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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같던 피란민 삶, 한 땀 한 땀 이어붙여… 볼거리 먹거리 꽉 채운 모자이크 도시 

입력 2024. 08. 01   17:22
업데이트 2024. 08. 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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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골목 속으로  ⑬ 부산 국제시장

6·25전쟁 직후엔 미군 기지 물건 
1980년대엔 일본 물건 넘치던 곳
골목마다 예스러움·세련미 공존
남포역엔 100만 불짜리 전망이 공짜
손님 좀 있다 싶으면 다 밀면 맛집
먹자골목선 물떡·마카롱 맛보자

유명 카페 프랜차이즈에서 바라본 영도대교 전경.
유명 카페 프랜차이즈에서 바라본 영도대교 전경.

 

부산 하면 많은 이가 해운대를 떠올리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자이크’야말로 이 도시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6·25전쟁 당시 남한은 물론 북한 실향민까지 모두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전쟁을 피해 정착한 실향민들로 부산은 지리적으로는 경남인데도 한반도의 모든 인구가 모인 독특한 ‘섞임’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일본이 바로 코앞이라 수많은 일본인도 부산에 정착했다.

국제시장은 그런 부산을 상징하는 장소다.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 남긴 물건부터 해외동포가 내놓은 물품까지 사고팔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6·25전쟁 때는 미군 기지에서 나온 각종 물자가 좌판에 깔렸다. 1980~1990년대는 일본 가전제품이 부산을 통해 날개 돋친 듯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다른 지역·나라의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개방적이고 활기 넘치던 국제시장은 이제 MZ세대에게 부산 1등 관광지가 됐다. 골목골목 예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국제시장으로 떠나 보자.


공짜 전망대, 인생사진 명소를 알려 줄게

개인적으로 부산에 오면 숙소는 남포동이나 국제시장 쪽에 주로 잡는다. 바다가 있는 해운대나 광안리 쪽이 일반적으로 인기가 많지만, 골목을 사랑하는 내겐 국제시장 주변이 성지나 다름없다. 지하철 남포역엔 우리나라 대표 백화점 광복점이 있다. 이 건물 13층이 무료 전망대다. 돈 한 푼 안 내고 멋진 부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영도대교와 남항대교, 용두산공원 부산타워가 한눈에 보인다. 왜 사람들이 안 올까? 해 질 녘에 가면 ‘100만불 야경’을 볼 수 있는데도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놀랐다.

남포역에서 영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프랜차이즈가 나온다. 이곳 전망 역시 일품이다. 해운대에 가면 101층 건물이 있고, 그 건물 꼭대기에도 같은 카페가 있다. 하지만 해운대 101층 건물은 들어가는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 입장료만 2만 원이 넘는다. 두 곳의 전망이 전혀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영도대교점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실제로 많은 관광객이 일부러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강력히 추천한다.


옛 정취를 간직한 부산 국제시장 골목.
옛 정취를 간직한 부산 국제시장 골목.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파는 국제시장 먹자골목.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파는 국제시장 먹자골목.



도떼기시장이 바로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처음엔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다가 1950년대 미군 군수물자와 밀수입품을 취급하면서 국제시장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되면서 전국에서 피란민이 몰려들었고, 구호품과 밀수품 역시 부산항으로 흘러들게 됐다. 국제시장은 구호품을 빼돌려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는데 ‘국제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제시장은 여전히 수입품 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가면 꼭 사 왔던 물건도 국제시장에 가면 다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동전파스를 상비약처럼 쓴다. 근육통에 효과가 좋은데, 국제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은지 어디서든 쉽게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구제품 시장 골목도 국제시장에 있다. 구제품은 ‘남이 쓰던 낡은 것’을 의미한다. 구제옷을 파는 곳은 칙칙하기 마련인데, 국제시장 구제골목은 물건도 많고 가게도 어엿하다. 괜찮은 옷을 발견할 확률도 당연히 더 높다.

