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옆집에서 강아지가 짖었어요
얼굴 없는 그림자가 문밖에 서 있나요
복도를 함께 쓰면서 바람을 공유했죠
문 앞의 택배상자엔 강아지 사료뿐
벨을 힘껏 눌러도 반응이 없더군요
일면식 한 번도 없는 달력이 넘어가요
어디선가 흘러나온 아나운서 일기예보
내일의 날씨는 구름 가끔, 흐리다네요
여전히 모르는 얼굴이 이웃 추가돼 있네요
<시 감상>
눈 밝은 시인이 들여다보는 시선을 따라간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중첩된 듯한 ‘복도’에서 우리는 ‘바람을 공유’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일면식 한 번도 없’이 ‘달력이 넘어’갈 수 있는 건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시대의 언저리에서 서로의 관계가 ‘모르는 얼굴이 이웃 추가돼’ 듯 클릭 한 번으로 가볍게 생성되고 삭제될 수 있는 건가.
100여 년 전 헝가리의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프리제시 카린시는 『연쇄』라는 단편소설에서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5명의 지인과 연쇄적인 관계를 통해 연결할 수 있다”고 썼다. 당시 이 소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잊혔지만, 30여 년이 지난 뒤 하버드대의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실험으로 사회적 네트워크 구조에 관한 ‘6단계 분리’ 이론의 씨앗이 됐다. 실험 결과 중앙값은 5.5명으로 카린시의 통찰과 거의 일치했고, 소수점 이하를 반올림해 6단계로 불렀다. 6단계 이론은 70억 명의 지구인은 누구나 6단계만 거치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매우 ‘좁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여기서 ‘좁은 세상’은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된 웹의 특성에서 갑자기 도래한 신세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좁은 세상’의 인적 관계망은 인간 사회 구조에 내재한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 접촉하고 관계 형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현대문명을 선도하는 디지털 기술은 그런 사람들의 소통 열망을 물리적·시간적 거리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 것이다.
디지털로 연결된 가상의 세계라고 현실과 무관하게 따로 꽃피고 지는 나라일 순 없다. 빛과 어둠은 만물에 내장된 속성일지라도, 현실의 세계가 밝은 빛으로 가득하면 가상의 세계 또한 맑은 날로 지속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서로 이웃’으로 살아가는 관계는 오래돼도 여전히 아름다울 듯싶다. 눈 밝은 시인이 드러낸 행간에 그 속 깊은 마음의 색채가 일렁이는 듯하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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