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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까운 사람들

입력 2025. 02. 12   15:19
업데이트 2025. 02. 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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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라 중사 육군훈련소 26교육연대
강해라 중사 육군훈련소 26교육연대



부대에서 강연하던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군대에 온 게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용사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강사는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그 시간이 아까워 제 강의를 들으러 오는 동안 영어 단어 하나라도 외우신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올라갔던 손이 우수수 내려갔다. 강사는 덧붙였다. “진짜 시간이 아까운 이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너무 소중해 무엇이라도 하는 거죠. 여러분은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육군훈련소에서 분대장(조교) 임무를 맡은 이들의 이야기다.

육군훈련소의 주된 임무는 입대한 민간인을 야전부대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한 군인으로 교육하고 훈육하는 일이다.

이제 막 입영행사를 마친 훈련병들은 하얀색 도화지와 같다. 새하얀 도화지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군 생활의 걱정과 설렘,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 위로 교관·조교들의 지도와 훈육이 각각의 색깔로 그려진다. 육군훈련소에서 보낸 시간은 앞으로 남아 있는 군 생활, 나아가 전역 후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모든 시작점에 서 있는 소대장과 분대장(조교)들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훈련병들을 양성하는 6주는 폭풍같이 지나간다. 24시간 훈련병과 함께하는 분대장(조교)들의 일과는 오전 6시 기상과 동시에 시작된다. 주말에도 임무는 계속된다. 때로는 부모님처럼 훈련병들을 챙겨야 하고, 때로는 선생님처럼 엄격하게 훈육해야 한다. 친구처럼 고민 상담도 해 줘야 된다. 기본 임무인 교육과 훈련 지원은 물론 화장실 변기를 뚫거나 침대 나사를 조이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폭풍 같은 일과 속에서도 시간이 아까운 사람들이 있다. 훈련병에게 가르칠 과목을 매번 꼼꼼히 공부하고 시범을 준비하는 이, 쉬는 시간 틈틈이 영어 단어장을 넘기는 이, 일과가 끝난 뒤 개인 체력단련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공부 연등을 하는 이 등. 내가 목격한 이들은 매일같이 힘든 일과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잠깐의 시간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시간 낭비라고 하는 군대 안에서도 그들은 오늘보다 더 큰 미래를 그리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계급장을 단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로 만났지만, 그들의 모습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경심이 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자극이 되고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본받아 나 역시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돼 보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인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임무를 완수하는 ‘시간이 아까운’ 모든 분대장(조교)을 응원하며, 그들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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