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가칠봉전투 참전용사 김영창 옹

이원준

입력 2026. 06. 09   17:38
업데이트 2026. 06. 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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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 강원 양구군

75년 건너 전우 향한 마지막 경례
백세 노병, 다시 그 길에 서다

육군21사단이 준비한 초청행사서 가칠봉전투 살아있는 전설, 전장 찾아 전우 추모
35명 중 4명만 살아남은 치열한 고지전 증언 “나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 회고
후배 장병 만나 호국 가치·사명감 전수…“무적 백두산부대 일원으로 최전방 수호” 다짐

강원 양구군 해안분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모습이 화채 그릇을 닮아 ‘펀치볼(Punch Bowl)’로 불리는 이곳은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격전지였다. 도솔산전투, 펀치볼전투, 가칠봉전투가 이어진 이 땅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웅의 피와 땀이 스며 있다. 고지를 두고 벌어진 전투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스러졌고, 그들의 희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탱하는 토대가 됐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강원 양구군을 찾았다.  글=이원준/사진=이윤청 기자

강원 양구군 해안분지 북서쪽에 있는 가칠봉은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진 곳이다. 사진은 해발 1242m 가칠봉 관측소에서 바라본 우리 철책과 펀치볼 모습.
강원 양구군 해안분지 북서쪽에 있는 가칠봉은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진 곳이다. 사진은 해발 1242m 가칠봉 관측소에서 바라본 우리 철책과 펀치볼 모습.



75년 만에 전장으로 돌아온 노병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강원 양구군 대우산 정상. 짙은 녹음이 내려앉은 산자락 북쪽 방면으로 해발 1242m 가칠봉이 우뚝 솟아 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금강산 연봉의 마지막 봉우리로 알려진 산이다. 가칠봉이 있어야 비로소 금강산 1만2000봉이 완성된다는 의미에서 ‘더할 가(加)’ 자를 쓴다.

가칠봉전투는 1951년 말 가칠봉을 비롯한 해안분지 북방 능선에서 국군5사단이 북한군과 벌인 고지 쟁탈전이다. 그해 7월 휴전회담이 시작되면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북한군은 동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가칠봉 일대를 사수하려 했고, 국군은 이를 탈환해 펀치볼을 완전히 확보하려 했다.

가칠봉이 훤히 보이는 대우산에선 이날 육군21보병사단이 준비한 호국영웅 초청행사가 열렸다.

태극기를 단 회색 차량이 행사장에 들어서자 장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차량으로 향했다. 윤기선(소장) 사단장을 비롯한 장병들은 꽃다발을 준비해 행사 주인공을 맞이했다. 차량에서 내린 호국영웅 김영창 옹은 환한 미소로 후배 장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주민등록상 1930년생이지만 실제로 1927년생인 김옹은 올해 백수(白壽)를 맞았다. 세월이 흘러 까만 머리는 백발이 됐지만, 75년 만에 전장으로 돌아온 노병의 눈빛은 또렷했다. 김옹은 장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면서 연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가칠봉이 보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말없이 우뚝 솟은 봉우리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75년 전 자신의 청춘이 머물렀던 곳, 그리고 수많은 전우가 잠든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일 테다.

헌화와 묵념의 시간. 김옹은 후배 장병들과 함께 전사자 명부 앞에 섰다. 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는 함께 싸운 전우들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몸이었지만 경례하는 손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한세월을 건너 다시 전장을 찾은 노병(老兵)의 눈빛에는 전우를 향한 그리움과 조국을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5일 대우산 정상을 찾은 김영창 옹이 육군21보병사단 장병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지난 5일 대우산 정상을 찾은 김영창 옹이 육군21보병사단 장병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선배 전우를 추모하며 경례하고 있는 장병들.
6·25전쟁에서 전사한 선배 전우를 추모하며 경례하고 있는 장병들.

 

GOP대대 장병들에게 75년 전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영창 옹.
GOP대대 장병들에게 75년 전 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김영창 옹.



