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6·25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결정적인 고지 쟁탈전으로 기록됐다. 단 10일간 24차례나 계속된 공방전. 국군 9보병사단 백마부대 소속 고(故) 오규봉 일병은 두 전우와 함께 적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육탄 돌격해 고지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그는 전사 후 하사로 추서되고, 을지무공훈장도 받았다. 이어 백마부대가 선정한 ‘삼군신(三軍神)’ 중 한 명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이 숭고한 희생 뒤에는 긴 세월 외롭게 감당해 온 가족의 고통이 있었다. 오 하사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지만, 그의 동생 오세운(90) 씨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혼자서 형의 명예를 지켜 왔다. 부모님은 전쟁 이후 질병과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고, 형의 전사 소식을 들은 뒤 유일하게 남은 가족으로서 홀로 생을 이어 온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어떠한 국가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직계 유가족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국가보훈제도는 기본적으로 전몰군경의 직계존속(부모·조부모) 또는 직계비속(자녀·손자녀)만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 형제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단 하나의 행정 기준이 한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한 영웅의 명예를 제대로 예우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형의 추모행사에 매년 개인적으로 참석하며 기억을 간직해 온 오씨에게 국가는 지금껏 아무런 손길도 내밀지 않았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딘 이는 당시 9사단장이었던 김용우 장군이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해 첫해에만 300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이 돈은 오씨의 치료비와 생계비로 쓰였고, 충남 천안지역에 오 하사를 기리는 기념동상까지 세워졌다.
이후 김 장군이 참모총장을 마치고 월드투게더 회장을 맡으면서 오씨를 돕는 활동을 계속 펼쳐 나갔다. 오 하사의 추모행사에는 여러 시민단체와 지역정치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정작 국가의 책임은 여전히 공백상태로 남아 있다. 오씨는 고령과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며, 지난해에는 배우자마저 암으로 떠나보냈다. 기초생활보장 외에 별다른 지원은 없고, 의료비와 생활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월드투게더 관계자는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국가와 민간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품격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격은 과거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하고 대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대한민국이 진정 성숙한 나라라면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가족을 결코 홀로 둬서는 안 된다. 단지 ‘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수십 년을 외면당한 유족의 삶은 행정적 판단이 아닌 도덕적 책임의 문제다.
전쟁영웅은 단지 전쟁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가 지켜야 할 책임의 상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적 사각지대를 정비하고, 실질적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일이다. 국가보훈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단지 예우의 차원이 아니다. 이는 국가 정체성의 확인이며, 역사의 빚을 갚는 과정이다.
국민들 역시 주체가 돼야 한다. 민간 후원단체의 선한 움직임이 보여 줬듯,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지켜 내려는 의지가 모일 때 진정한 국가 공동체가 완성된다. 전우의 이름을 지킨 동생의 외로운 삶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필요하다.
오 하사처럼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 그를 기억하며 살아온 남겨진 이들을 향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우리는 그 약속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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