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되게 하라’… 자각과 합리적 사고로 도전을

입력 2017. 10. 30   18:18
업데이트 2017. 10. 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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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내가 이처럼 고민한다고 해서…



 

혹시 ‘척서단’ ‘광제단’ ‘제중단’ ‘향유산’이라는 약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이 약들은 일사병 치료제로, 더위를 먹었을 때 구토를 완화시키고 몸에 기운을 돋워 주는 약이었습니다. 향유산 외에는 정확한 성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 약의 재료에 따라 가격과 효능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조의 특별지시로 연구 개발한 신약 ‘척서단’

백성에게 실질적 혜택 가도록 환 형태로 제작

‘발상 전환’… 대량생산 한계,연구·기술로 극복

10년 걸릴 화성 건축 공사 2년8개월 만에 완공



이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이 ‘척서단(滌暑丹)’입니다. 척서단은 화성을 건축할 때 일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정조가 특별지시를 내려 연구 개발한 신약입니다. 더위를 먹어 호흡이 가빠지거나 열이 나면 증세에 따라 1정 또는 반 정을 맑은 물에 타서 마시도록 했는데요. 1794년 6월 25일, 화성 건축 현장의 일꾼들에게 4000정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왜 특별히 신약까지 개발해 인부들에게 제공했던 걸까요? 조선 시대 평민들은 평소에 영양이 부족했기 때문에, 특히 혹서기에 일할 때는 일사병의 위험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약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지만, 문제는 약이 비쌀 뿐만 아니라 재료도 귀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공사장에서 일사병 환자는 거의 방치되거나 그늘에서 쉬게 하는 정도의 조치밖에 할 수 없었죠.

화성 건설 일꾼 위해 만든 ‘척서단’

 

그러면 ‘혹서기에는 공사를 중단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텐데요. 교통이 불편했던 이 시대에는 공사를 중단했다가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수십 리를 걸어 집으로 오가는 중에 일사병에 걸릴 위험도 높았고, 또 이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이라, 고향으로 돌아가도 먹고살 길이 막연했죠. 백성들의 이런 고충을 잘 알고 있었던 정조는 어느 날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화성의 건설 현장에서 공사를 감독하고 공사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눈앞에 어른거려서 잠시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고민하게 된다.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처럼 고민하고 고통받는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조선 시대 수많은 왕과 위정자는 혹서기나 혹한기가 오면 백성을 걱정하는 위민가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고백처럼 그런 위민가가 정작 백성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됐을까요? 자신의 양심을 위로해서 자기에게 보탬이 될 뿐이었지요.

그래서 정조는 실질적인 조처를 고민했고, 그중 하나가 일꾼들에게 약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약은 너무 비싸고 약재를 조달할 방법도 없었죠.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대량 제조가 가능한 새로운 재료와 처방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조는 척서단을 만들었던 것이죠. 정확한 성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싸고 대량 제조가 가능했던 건 분명합니다. 더욱이 척서단은 ‘환’ 형태였는데요. 탕제로 복용하던 보통의 한약은 공사 현장에서 응급약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왕이 하사… 사기·자부심 크게 기여

 

척서단이 주는 교훈은 대량생산의 한계를 연구와 기술로 극복해냈다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지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애민정신만으로 나온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작업의 능률, 생산성 같은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산이었던 것이지요. 화성 건설 공사는 임금제 고용노동을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시행한 최초의 공사였습니다. 그 덕에 공사비는 예상보다 3배 많이 지출됐지만, 처음에 10년을 예상했던 공사를 2년8개월 만에 완공할 수 있었지요. 합리적인 경영의 힘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임금만이 아니라 척서단 제공과 같은 복지정책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척서단은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부들의 사기와 자부심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죠.

조선 시대에 약은 정말 구하기 힘든 물품이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권력자나 양반과 연줄이 닿아야만 구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화성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에게 성분은 좀 다르지만, 왕이 하사한 약이 배포된 겁니다. 인부들의 사기가 얼마나 높아졌을지 짐작이 되지요?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우리에게는 항상 새로운 과제가 닥칩니다. 정조의 사례만 보면 현대인에게는 너무 쉽고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약을 제조하고 나눠주는 발상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에 대해 정조와 같은 자각과 합리적인 사고로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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