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파란만장 커피사

커피 선택할 때 생산 농장 이름 물어보세요

입력 2023. 03. 21   17:07
업데이트 2023. 03. 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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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커피사 - 공정무역 커피 

중간상인 폭리 불평등 무역 구조 개혁
기업까지 참여 공정무역 운동 확산
일부 기업 인증제 이용 장삿속 채워
산지와 직접 파트너십 맺은 제품 선택

에티오피아 구지의 함벨라 지역에 있는 하루(Haru) 커피농장에서 커피 재배자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를 가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커피비평가협회는 이곳 농장을 방문해 산지와 한국 소규모 카페를 연결해주는 캠페인 ‘원맨카페(One Man CAFE)’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 제공
에티오피아 구지의 함벨라 지역에 있는 하루(Haru) 커피농장에서 커피 재배자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를 가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커피비평가협회는 이곳 농장을 방문해 산지와 한국 소규모 카페를 연결해주는 캠페인 ‘원맨카페(One Man CAFE)’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 제공

 




공정무역 커피(Fair trade Coffee)는 ‘맛이 좋은 커피’라기보다 ‘심성이 고운 커피’이다. 소비자들이 가격과 품질을 따지기에 앞서 재배자의 삶과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선택하는 커피이기 때문이다. 가히 ‘윤리적 소비의 정수’라 하겠다.

그러나 공정무역 커피가 탄생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은 현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그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일부 기업들이 공정무역 커피 인증제를 이용해 장삿속을 채우고 있다는 비난이 일기도 한다. 공정무역을 인증하는 기관과 단체들이 늘어나 서로 경쟁하면서 소위 ‘인증제 장사’를 하는 통에 가난한 재배자들에게 가야 할 몫이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참여한 이후 보다 많은 영세 농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은 분명한 만큼 공정무역 커피를 계속 지지하고 키워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태동

공정무역은 1940년대 비영리단체들과 종교기관을 중심으로 한 대안무역(alternative trade) 운동에서 시작됐다. 유럽과 북미의 선진국들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빈곤한 생산자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수입해 자선단체 매장과 같은 작고 특수한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한 것이 모태가 됐다.

1946년 미국에서 설립된 ‘텐사우전드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가 푸에르토리코에서 바느질 제품을 구입해 판매 운동을 벌인 것과 1942년 영국에서 조직된 ‘옥스팜(Oxfam)’이 중국 피난민들의 공예품을 팔아주면서 후원한 것이 공정무역의 시초로 꼽힌다.

공정무역은 초기에는 개발무역(development trade), 연대무역(solidarity trade), 자선무역(charity trade) 등으로 불렸다. 각각 생산자들을 지원하는 원조 활동, 정치적 연대, 자선논리 강조 등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발전

공정무역 운동 초기에는 시장에서 소외된 소규모 생산자와 직거래를 통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중간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불평등한 무역 구조를 개혁하는 데 노력이 집중됐다. 1970년대까지는 시민단체, 공정무역단체(Fair Trade Organizations), 개발협력단체 등의 비영리단체들이 주를 이뤘는데, 틈새시장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용하는 수준이었다.

공정무역 커피의 관점에서 눈에 띄는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 판매된 최초의 공정무역 제품이 커피라는 사실이다. 남미의 가난한 커피 농부들을 돕기 위해 종교 단체들이 앞장섰으며, 1970년대에 들어선 커피와 수공예품을 넘어 코코아, 차, 설탕과 같은 다른 상품들도 공정무역에 포함됐다.


인증제의 출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들이 노동자 착취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인식하게 되자 공정무역의 개념은 탄력을 받았다. 더불어 공정무역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질을 높이고 소비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게 좋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마침내 1988년, 멕시코의 커피 생산자들을 후원하던 네덜란드 단체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가 처음으로 공정무역 인증 라벨을 만들었다.

이는 공정무역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획기적인 일이었다. 공정무역 방식으로 생산·유통·가공되는 제품에 마크가 붙자,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일반기업들이 공정무역에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접할 수 있던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자들은 슈퍼마켓, 백화점 등의 다양한 유통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한국 공정무역 커피의 등장

2000년대부터 공정무역은 세계적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공정무역 활동의 한계를 벗어나 그동안 참여가 미비했던 지방자치단체, 공공교육기관, 대학 등이 나서 ‘공정무역 마을’을 만들어가는 이른바 ‘지역기반전략(community-based strategy)’이 구사되기 시작했다. 이 즈음 한국에서도 공정무역 활동이 포착됐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가 공정무역 수공예품을 취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두레생협, 아이쿱 등 소비자생활협동조합과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아름다운커피, YMCA 기반의 카페티모르, 기아대책행복한나눔 등의 시민단체들이 공정무역 활동을 펼쳤다. 국내의 공정무역도 상당기간 일부 단체의 활동에 머물렀지만, 2011년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 한국사무소가 서울에 설립되고 인증제를 기반으로 한 활동이 펼쳐지면서 확산됐다.

여기에 2013년 인천시와 서울시가 차례로 공정무역도시 추진을 선언한 뒤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공정무역 활동은 지역의 협의체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장하는 계기를 맞게 됐다.


공정무역 커피 구입하려면

공정무역 인증 마크가 여러 종류여서 소비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인증마크가 붙은 커피 제품만이 공정무역 커피인 것도 아니다. 공정무역 인증은 구체적인 제품에 마크를 붙이는 ‘제품 인증’과 공정무역의 원칙을 지키는 단체들을 인증해 그들이 다루는 제품을 모두 공정무역 제품으로 확인해주는 ‘조직인증’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공정무역단체들이 인증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인증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공정무역기구의 인증이나 여러 기관들이 하는 제품인증은 주로 커피, 카카오, 과일, 향신료, 견과류 등의 농식품에 집중돼 수공예품은 인증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수공예를 취급하는 단체들은 주로 세계공정무역기구를 통해서 조직인증을 받거나 인증을 받지 않고 묵묵히 공정무역의 원칙을 지켜 나가고 있다.


직접무역을 주목하자

‘인증을 위한 비용마저도 모두 생산자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공정무역 인증을 일부러 외면하고 ‘직접무역(Direct Trade)’ 운동을 통해 공정무역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커피 분야에는 특히 많다. 이들은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오지에 있는 작은 커피농장을 찾아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는 커피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정보와 기술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더 바람직하다.

인증마크가 없더라도 이런 커피를 소비자들이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커피를 구매할 때 농장 단위나 조합 단위까지 명확하게 확인되는 커피를 선택해야 한다. 커피가 나온 곳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가 아니다.

지역이나 농장, 조합이 명시되지 않고 단지 ‘케냐 AA 톱’이라거나 ‘콜롬비아 수프리모’ ‘에티오피아 1등급’ 등으로만 적힌 커피 제품들은 쌀로 따지면 정부미와 같다. 가격에만 맞춰 그 나라 전체에서 나오는 값싼 커피를 끌어 모아 썩은 콩들을 골라내고 크기별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이 커피를 마실 때 커피 농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공정무역 커피라고 할 수 있다. 인증마크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마의 땀으로 살아가는 농부의 사연을 확인할 수 있는 커피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형편이 어려운 커피 재배자들이 당당한 몫을 받아 지속적으로 커피를 재배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커피를 선택할 때 구체적인 농장의 이름을 묻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덕을 쌓는 것이요, 공정무역 운동에 진심으로 참여하는 것이 된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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