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함께하는 전쟁사
홀로코스트와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
전 세계가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나뉘어 6년간 싸웠던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는 매우 컸다. 군인, 민간인을 포함해 약 5000만~7500만 명이 숨졌다. 특히 유대인은 600만여 명이 학살됐다. 여기에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정치범 등 인종 청소 대상을 모두 포함하면 1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배타적 차별주의가 만들어낸 최악의 비극이었다. 히틀러는 게르만 우월주의, 민족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유대인과 슬라브족은 열등한 민족이고, 독일제국을 오염시키고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탄압했다.
나치의 뉘른베르크법 제정과 이민족 차별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에는 유대인이 운영하는 사업에 대한 국가적 차단이 이뤄졌다. 1935년에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금지하고 유대인은 독일 국기를 게양할 수도, 공무원이 될 수도 없다는 내용을 담은 뉘른베르크법을 만들어 유대인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가했다. 뉘른베르크법은 ‘시민은 독일 국민 혹은 독일 혈통으로 독일 국민과 독일을 위해 충실히 봉사하기 위해 기꺼우면서도 적절히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정의해 이민족은 독일 시민이 아님을 명확히 할 뿐 아니라 유대인 탄압을 본격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1938년부터 유대인에 대한 폭력이 발생했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게토(Ghetto)를 만들어 유대인을 격리했다. 이러한 인종 말살 정책은 히틀러의 친위대인 SS부대(Schutzstae)가 담당했다. 본격적인 대규모 집단수용소는 1940년 5월부터 조성됐다. 독일 국경과 인접한 폴란드 지역에 아우슈비츠 1호가 건설됐고, 1942년 2호와 3호가 잇따라 세워졌다. 집단학살수용소는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운용한 곳으로 아우슈비츠를 포함해 트레블랑카 수용소, 헤음노 수용소 등 6곳이었는데, 그중 아우슈비츠가 가장 악랄했다. 집단학살수용소에는 가스실, 생체실험실, 시체소각장 등이 세워졌다.
집단수용소 건설과 대량 학살
대량 학살은 주로 가스실에서 이뤄졌다. 기록에 따르면 기차를 통해 들어온 포로는 그대로 가스실로 보내지거나 때로는 군의관의 신체검사를 거쳤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접수 플랫폼으로 보내져 가지고 있는 모든 물품을 압수, 전쟁자금으로 활용했다. 이후 방역을 위해 샤워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알몸으로 가스실로 몰아넣었다. 안심시키기 위해 때로는 수건과 비누를 주고, 샤워 후에 줄 커피가 식으니 빨리 씻을 준비를 하라고 말해 다 들어가면 ‘입욕’이라는 신호와 함께 가스를 주입해 학살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잔인무도하며 끔찍한 일이다. 유대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나치는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할 때도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을 틀었다. 유대인은 이 음악을 들으면서 죽어갔다고 한다. 이 곡을 ‘죽음의 선율’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금기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인 학살을 규탄하고 추모하는 ‘바르샤바의 생존자’
20세기 최고의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쇤베르크(1874~1951)는 ‘바르샤바의 생존자, Op. 46’이란 곡을 통해 학살을 규탄하고 유대인을 추모했다.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1911년 그가 작곡한 ‘구레의 노래’는 당시 말러의 8번 교향곡만큼 주목받기도 했다. 그가 완성한 ‘12음 기법’은 음악사적으로 큰 업적이기도 하다. 쇤베르크는 1925년 베를린 예술학교의 교수로 임용됐지만 나치 정권이 들어서며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전쟁이 끝난 후 1947년 미국에서 작곡된 곡으로, 폴란드 내 유대인 생존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은 그가 완성한 12음 기법으로 작곡됐으며, 마치 생존자가 증언하는 듯한 내용의 내레이션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곡의 첫 번째 부분은 한 유대인이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집합해 있던 중 지시하는 부사관의 총 개머리판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유대인이 그들의 기도문을 찬송하는 내용을 합창으로 다뤘다.
내레이션에 나타난 학살 현장의 생생함과 공포
내레이션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사가 고함쳤다. ‘집중! 똑바로 서! 아니면 내가 개머리판으로 도와줄까? 그래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도 원한다면 말이야.’ 부사관과 그의 병사들이 마구 때렸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건장하건 아프건, 잘못이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울부짖는 소리와 신음이 듣기에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매우 세게 얻어맞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쓰러져 일어날 수 없는 우리는 모두 머리통을 얻어맞았다. 나는 정신을 잃은 것이 틀림없다. 그다음 나는 한 군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사관은 우리를 치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정신을 반쯤 잃은 채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시작부터 관악기의 날카로움이 들리는데, 마치 무엇인가 비상 사태가 발생해 경고하는 듯한 상황을 연출한다. 중간중간의 트럼펫은 불협화음처럼 연주되며 삭막한 분위기를 더한다. 드럼과 베이스드럼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잔잔한 듯하다가 커지기를 반복한다. 느려졌다 빨라지기를 반복하는 팡파르는 수용된 유대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쇤베르크는 이 음악을 통해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을 내레이션 기법을 통해 알리고 유대인 학살이 얼마나 잔인하게 이뤄졌는지를 고발하고자 했다.
‘바비야르’와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쇼스타코비치도 1962년 작곡한 ‘교향곡 13번, 바비야르’를 통해 유대인 학살의 잔혹상을 고발했다. 바비야르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근처의 마을 이름으로, 독·소전쟁 중이던 1941~1943년 나치 친위대인 아인자츠그루펜 주도로 3만여 명에 달하는 유대인과 집시,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소련군 포로들이 집단 학살된 곳이다.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1악장에서는 바비야르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회고와 학살자의 광기, 은둔 중 발각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안네 프랑크의 일화, 반유대주의에 대한 증오가 차례로 이어지는 시가 사용됐다.
전쟁 기간 중 특히 포로수용소에서 아주 특별한 연주회도 있었다. 바로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라는 곡이다. 이 곡은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1908~1992)이 폴란드의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작곡, 연주했다. 드뷔시를 잇는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였던 메시앙은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1940년 그는 포로로 잡혀 질레지아에 있는 수용소에 수감됐다. 당시 수용소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같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8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을 작곡했다. 메시앙과 동료들은 1945년 1월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연을 열었다. 연주가 끝난 뒤 전쟁캠프의 신문은 ‘마지막 음이 울리고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이 작품의 위대함을 확립시켰다’고 전하면서 성공적인 연주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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