호가 위치해 ‘천혜의 절경’을 자랑한다. 고성=이경원 기자


  4개월 전만 해도 긴장감이 감도는 최전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철수를 완료한 뒤 한동안 비어있던 강원도 고성군 보존 GP(감시초소)가 남과 북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처음으로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방부는 지난해 9·19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시범 철거된 GP 11곳 가운데 남북 합의에 따라 보존하고 있던 고성 GP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남북은 시범철거 GP 중 각각 1곳을 역사적 상징성과 평화적 활용 가능성을 고려해 보존하기로 했다. 고성 GP는 1953년 7월 처음으로 임무를 개시, 사실상 정전협정이 발효되면서부터 사용돼 온 곳으로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동부전선 최북단에 자리 잡은 고성 GP는 남북출입사무소가 있는 동해북부선 제진역 인근에 있다. 제진역에서 출발해 검문소를 지나 수십 분을 달리면 경계초소(GOP) 역할을 했던 통문에 도착하게 된다. 


육군장병들이 ‘강원도 고성 GP’의 기자단 공개를 마친 뒤 GP 통문을 닫고 있다. 고성=이경원 기자
육군장병들이 ‘강원도 고성 GP’의 기자단 공개를 마친 뒤 GP 통문을 닫고 있다. 고성=이경원 기자


통문을 넘어 비무장지대(DMZ)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 비로소 60여 년에 걸친 대립의 역사를 체감할 수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내에는 지뢰가 설치돼 있는데 가끔 멧돼지 같은 산짐승들이 지뢰를 밟아 폭사하는 경우도 있단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청정지대’이지만 역설적으로 60여 년 전 전쟁의 상흔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가니 그제야 GP가 보인다. 마치 고성(古城)을 연상케 하는 GP의 겉모습은 이곳이 대한민국 최초의 GP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GP 상부 고가초소 주변 아래의 철거된 철조망 담 사이로 고작 580m 앞에 철거 완료한 북측 GP(가운데 황토색)가 보인다. 오른쪽 아래의 하얀 길이 북측 GP로 이어지는 평화의 오솔길. 고성=이경원 기자
GP 상부 고가초소 주변 아래의 철거된 철조망 담 사이로 고작 580m 앞에 철거 완료한 북측 GP(가운데 황토색)가 보인다. 오른쪽 아래의 하얀 길이 북측 GP로 이어지는 평화의 오솔길. 고성=이경원 기자


동해와 금강산을 주변에 끼고 능선 한복판에 우뚝 선 ‘고성’의 겉은 녹색 페인트와 위장무늬로 감싸 그 존재감을 더하고 있었다. 주변으로는 뾰족뾰족한 철조망이 둘러쳐 있는데 군에 따르면 철조망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무기가 부족한 남북이 상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이곳저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온몸으로 맞은 철조망은 이미 삭을 대로 삭아 빨갛게 녹이 슨 상태였다.  

 

철조망 속 견고한 요새 역시 더는 총, 대포,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으로 변했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철통 같은 대비태세를 유지했던 곳이라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장병들이 생활하던 생활관 안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건물 안을 감돌았다.

생활관을 지나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얼마 전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주단(紬緞)은 이곳에 사람 발길이 끊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이곳에는 이제 쓸모가 없어진 공용화기 진지가 형태만 겨우 남은 상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불과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북한의 GP가 보인다.

북한은 시범철수 당시 GP를 폭파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북한 GP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공터만 남았다. 건물이 아예 없어진 만큼 북한도 이곳에 더 이상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지 않다.


장병들의 생활공간인 GP 하부의 교통호와 이어지는 탄약고, 선명한 글씨가 이곳이 탄약고였음을 알려준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고성=이경원 기자
장병들의 생활공간인 GP 하부의 교통호와 이어지는 탄약고, 선명한 글씨가 이곳이 탄약고였음을 알려준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고성=이경원 기자


다만 순찰하는 군인들이 이따금 포착된다고 한다. 앞서 남북은 시범철거 이후 서로의 GP를 검증해 병력과 화기가 완전히 철수됐는지를 확인했다.

보존 GP에 있던 화기 진지는 이제 콘크리트 벽과 모래주머니 몇 개 정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철수 전만 하더라도 각종 중화기가 거치 됐던 곳이다. 탄약고 역시 흔적을 감춘 상태였다.

고성 GP는 금강산 채하봉과 백마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해금강, 구선봉과 감호가 위치해 ‘천혜의 절경’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감호는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북한 GP 뒤로는 이른바 ‘469고지 전투’가 벌어졌던 월비산이 보인다. 6·25 전쟁 당시 남북은 월비산 고지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인근에는 당시 동해에서 닻을 내리고 함포사격을 하던 모습에서 이름을 딴 ‘앵카 고지’도 있다. 양쪽이 시범철수 이후 상호검증을 위해 개척한 ‘평화의 오솔길’에는 흰 눈이 쌓여 있었다.

이날 확인한 GP는 사실상 텅 빈 공간이었다. 전기, 수도가 끊긴 것은 당연하거니와 아예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대(無人地帶)로 변해 있었다. 이 텅 빈 공간은 곧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GP 하부의 장병 생활 공간과 미로처럼 이어지는 교통호, 진지방어에 사용되는 총안구가 있는 산병호(오른쪽). 고성=이경원 기자
GP 하부의 장병 생활 공간과 미로처럼 이어지는 교통호, 진지방어에 사용되는 총안구가 있는 산병호(오른쪽). 고성=이경원 기자


문화재청은 14일 고성 GP의 문화재적 가치를 검토하기 위해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위원회의 심층적인 검토·심의 절차를 거쳐 고성 GP의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우리 군의 엄중한 대비태세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우리 군은 앞으로도 물샐 틈 없는 대비태세를 유지하며 남북 군사합의 이행을 진행할 계획이다.

여전히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김동진(대위) GOP대대 중대장은 “우리 장병 모두는 군사대비태세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에서 확고한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 관계자 역시 “평화 분위기가 지속할수록 장병들은 더욱 경각심을 갖고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맹수열 기자 guns13@dema.mil.kr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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