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해석된 손자병법…2500년 전 古文에 생명력

입력 2017. 12. 11   17:43
업데이트 2017. 12. 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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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리링의 손자 강의:전쟁은 속임수다』


20년간의 고증·여러 판본의 비교연구를 통한 명료한 해석 ‘눈길’

내편 6편·외편 5편으로 체계적 재분류…최고 수준 고문헌적 성취

 



우리는 『손자병법』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란 구절을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선승구전(先勝求戰)’의 글귀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500년 전의 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손자병법』은 잘 알려진 대로 서기전 500년경 중국 춘추시대의 손무(孫武)가 쓴 책이다. 고전 중의 고전이다. 『손자병법』의 인기는 군사전략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경영이나 인간관계의 필독서로도 인기가 높다. 서구에서 『논어』보다 더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고전이 현대의 명저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다. 이 책의 저자 리링(1948년생)은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고고학·고문자학·고문헌학 등 삼고(三古)의 대가로 통한다. 그는 20년간의 고증작업과 여러 판본의 비교연구를 통해 가장 깊이 있고 정치한 해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내용에 따라 체계적 재분류

그렇다면 ‘리링의 손자 강의’는 어떤 점에서 현대적 명저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가. 무엇보다 내용의 체계적인 재분류다. 『손자병법』은 모두 13편에 600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책자다. 그는 이를 내용에 따라 이치가 가장 깊고 내용이 중요한 6편을 내편으로 묶고 나머지 부대 기동과 관련된 5편을 외편으로 분리했다. 내편은 다시 「계(計)」 「작전(作戰)」 「모공(謀攻)」을 다루는 권모(權謀) 부문과 「형(形)」 「세(勢)」 「허실(虛實)」을 논하는 형세(形勢)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가 전략적 수준의 계획이라면, 후자는 전술적 수준의 운용 원리를 담고 있다. 외편은 부대 기동과 관련된 것으로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 「지형」 「구지(九地)」 등 5편의 군쟁(軍爭) 부문과 「화공(火攻)」 「용간(用間)」을 다루는 기타 부문으로 나누었다. 순서를 바꾼 것이 아니라 분류를 새롭게 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함으로써 작전 수준의 권모와 전술적 차원인 형세의 논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부대 기동과 관련된 군쟁에 대한 논의로 연결함으로써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손자는 계획단계에서부터 승리에 필요한 요인들을 따져볼 것을 강조한다. 1편의 제목이 「계(計)」인 이유다. 당시 관점에서 손자는 국민적 합의, 천시, 지리, 장수의 자질, 동원체제 등 다섯 가지 일을 계산해봐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우세하더라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했다. 설령 전쟁이 벌어진다 해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우세하더라도 실제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손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온 개념이 ‘세(勢)’다. 세라는 것은 전투 상황에 따라 변화를 만들어내며 이로움을 취하는 것이다. 이때 상대를 잘 속일수록 유리하다. “적이 대비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현”할 때 충격은 극대화된다. ‘전쟁이 속임수(兵者詭道也)’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 위태롭지 않다. 그렇다고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승리하는 데는 적의 도움이 필요하다. 적이 속아주어야 한다. 아무리 유리한 위치에서 우월한 전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적이 충분히 대비한다면 승리를 일궈낼 수 없다. 승패에 관련된 손자의 통찰이 빛나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압도적인 전력을 유리한 대형으로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군형」편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선승구전’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길 수 있는 군형 배치를 한 다음 전투를 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형(形)은 승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勢)와 결합하지 않으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





형세와 기정의 문제

여기서 형과 세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손자병법』의 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리링 교수가 가장 열심히 설명하고자 한 내용이다. 내편의 핵심적인 내용은 형과 세의 관계 속에서 승리의 방정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손자는 형과 세의 관계를 “천 길 높은 계곡에 모아두었던 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원문에서는 이를 형(形)이라 정의했지만, 리링 교수는 여기서 형과 세를 구분한다. 물을 높은 계곡에 저장하는 것 자체는 형에 가까운 것이고, 이를 방류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은 세라는 것이다. “‘형세는 둥근 돌을 천 길 높이의 산에서 굴리는 것과 같은데, 이것이 ‘세’다”라고 했던 「세(勢)」편 말미의 비유와 유사하다. 둥근 돌을 천 길 높이에 붙들어 두는 것은 형이지만, 이를 굴려서 산세를 타고 내려가게 하는 것은 세로 본다. 형이 ‘잠재된 에너지(potential energy)’라고 한다면, 세는 이러한 ‘에너지의 방사(released energy)’를 의미한다. 이러한 예리한 구분은 전적으로 리링 교수의 공헌이다.

기(奇)와 정(正)의 관계 또한 명료하게 설명된다. “무릇 전쟁은 정직함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함으로 승리한다”는 문장에서 정(正)은 정공법으로, 기(奇)는 후위나 측면 공격쯤으로 해석돼온 게 일반적이었다. 조조(曹操)의 주석에서 시작된 이러한 해석은 기정의 관계를 도식화함으로써 생명력을 잃게 한 주범이었다.

이와 달리 리링 교수는 기(奇)의 ‘기발함’에 주목한다. 기발하다고 한 작전이라도 상대가 읽고 있으면 기발한 것이 아니다. 기발함의 조건은 의도나 형태가 아니라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성’이다. 형(形)이 보인다면 예상할 수 있다. 형이 보이지 않을 때 기발함이 살아난다. 결국, 상대의 예상을 넘어서는 기발함이 강력한 세(勢)를 드러내는 것이며,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6편의 「허실(虛實)」은 기정의 확대된 형태다. “군대의 형세는 견실한 곳을 피하고 허점을 공격한다”는 원문 역시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함의 중요성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상대성’이다. 모든 전투는 상호작용의 결과다. 그러므로 “적의 변화에 따라 승리를 빼앗는 사람을 신(神)”이라 하는 것이다. 신의 경지에 오른 장수만이 상황변화에도 적절히 대응하며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의 7편 이후는 주로 전술 운용과 부대 기동에 관한 내용이다. 병력이동에는 지리와의 관계가 논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정학적 내용이 많다. 그런데도 역시 핵심은 “군대는 속임수로 일어나고(兵以詐立) 이익으로 움직이며 분산과 집합을 변화로 삼는다”라는 언명이다. 형세를 발현하는 데 적을 속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유일한 규칙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리링 교수가 보여주는 명료한 해석은 철저한 고증과 문헌비교의 결과다. 지금까지 한문학자나 군인 출신 연구자들의 번역본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고증을 통해 2500년 전의 고문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전인수 격 설명에 부정적

그렇다고 저자가 『손자병법』을 기업경영의 지침서로 삼거나 인간관계에 적용하자는 주장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부정적이다. “대부분 원서는 내버려둔 채 읽지 않고 다만 이론을 어떻게 실제로 적용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나는 대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손자병법』을 읽는 방식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정확한 의미의 이해 없이 아전인수 격으로 문장만 따오는 방식의 글 읽기는 오독(誤讀)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오래된 고전이니만큼 더 정확한 해석과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손자병법』의 번역본이 아니다. 중국 고대사회와 전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고 수준의 고문헌적 성취가 담겨 있다. 거의 1000쪽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될 수 있지만, 『손자병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저술을 갖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손자병법』을 좀 안다고 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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