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정전 70주년 특별기획 - 다시, DMZ

[연중 기획 다시, DMZ] ⑦철원·연천 육군5보병사단 - 영혼을 계승하는 자

맹수열

입력 2023. 01. 20   17:46
업데이트 2023. 01. 2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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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5보병사단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지난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에 자리한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에서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기념관은 과거 GP를 리모델링해 지어지고 있다.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 일대 중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지키는 5사단은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DMZ 유해발굴작전 임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육군5보병사단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지난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에 자리한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에서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기념관은 과거 GP를 리모델링해 지어지고 있다.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 일대 중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지키는 5사단은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DMZ 유해발굴작전 임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들어가는 글 - 70년 전 상무 정신, 여전히 이곳에

70년 전 ‘철의 삼각지’라고 불렸었다. 거듭된 포탄 세례로 녹아내려 모습이 변한 산은 마치 백마와 같다고도 했다. 수많은 젊음들이 이 땅의 자유를 위해 몸을 던진 곳. 바로 강원도 철원군의 이야기다.

험준한 동부 전선을 지나 도착한 철원의 DMZ는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이런 이유로 방심하기 쉽지만 철원의 산지는 너무도 처절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너른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비교적 낮은 고지 하나, 하나가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철원·연천군은 육군5보병사단이 맡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백마고지부터 유해발굴로 유명세를 얻은 화살머리고지까지 6·25전쟁 당시 이곳을 사수한 선배 전우들을 대신해 5사단 장병들은 밤낮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3일의 취재 기간 동안 5사단에서 지켜본 모든 장면들은 마치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용맹하게 전투에 임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지난 10일 눈길을 헤치며 화살머리고지 인근 남북관통도로를 이동하고 있다. 5사단 장병들은 6·25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이 곳을 지킨 호국영령들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조용학 기자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지난 10일 눈길을 헤치며 화살머리고지 인근 남북관통도로를 이동하고 있다. 5사단 장병들은 6·25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이 곳을 지킨 호국영령들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조용학 기자

 

장면 1 - 신뢰와 유대, 겨울을 이기는 힘이 되다

지난 9일 독수리여단 철권대대 C중대 A소초로 가는 길. 쾌적한 작전도로를 달리느라 능선을 뒤덮은 하얀 눈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며칠 전 덮친 큰 눈을 치우느라 주말 내내 장병들의 고생도 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길 밖으로 눈을 돌리니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흰 눈밭을 볼 수 있었다.

A소초 장병들은 이날도 제설에 여념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책을 따라 만든 순찰로. 소초장 이종근 중위는 “눈이 오자마자 바로 병력을 투입해 눈을 치웠다”면서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눈도 결국 언젠가는 그치더라”며 웃어 보였다.

 

독수리여단 철권대대 장병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앞서 내린 많은 눈이 뒤덮힌 야지와 깨끗히 제설된 순찰로가 대비된다. 조용학 기자
독수리여단 철권대대 장병들이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앞서 내린 많은 눈이 뒤덮힌 야지와 깨끗히 제설된 순찰로가 대비된다. 조용학 기자

 

A소초는 현재 투입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소초’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경계 작전은 계속된다. 복숭아뼈 위까지 쌓인 눈길을 헤치며 철책 앞으로 가보니 너른 산지가 펼쳐졌다. 고성, 인제, 양구 같은 험준한 산지를 뚫고 온 지난 여정을 생각해보니 ‘이번에는 상당히 할 만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오산. 장병들과 함께 걸으며 느끼는 피로감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중위는 그 이유로 지형적 특성을 꼽았다.

“경사가 꽤 가파르지 않습니까? 속기 쉽지만 이곳도 해발 300m에 가까운 고지 입니다. 넓은 U자 모양의 지형을 반복해 걷다 보면 갑자기 힘든 구간이 생기죠. 다른 곳에는 유명 햄버거집 로고에서 이름을 딴 난코스도 있습니다.”

