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골목 속으로 - 18. 신구 조화 빼어난 ‘종로’
찬란했던 청춘을, 그리움을
오래된 맛집 국수 삶는 소리와
홀쭉해진 새벽의 정적
게으르게 뒤뚱거리는 비둘기의 멋들어진 합작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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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로 사거리~흥인지문~신설동 역까지
통행금지와 해제 알리는 ‘종 있는 거리’
왕족·고위 관료 거주한 최상위층 주거지이자
행정의 중심지, 상업의 중심지, 교육의 중심지
3000원짜리 국밥집, 6000원짜리 이발소
‘가성비 甲’ 골목 따라
청춘과 노년 거침없이 뒤섞여 이야기꽃 만발
서울 강북의 번화가는 신촌·홍대·성수 등으로 손바뀜이 있었으나, 종로만큼은 흔들림 없이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최고 상권을 유지하고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경복궁을 양쪽에서 호위하고, 청계천이 그림처럼 흐르는 서울은 세계 대도시 중에서도 신구 조화가 특히 빼어난 곳이다. 그 중심에 종로가 있다. 종로 골목은 조선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고 경제 강국 위상을 드러내는 현대적 건물들로 세련된 도시미까지 장착했다. 종로의 골목들은 600년간 숙성된 살아 있는 전설이고 유적지다. 고고학자가 마침내 발견한 보물처럼 조심조심 위대한 유산을 거닐어 보자. 종로의 골목을 걸으면서 세계적 문화유산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과거와 지금, 그리고 미래가 뒤섞인 최고의 골목에서 가을이 가기 전 명품 산책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600년 이상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중심
태조 이성계가 1394년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종로 역시 역사적 중심지가 됐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이 있고 왕족과 고위 관료가 거주하는 최상위층 주거지이기도 했다. 주요 관청이 모인 행정의 중심지였고, 시장이 발달한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최고의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 있던 교육의 중심지였다.
종로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흥인지문을 거쳐 지하철 1호선 신설동 역까지 4.2㎞의 도로를 이른다. 종로는 종이 있는 거리를 뜻한다. 조선시대 종각에선 큰 종을 울려 성의 문을 여닫았다. 통행금지와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종이 있는 길’ 종로라 불리었다.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인다고 해서 ‘운중로’라고도 했다. 지금도 불야성으로 사람이 들끓는 곳이지만, 조선시대 종로는 유일무이한 번화가로 지방 사람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안겨줄 만한 압도적인 번화가이자 신천지였다.
말과 고위 관료를 피하는 길, 피맛길
이모부와 약속이 있어 종로 ‘보쌈 골목’이란 곳을 처음 가 봤다. 그렇게 자주 종로를 왔는데도 보쌈 골목은 처음이었다. 대기가 유난히 긴 식당은 ‘최부자보쌈’이었는데, 보쌈을 주문하면 동태전을 서비스로 준다고 한다. 그 동태전이 보쌈보다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해 다른 식당보다 손님이 유난히 많았다. 이모부와 나는 ‘장군굴보쌈’을 갔는데 여기도 푸짐하고 맛이 훌륭했다. 이곳 보쌈 골목 보쌈집들은 보쌈을 주문하면 감자탕을 기본으로 준다. 원래는 감자탕 골목이었는데, 서비스로 주는 보쌈이 더 인기가 많아지면서 보쌈 골목이 됐고, 서비스 안주가 메인 메뉴가 되면서 골목 식당들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보쌈골목은 피맛골에 자리 잡고 있다. ‘피맛골’은 ‘말을 피해 다니는 거리’라는 뜻이다. 대로변은 말을 타고 다니는 ‘높으신 분’들의 세상이었고, 서민은 그들을 피해 대로변 뒤 작은 골목으로 오갔다. 서민들의 골목이니 주막과 국밥집이 즐비했고, 그 전통이 보쌈골목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중심 중의 중심에 있으면서 인심이 후한 것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종로의 중심, 종로 3가
지하철 종로3가역은 1·3·5호선이 지나는 중심 중의 중심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보다 더 많은 인사동과 현시점 가장 핫한 골목 중 하나인 익선동, 주말 밤이면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건물 3층에서도 들릴 정도인 포장마차 거리가 종로3가역에서 걸어서 5분이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탑골공원에 모인다. 무료 급식도 나눠 주고 서울 최저가의 음식점과 이발소 등도 몰려 있다. 낙원상가 ‘소문난집’은 놀라지 마시길, 우거지 국밥이 3000원이다. 그마저도 최근 500원이 올라서 그 가격이다.
