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 이찬혁 ‘에로스’
이달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정규 앨범
1집에 이어 또 ‘죽음’ 주제로 내세워
“결핍 마주했을 때 느끼는 자유” 노래
과감한 코러스 풍성한 화음 더하고
난해한 주제 친근한 멜로디로 풀어내
우습지 않고 치열한 ‘예술가의 도전’
“왜 이런 특이한 동작을 좋아하세요?” 안무 연습에 열중하는 악뮤(AKMU) 이찬혁에게 카메라맨이 묻는다. 엉덩이를 넣었다가 빼고, 갈지자로 발을 밟고, 유령처럼 손을 내미는 동작 시안을 쭉 지켜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찬혁은 짧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제가 막 웃긴 걸 좋아하는 줄 알아요. 웃기려고 한 적 없어요.”
기행, 파격, 행위예술…. 이찬혁의 솔로 경력에 따라붙는 수식이다. 평범한 일상을 비디오 아트로 가공하고, 독특한 패션 감각을 뽐내며 범상치 않은 홀로서기의 욕구를 내비친 이찬혁은 2022년 첫 단독 정규 앨범 ‘에러(ERROR)’를 통해 본격적으로 동생 수현과의 악뮤 활동과 단독의 이찬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구분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절, 더 나아가 자기 파괴였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침묵하고, 뒤로 돌아선 채 노래를 불렀다. 무대 위에서의 삭발 퍼포먼스는 지금까지도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유행어와 함께 기억된다.
음악을 들어본 이들의 감상은 사뭇 달랐다. 콘셉트 앨범 ‘에러’에서 이찬혁은 자신을 살해했다. ‘장애물 없이, 제한 없이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의 나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릇된 것이자 오류가 돼 세상을 떠날 정도의 거대한 결핍을 새로운 욕망으로 채워나가는 동기부여의 서사가 필요했다.
‘목격담’의 교통사고로부터 숨이 끊어지기까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과 감정을 담아낸 작품은 마지막 ‘장례희망’ 의식까지 일관된 서사를 유기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이찬혁에게 죽음은 역설적으로 불사의 가치를 찾아 나서기 위한 창작에의 몰두와 한계 없는 도전에 지체하지 않겠다는, 삶의 의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난해한 퍼포먼스와 시각적 충격, 낯선 활동과 이를 두고 벌어진 소모적 논쟁에 산만했던 음악 팬들은 지난해 11월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공연에서 ‘파노라마’와 ‘장례희망’을 연이어 부르는 이찬혁의 무대를 보고 나서야 아티스트의 비범한 열망을 비로소 제대로 응시할 수 있었다. ‘지금이 내가 하고 싶은 걸 온전히 다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던 이찬혁의 이야기가 음악을 넘어 정립됐음을 확인할 수 있던 무대였다. 손에 든 잔에 가득 찬 샴페인이 흘러넘치든 말든 흥겹게 춤추며 노래를 부르던 이찬혁이 미련 없이 노래를 부르며 자유를 만끽하다 꽃으로 수놓아진 ‘에러’ 관에 누워 세상을 떠난다. 이찬혁은 예술로 극복하려 한다. 사회가 반대하고 때로는 억압하기까지 하는 정신적 속박을 벗어던져야 한다. 쉽게 사라져 버릴 이야깃거리 대신 공들여 만들어 오래 남을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을 원한다.
지난 14일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에로스(EROS)’는 확고한 의지와 새로운 확신의 증명이다. 이번 앨범의 주제도 죽음이다. 육신에서 영혼을 떼어냈던 ‘에러’의 목소리가 자기 죽음을 노래하며 밖에서 안으로 돈다면 ‘에로스’는 타인의 죽음을 마주한 내부로부터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소리의 모음이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잉태되는 감정, 결핍이다. 그건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일 수도 있다. ‘결핍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자유’라는 이찬혁의 설명대로다. 전작의 이름과 유사한 단어로 지은 제목에도 단서를 숨겨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랑과 연애의 뜻을 넘어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에로스’는 자신이 불완전자임을 자각하고 완전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려는 인간의 정신,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동경하는 순수애를 뜻한다.
이찬혁은 수없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악뮤 활동 및 1집과 마찬가지로 ‘에로스’의 모든 노래 작사 작곡은 물론 제작까지 도맡았다. 악뮤의 정갈한 구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재치 대신 진중함을 더한 ‘에로스’는 차분하면서도 선명하게 지향하는 바를 전한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할 가스펠의 영향력은 전작 ‘장례희망’으로부터 앨범 전반에 풍성한 화음을 더하는 과감한 코러스 기용으로 확장됐다. 앨범을 여는 ‘시니 시니’와 ‘비비드라라러브’ ‘멸종위기사랑’과 같은 곡의 주인공은 이찬혁을 넘어 코러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80년대 팝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티어스 포 피어스, 펫 샵 보이즈, 듀란듀란과 같은 영국의 뉴 로맨틱과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 필 콜린스 등 음악 영웅들의 당대 최첨단 대중음악이 이찬혁의 교본이다. 상술한 코러스와 함께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뉴웨이브 밴드들을 연상케 한다. 자칫 난해하고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주제를 친근한 멜로디와 함께 중화한다.
짙은 참조의 흔적은 피할 수 없는 결점이다. 실제로 이찬혁의 음악은 지옥과 연옥, 천국의 3부작을 펼치며 신스 웨이브 장르의 대유행을 이끈 팝스타 더 위켄드와의 비교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음악적 역량 이상의 성장이 중요했다. 이찬혁은 ‘에로스’의 비주얼 디렉팅과 뮤직비디오, 무대 연출 및 안무 창작, 밴드 의상 등 음악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내놓는 모든 요소에 관여했다.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펼치는 ‘비비드라라러브’와 ‘멸종위기사랑’의 열정적인 무대가 벌써 화제다. 무대 위 음악을 옮겨놓으며 개성을 확보했다.
‘에로스’는 필멸자의 불멸을 향한 갈망, 열망, 투쟁이다. 만족을 모르는 예술가의 도전은 겉보기에 우스워 보여도 실로는 치열하다. ‘숨을 조이는 내 결핍이 나를 빛나게 해’라는 노랫말이 귀에 들어온다. 겉보기에는 매우 슬픈 주제와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앨범은 비정하거나 절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만족을 위해, 영원한 행복을 위해, 제약받지 않는 삶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는 음악가의 디스토피아가 수많은 사람을 끌어안아 구원하고 있다.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 우스꽝스러운 단어나 천재성에 대한 상찬 대신 이런 단어는 어떨까. 자유, 해방,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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