미끄럽고 좁은 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이곳 장병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약 2~2.5㎞ 구간을 순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GOP 장병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계절이라는 것이 이 중위의 설명이다.

“이곳에 온 지도 이제 10개월이 넘었습니다. 사계절을 모두 경험한 셈입니다. 하지만 단연 힘든 계절은 한겨울 같습니다. 제설 등 작업 소요도 많고 동상·저체온증을 대비한 방한 대책도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각 구역에 독립 소대가 주둔하는 GOP 소초의 특성상 소초장은 작전부터 병력 관리까지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그래도 소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한 책임감과 끈끈한 유대감이 이 중위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고.

“소초원 전원이 한 곳에서 먹고, 한 곳에서 자니 남다른 신뢰가 쌓이는 것 같습니다. 평소엔 모두 형제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황이 닥치면 확실히 제 지시를 수행해주는 부하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장면 2 - 겨울 추위도 막을 수 없는 훈련의 연속

A소초는 이날도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철책을 벗어나 이들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지역 GOP 부대도 항상 시행하는 상황조치 훈련이었지만 A소초는 그들만의 독특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있었다.

“상황조치 훈련은 제가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고민을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적 도발 양상이 너무 다양해져서 이 가운데 우리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도발은 하나의 상황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는 추가 상황을 상정해 복합적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중위의 설명이다.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철책에서 상황조치 훈련에 나선 철권대대 장병들이 철책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실시하며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철책에서 상황조치 훈련에 나선 철권대대 장병들이 철책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매일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실시하며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이날은 너른 산지로 구성된 작전 지역에서 발생하기 쉬운 거수자 침투를 기본 상황으로 지정했다. 발생 지점은 항상 무작위. 언제 어떤 곳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파이팅! 잘하자!” 훈련이 시작되기 전 모인 장병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사기 고조가 익숙한 것에서 평소 이들이 얼마나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광망 절단 상황이 부여되자 장병들은 일제히 인근 고가 초소로 향했다. 소초장의 지시에 따라 초동조치조는 바로 현장으로 향했고, 기동타격분대는 나머지 지역을 점검했다. 다른 장병들이 교통로, 날개진지 등 요충지를 점령하자 남은 인원들은 톱니바퀴처럼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거수자 발견!”, “진지 쪽으로 이동!” 무전이 접수되고 한바탕 눈 위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미 주요 지점을 차지하고 있던 터라 결국 독 안에 든 쥐 신세. 장병들은 순식간에 거수자를 포위한 뒤 검거에 성공했다.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철책에서 상황조치 훈련에 나선 철권대대 장병들이 거수자 역할을 맡은 장병을 포박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남방한계선 GOP철책에서 상황조치 훈련에 나선 철권대대 장병들이 거수자 역할을 맡은 장병을 포박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월북 의도는 무엇인가? 철책까지 어떻게 접근했지?” 이 소초장은 정해진 규범에 따라 간단한 심문을 한 뒤 거수자를 안전 지역으로 옮기고 수색을 계속했다. “혼자 왔다”는 말을 100%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수자는 붙잡혔지만, 긴장감은 그대로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상황 종료 지시가 내릴 때까지 저희는 끝까지 감시해야 합니다.” 신동진 일병과 함께 요충지를 점령하고 있던 유상모 상병은 전방을 주시한 채 짧게 말했다.

마침내 모든 상황이 정리됐고 기자는 자리를 옮겼지만, 장병들은 다른 시나리오로 훈련을 이어갔다. 경계 임무가 주인 GOP 부대는 훈련이 적다는 항간의 오해는 말 그대로 ‘오해’일 뿐이었다. 이들에게 매일은 훈련이자 실전이었다.

