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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을 싸고도는 138억 년 전 빛의 흔적

입력 2023. 03. 21   16:10
업데이트 2023. 03. 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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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통신 - 전자레인지 속에서 우주가 탄생했을까

안테나 연구하던 미 통신회사 두 직원
‘우주 배경 복사’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
사방에서 16만㎒ 정체불명 전파 감지
빅뱅 38만 년 후 퍼진 마이크로파 추정
대폭발 탄생 이론 결정적 증거로 인정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한국을 대표하는 조리기구는 무엇일까? 나는 전자레인지도 답이 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한국이 전자레인지를 정말 많이 만들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는 전 세계에 팔리는 전자레인지의 절반 정도는 한국 회사가 만든 전자레인지였다. 

지금은 중국 전자회사들이 발전하면서 한국이 특별히 전자레인지를 많이 만든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여전히 한국 회사 브랜드의 전자레인지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즉석밥부터 컵밥까지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간편식품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전자레인지와 한국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는 느낌이다.

전자레인지는 대략 주파수 2400㎒(메가헤르츠) 정도의 전파를 발생시켜 그 전파의 힘으로 음식을 데우는 장치다. 전자레인지 전파의 세기가 아주 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음식 성분, 특히 수분이 이 전파를 받으면 하필 온도가 잘 올라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주파수의 전파를 음식에 계속 골고루 쪼여줘 음식을 뜨겁게 하는 것이 전자레인지의 원리다. 그렇게 보면, 전자레인지는 2400㎒라는 한 가지 주파수로 맞춰져 있을 뿐, 그 기능은 무선전화나 레이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로 ‘주파수’라는 용어가 신기한 전자제품에 자주 사용되다 보니 무슨 신비의 힘을 나타내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주파수가 별 대단한 말은 아니다. 그냥 1초에 어떤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는지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 주파수다.

예를 들어, 선풍기의 날개 주파수가 3㎐라고 하면, 그것은 선풍기 날개가 1초에 세 바퀴씩 돌아간다는 뜻일 뿐이다. 선풍기에서 3㎐의 신비한 마법 같은 힘이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밥을 평균 34.7마이크로헤르츠로 먹는다고 하면, 무슨 마법의 에너지가 나오는 밥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매일 하루에 세 번꼴로 밥을 먹는다는 뜻일 뿐이다.

전파란 원래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서로 엮여서 계속 반복해서 변화하면서 날아다니는 현상이다. 그래서 그게 1초에 몇 번 변화하는가 하는 것을 구분해 볼 만한 특징이 된다. 이 때문에 전파에 대해 따질 때 주파수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5㎐의 전파라는 말은 1초에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다섯 번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날아다니는 현상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1㎒의 전파라는 말은 1초에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100만 번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날아다니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 눈에 보이는 빛도 성질은 전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보통 전파에 비해 주파수 숫자가 아주 높아서 몇억 ㎒쯤 되면 그런 현상은 사람의 눈에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빛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전파도 눈에 안 보일 뿐 빛의 일종이다. 즉, 빛 중에서 눈에 안 보이는 통신용으로 쓰기 좋은 주파수의 빛을 전파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특히나 전자레인지에 사용되는 몇천 ㎒에서 몇십만 ㎒ 정도의 전파를 마이크로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 전자제품 회사들은 마이크로파를 이용하는 전자레인지를 만들어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1960년대 미국 통신회사 직원 중에는 마이크로파 때문에 큰 낭패를 볼 뻔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의 펜지어스와 윌슨이라는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이 원래 통신회사에서 맡은 일은 커다란 안테나를 만들어 전파를 아주 정밀하게 측정해 보려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애를 써도 16만 ㎒ 주파수 정도 되는 알 수 없는 전파가 어디선가 자꾸 감지됐다. 전자레인지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마이크로파였다.

잡음 같긴 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한 전파가 안테나에 잡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두 직원은 모든 장비를 점검하며 별별 문제를 다 신경 썼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물리학과 교수 맥스 테그마크의 저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혹시 안테나 주변에 비둘기가 날아 오는 게 문제인가 싶어 엽총을 들고 비둘기를 처리하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16만 ㎒의 마이크로파는 계속 안테나에 잡혔다. 더 신기한 것은 사방 어느 쪽을 봐도 거의 일정하게 이 전파가 측정됐다는 점이다. 마치 온 세상에 이 정체불명의 마이크로파가 퍼져 있는 것 같았다. 지구가 통째로 거대한 외계인의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우주를 전자레인지 속에 집어넣고 돌리는 외계의 악당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들이 이런 이상한 현상 때문에 답답해하고 있던 소식은 공교롭게도 인근에서 전혀 다른 이유로 전파 연구를 하고 있던 학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바람에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던 결론을 맺게 된다.

아직 우주의 시작이 빅뱅, 그러니까 대폭발인지 확신하지 못하던 과거 시절, 대폭발 이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만약 먼지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서부터 우주가 커지면서 대폭발을 이루듯이 생겨났다는 이론이 맞는다면 대폭발 이후 한동안은 우주가 대단히 뜨거운 상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물질이 모두 전기를 띤 상태가 된다. 플라스마 상태라고도 하는데 형광등 속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럴 때는 전기가 빛이 멀리 퍼져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우주가 좀 식고 물질이 전기를 띠지 않고 잠잠해지면, 마침내 빛이 잘 퍼질 수 있게 된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때가 우주가 생긴 지 대략 38만 년이 지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우주가 생긴 지 지금까지 흐른 시간은 대략 138억 년 정도이므로 38만 년 정도면 우주가 생긴 지 정말 얼마 안된 시기인 셈이다.

학자들은 이때 처음 퍼지기 시작한 빛이 있다면 지금 어떤 빛으로 보일지 계산해 보았다. 계산 결과는 마이크로파 정도의 빛이었다. 즉, 우주가 대폭발로 시작돼 학자들의 예상대로 커져 온 것이 맞는다면, 지금쯤 마이크로파 정도의 전파가 우주의 배경처럼 우주 전체에 온통 퍼져 있어야 했다. 이 현상을 흔히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른다.

디키라는 학자는 그래서 전파 측정 장치를 만들어 이 마이크로파를 실제로 확인해 보려고 했다. 만약 마이크로파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느냐는 심오한 질문에 대해,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설이 맞는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디키는 펜지어스와 윌슨이 벌써 이상한 전파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소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로는 디키가 전화를 끊으며 동료들에게 “여러분, 우리가 한발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발견으로 펜지어스와 윌슨은 노벨상을 받았다. 안테나의 비둘기를 쫓으러 가던 때에는 그것이 노벨상을 받으러 가는 길인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덕택에 대폭발은 신빙성 높은 이론으로 인정됐고, 이후 대폭발 과정을 연구해 우주의 탄생을 밝힌다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대단히 인기를 끄는 주제가 됐다.

그러고 보면 2023년에는 한국에도 거대한 통신회사, 전자회사들이 몇 개나 있다. 자기 회사의 통신 기술과 전파 기술이 뛰어나다고 선전하는 곳들도 많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런 한국 회사들이 나서서 우주의 시작이나 과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연구에 어느 정도 투자해 봐도 멋져 보이지 않을까?

광고를 위해서라도, 기술을 위해서라도, 당장 돈은 안될 것 같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설비에 전자회사 상표를 붙여 과학자들에게 마련해 주는 사업은 가치가 있어 보인다. 특히나 전자레인지의 나라, 한국에서는 더욱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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