먹자골목에선 부산의 명물 ‘물떡’을 한번 먹어 보자. 어묵 국물에 푹 담긴 쫄깃한 떡이 심심한 듯 중독적이다. 단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도 깜짝 놀란 쿠키·마카롱 전문점 ‘남포당’도 놓치지 말 것. 종류도 다양하고, 특이한 쿠키도 정말 많다. 지금은 국제시장에서 백화점 안으로 옮겼는데, 한두 개만 사서 나오기가 쉽지 않다. 부산 디저트, 아니 우리나라 디저트 전문점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도 모양도 압도적이다.


‘밀면의 도시’ 부산, 밀면 도사들이 인정한 맛집


부산은 밀면의 도시다. 밀면은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의 음식이다. 평양냉면의 사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평양냉면은 서울에서 기본 1만5000원이다. 부산 밀면은 7000원이면 먹는다. 절반 가격도 채 안 된다. 그럼, 맛이 훨씬 떨어지는 거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면발 재료만 밀가루(밀면)냐, 메밀(평양냉면)이냐의 차이일 뿐 어차피 육수는 식당마다 자존심을 걸고 만든다.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부산에서 밀면은 동네마다 있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도, 손님도 밀면의 달인이다. 동네의 허름한 식당이라도 손님이 좀 있다 싶으면 믿고 들어가도 된다. 굳이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밀면집을 찾아가지 않아도 동네 맛집이면 이미 수준급이란 얘기다. 돼지국밥도 마찬가지다. 밀면에 만두까지 주문해 먹어도 서울 평양냉면 한 그릇 값도 안 된다.

국제시장 근처라면 ‘일미밀면’을 추천한다. 문 열기 전부터 대기줄이 긴 인기 맛집인데, 한약재가 들어간 육수 맛이 독특하다. 양념과 섞으면 독특한 향은 누그러지면서 깊고 감칠맛이 폭발하는 국물이 된다. 일미밀면은 골목 안쪽에 있는데, 골목 주변이 1980년대 모습 그대로다. 냉면도 먹고 시간여행도 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여름 최고의 면요리는 부산 밀면이라고 생각한다.

 

부산 국제시장 근처 일미밀면.
부산 국제시장 근처 일미밀면.

 

국제시장 먹자골목의 명물 ‘물떡’.
국제시장 먹자골목의 명물 ‘물떡’.

 

국제시장 인근 보수동 책방골목.
국제시장 인근 보수동 책방골목.



먹을 게 너무 많아 힘든 깡통시장

 

국제시장은 깡통시장·자갈치시장과 붙어 있다. 자갈치시장은 해산물을 주로 팔고, 깡통시장은 먹거리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6·25전쟁 당시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제품을 팔면서 깡통시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깡통시장에 가기 전엔 무조건 배를 비워야 한다. 먹을 게 너무나도 많아서다. 

부산은 어묵이 유명하다. 이곳에 어묵 맛집이 특히 많다. 우리나라 어묵은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 먹었다. 부산엔 일본인이 많이 살았는데, 일본인이 즐겨 먹는 어묵을 만드는 공장도 그때 하나씩 생겨났다. 해산물이 풍부한 지리적 이점으로 다른 지방보다 맛있고 훨씬 다양한 어묵을 깡통시장에서 맛보도록 하자.

줄 서서 먹는 떡볶이도 놓쳐선 안 될 별미. 비빔당면도 인기가 많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가격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았다. 과일주스를 2000원에 파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과일천국’ 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깡통시장에서 길만 건너면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무려 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골목이다. 중고책 서점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서적 한두 권쯤 구매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부산은 가진 게 참 많은 도시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이 만든 가게, 식당, 골목이 그중 최고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시장 주변의 골목만 탐색해도 하루가 짧다. 먹고, 마시고, 사진 찍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얼마나 될까?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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