낙원상가 주변은 익선동과 붙어 있다시피 하는데도 월세는 두세 배 저렴하다. 그만큼 낙후된 곳이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에겐 천국이다. 머리도 6000원이면 깎을 수 있는데, 감겨도 준다. 이곳에 나의 평양냉면 단골집 ‘유진식당’이 있다. 유명하다 싶으면 기본 1만5000원이 넘는 게 평양냉면인데, 유진식당은 단돈 1만1000원. 맛으로만 승부한다면 서울 3대 냉면집에 절대 꿇리지 않는다. 광화문역과 종각역 사이 ‘광화문 미진’은 메밀 막국수 맛집. 돈가스도 맛있다. 최소 한 달에 두 번은 일부러 찾아가서 먹는다. 경복궁 옆 ‘체부동잔치집’ 칼국수도 밸런스가 훌륭한 국수 맛집이다. 들깨칼국수와 비빔면이 특히 맛있다. 잔치국수가 4000원, 들깨 칼국수는 7500원. 가성비도 이런 가성비가 없다
천재 디자이너의 걸작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동대문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있다. 종로의 끝자락, 예전엔 야구의 성지였다면 이젠 세계적 패션 명품 회사들이 앞다퉈 패션쇼를 여는 핫한 동네가 됐다. 처음 이 건물이 지어질 때 반대가 심했다. 1925년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동대문 야구장은 국내 스포츠의 성지.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무시한 채 디자인만 강조된 건물을 짓는 게 과연 옳은가? 게다가 천문학적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반대의 이유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젠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이 건물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라는 이라크계 영국 여성은 이제 세상에 없다. 2016년 65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명을 달리했다. 독창적이며 유려한 곡선을 강조한 건물을 주로 지었다. 아제르바이잔에는 그녀의 또 다른 걸작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Heydar Aliyev Center)’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그 건물을 보며 천재성에 감탄했다. 건물이 마치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펄럭이는 거대한 보자기 같기도, 또 가오리 같기도 했다. 혹시 천기를 누설한 것 아닐까? 1000년 후에나 가능한 미래의 건축물을 허락도 없이 지어 하늘이 대로하며 그녀를 서둘러 데려간 건 아닐까? DDP는 세계적인 천재의 걸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아이콘이 돼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놀이터가 바로 종로
종로 여행은 사실 큰 기대 없이 골목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갑자기 고물상이 나오기도 하고 무속인의 깃발이 펄럭이기도 한다. 청계천을 차분히 거닐거나, 자전거로 경복궁을 거쳐 삼청동과 북촌 한옥마을을 휘휘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준다. 광장시장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정신없지만 외국인이 우리의 김밥과 비빔밥,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큰 구경거리다. 종로 5가 약국은 여전히 저렴하며, 동대문역에서 20분만 걸으면 되는 ‘개뿔’이란 카페에선 최고의 서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대로변과 골목의 풍경이 다르다. 옛 풍경과 현대적 빌딩이 극강의 대조를 이루며, 청춘과 노년이 거침없이 뒤섞여 논다. 값비싼 코스 요리부터 3000원짜리 국수까지, 각각의 이유로 당당하며 완벽하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 가난과 성공을 보고, 밝음과 어둠도 본다. 세련됨과 누추함도, 기독교와 불교, 무속신앙도 본다.
종로를 거닐고 있는가? 누군가의 찬란했던 청춘을, 그리움을 걷는 것이다. 오래된 맛집의 국수 삶는 소리와, 꺼진 풍선처럼 홀쭉해진 새벽의 정적과, 게으르게 뒤뚱거리는 비둘기의 멋들어진 합작품을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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