 

장면 3 - 철책은 눈을 감지 않는다

오후 늦게 인근 C중대 B소초에 도착하자 이미 해가 질 기미가 보였다. ‘전방의 밤은 빠르다’는 속설이 사실임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중대 입구에는 ‘永遠(영원)한 사랑 祖國(조국)’이라는 낡은 비석이 서 있었다. 이제는 언제 세워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비석에서 오랜 시간 이 곳을 지킨 젊음들의 역사가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마친 장병들은 곳곳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휴식을 취했다. 군 내 휴대전화 사용은 이제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9일 GOP 소초 장병들이 부식 트럭에서 부식을 내리고 있다. 조용학 기자
9일 GOP 소초 장병들이 부식 트럭에서 부식을 내리고 있다. 조용학 기자

 

쉬고 있는 전우들을 대신해 이날 야간 근무에 나설 장병들은 군장검사 준비에 열을 올렸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다양한 장비들이 경계 근무에 활용되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점검은 필수였다.

장병들은 워리어 플랫폼 장비 중 하나인 야간투시경과 다기능 관측경이 경계 작전에 많이 활용된다고 입을 모았다. 육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한다.

소초장 박호윤 중위가 주관한 군장검사는 빠르고 절도있게 마무리됐다. 생활관으로 들어가려던 조승우 일병에게 “겨울철 순찰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조 일병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불이 밝고 제설도 잘 돼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방심입니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있어서 카메라가 모든 상황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늘 1%의 확률도 경계해야 합니다. 카메라가 잡는다고 해도 상황을 종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철권대대 C중대 B소초 장병들이 야간 근무 투입을 앞두고 군장검사를 하고 있다. 최전방 GOP의 군장검사는 늘 긴장감과 엄중함이 감돈다. 조용학 기자
철권대대 C중대 B소초 장병들이 야간 근무 투입을 앞두고 군장검사를 하고 있다. 최전방 GOP의 군장검사는 늘 긴장감과 엄중함이 감돈다. 조용학 기자

 

이들과 함께 나간 야간 순찰. 문득 호기심이 일어 일부러 제설이 되지 않은 곳으로 걸었다. 복숭아뼈 위까지 올라오는 눈길을 지나니 잘 정비된 순찰로가 보였다. 장병들이 순찰로 관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늦은 밤 철책을 따라 늘어진 불빛은 인근 6보병사단 지역까지 이어진다. 관할하는 부대, 지역은 달라지더라도 철책은 끊김없이 계속된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연결된 철책, 그 철책을 밝히는 불빛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대도시의 야경을 방불케 했다. 기자와 함께 풍경을 바라보던 사단 공보장교 우소정 대위도 감탄을 연발했다.

“마치 항구 같지 않나요? 하지만 이곳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최전방입니다. 언젠가 평화가 찾아와 철책의 불이 꺼질 때가 올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우리 천하무적 상승5사단 장병들은 절대 눈을 감지 않을 겁니다.” 우 대위의 말에서 사단의 강한 수호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철권대대 C중대에서 바라본 철책의 풍경. 늘어선 불빛은 365일 꺼지지 않는다. 조용학 기자
철권대대 C중대에서 바라본 철책의 풍경. 늘어선 불빛은 365일 꺼지지 않는다. 조용학 기자

 

장면 4 - 그 날의 치열했던 기억, 이제 국민에게로

다음날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로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화살머리고지를 찾았다. 이른 아침, 취재진의 안전을 위해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은 DMZ 투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 통문을 열고 DMZ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수색중대의 경계가 필요했다. 만의 하나라도 대비해야 한다는 사단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드디어 통문을 열고 화살머리고지로 향했다.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이한 것은 북한에서부터 이어지는 역곡천. 이곳에는 군용 물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장간조립교가 설치돼 있었다. 차로 5분 가량을 달리자 과거 GP로 사용했던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세워진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 과거 실제로 운용되던 GP 내부를 리모델링해 화살머리고지에서 희생된 국군전사자를 기리는 추모관과 일대에서 발굴된 유품전시공간 등으로 꾸몄다. 조용학 기자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에 세워진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 과거 실제로 운용되던 GP 내부를 리모델링해 화살머리고지에서 희생된 국군전사자를 기리는 추모관과 일대에서 발굴된 유품전시공간 등으로 꾸몄다. 조용학 기자

 