“조국을 지키겠다는 생각뿐”

김옹은 1951년 5월 자원입대했다. 당시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는 등 1·4 후퇴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던 시기였다.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전쟁하러 군대에 간 거예요.” 후배 장병 앞에 선 김옹은 기억을 75년 전 그날로 되돌렸다. 김옹에 따르면 입대 전 그는 공산당 치하에서 인민재판을 세 차례나 받았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청년에게 조국 수호는 선택이 아닌 사명이었다.

“훈련할 때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김옹은 제주도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부산으로 이동했다. 최전방 근무를 자원해 그해 11월 중순 기차를 타고 양구에 도착했다. 국군5사단 35연대 2대대 3중대 3소대, 그가 배치된 부대였다.

“기차에서 내리니 밤이었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겨울옷 없이 훈련복만 입고 있었는데 정말 추웠습니다.”

적과 대치한 최전방은 치열하고 참혹했다. 보급품을 짊어지고 가칠봉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고 김옹은 회고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수 시간씩 걸어야 했다. 배고픔과 추위는 늘 병사들을 괴롭혔다.

“산에 한 번 올라가려면 여섯 시간씩 걸어야 했습니다. 굶어서 죽고, 다쳐서 죽고, 후송을 못 해서 죽고…. 사람이 정말 많이 죽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전장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명고지 탈환한 순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가칠봉전투는 휴전회담이 시작된 이후 계속된 치열한 고지전 가운데 하나였다. 가칠봉 탈환에 성공한 국군은 가칠봉과 마주한 무명고지(일명 김일성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공격과 가칠봉을 사수하기 위한 방어를 치열하게 주고받았다.

전투 현장에는 M1 소총 한 자루와 수류탄 다섯 발을 든 김옹도 있었다. 32명으로 구성된 김옹의 소대는 고지를 놓고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전투는 처절했다. 소대원 32명이 함께 작전에 투입됐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였다.

“전투가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이 나까지 네 명뿐이었어요. ‘이 고지를 빼앗기면 조국을 빼앗긴다’는 일념으로 폭우와 어둠 속에서 북한군 지하 벙커를 무력화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7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전우들을 잃고, 무명고지를 탈환한 순간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 듯했다. 김옹 역시 전투 중 오른손 검지를 다쳤다. 장병들의 분투 속에 국군은 결국 가칠봉을 비롯한 펀치볼 북쪽 능선을 완전히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해안분지를 아군 통제권 안에 두며 동부전선 안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동시에 국군의 단독작전으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우리 군의 작전 수행 능력과 전투 의지를 입증한 역사적 승리로 평가받는다.




호국의 정신은 이어진다

이날 행사에서는 현재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GOP대대 후배 장병들과의 만남도 마련됐다. 6·25 참전용사의 후손이자 최전방 경계병으로 임무를 수행 중인 정우진 상병은 6·25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헌시를 낭독했다. 청년의 목소리가 대우산 능선을 따라 울려 퍼지자 장병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김옹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어진 대화 시간. 후배 장병들은 참전용사에게 전쟁 당시의 상황을 물었고, 김옹은 자신의 경험을 하나하나 들려줬다. 김옹은 후배들을 바라보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조국을 지켰던 75년 전 그때의 내 모습과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같습니다. 참말로 씩씩하고 대견스럽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장병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국민은 여러분을 믿고 있습니다. 과거의 우리가 그랬듯, 여러분도 후손들을 위해 우리나라를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 지휘관부터 이등병까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임무를 수행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믿고 이 늙은 군인도 발 뻗고 편히 쉬겠습니다.”

노병의 진심 어린 말에 장병들의 눈빛도 더욱 단단해졌다. 행사에 참석한 장병들은 “안보교육에서 이야기로만 듣던 가칠봉전투 영웅을 직접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며 “선배 전우가 피로 지켜낸 이 땅을 철저한 대비태세로 지켜내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득기(중령) GOP대대장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가칠봉전투의 살아 있는 전설이신 김옹을 모신 것은 부대 전 장병에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이어받아, 무적의 백두산부대 일원으로 최전방 지역을 완벽히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칠봉에서 나라를 지켜낸 청년은 어느덧 100세를 앞둔 노인이 됐다. 하지만 조국을 향한 마음만큼은 여전히 75년 전 그대로였다. 그가 목숨 걸고 지켜낸 최전방에서는 오늘도 젊은 장병들이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우리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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