리모델링 공사 중인 기념관은 옛 GP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념관 내부에는 과거 사용하던 환풍기, 창고로 추정되는 격벽, 고가초소, GP 특유의 외벽 도장 등 장병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입구에 남아 있는 ‘1990년 5월 GP 시설 현지화 공사’라고 적힌 시공석은 이곳이 원래 군사시설이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기념관은 정부가 추진하는 ‘DMZ 평화의 길’ 동선에 자리 잡고 있다. 완공 후에는 평화의 길 마지막 코스로 민간에 공개될 예정이다. 함께 기념관을 둘러보던 표범여단 공보정훈부사관 권기태 중사는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20년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TF 공보정훈담당관 임무를 받고 동참했는데, 그때 이곳을 쓸고 닦던 기억이 나네요. 기존 기념관도 좋았지만 리모델링 한 내부를 보니 누가 봐도 기념관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화살머리고지에서 싸운 호국영령들의 역사가 기념관을 통해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육군5보병사단 공보정훈장교 우소정 대위가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조용학 기자
육군5보병사단 공보정훈장교 우소정 대위가 화살머리고지 현장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조용학 기자

 

기자 역시 2018년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을 막 시작했을 때 지뢰제거 작업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3년 여만에 다시 찾은 고지의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기념관 옥상의 고가초소에 올라가니 무엇보다 확 트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유해발굴 작전이 이뤄졌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확실한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남쪽 우리 지역은 물론 저 멀리 북한 지역이 넓게 펼쳐 보이는 요충지였다. 화살머리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혈투가 벌어진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장면 5 - 호국영령의 뜻 이어…사단혼 한 눈에

수색중대원들과 함께 기념관 아래 자리한 한반도평화탑으로 향했다. 발이 푹푹 꺼지는 눈길을 따라 1.5㎞ 남짓을 걷다 보니 입에서 단내가 훅훅 풍겼다. 문득 ‘이 길을 혼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전혀’. 함께 걷는 이들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길. 수색중대원들 역시 서로에게 의지하며 길을 걷는 것 같았다.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드디어 도착한 평화탑 아래서 한겨울 DMZ의 장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수색중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열흘 뒤면 전역하는 베테랑 김용주 병장도 이곳에 온 것은 두 번째라고 했다. 그때보다 여유를 가지고 풍경을 둘러보고 있다는 김 병장은 “지금이야 평화로운 산지라지만 이곳에서 펼친 선배 전우들의 감투는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선배 전우들의 혼을 잇기 위해 최선을 다해 군 생활을 했습니다. 역사의 현장, 선배들이 지켜낸 이 땅을 나 역시 지켜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후임들은 저보다 더 치열하게 이곳을 사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5사단의 자랑스러운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무전기를 메고 걷느라 유난히 힘들어 보였던 조성룡 일병은 “힘들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괜찮습니다. 제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입니다”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고 보니 조 일병의 할아버지는 백마고지 참전용사였다. 조 일병은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이곳이 내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기초유해발굴병에 지원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숭고한 임무에 꼭 동참하고 싶습니다. 유해발굴 작전은 군 생활은 물론 앞으로의 삶에서 큰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통문으로 돌아와 군장을 반납하던 중 통제대에 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 전우들이 피땀 흘려 지킨 이 땅 백마고지 우리가 지킨다’ 호국영웅들의 영혼을 이어받겠다는 5사단의 강한 의지가 담긴 강렬한 문장이었다.

 

장면 6 - 단 한 구도 예외 없이…유해발굴은 계속된다

화살머리고지를 벗어나 곧바로 백마고지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박진칠(대령) 백마고지 유해발굴 TP 통제단장과 이종민(소령) 유해발굴 계획장교가 동행했다. 먼저 유해발굴 상황실 옆에 마련된 백마고지전투 전사자 추모실을 찾아갔다. 추모실에 차려진 작은 분향소에는 이곳에서 발굴돼 신원이 확인된 김용일 이등중사, 김일수·조응성·편귀만 하사의 명패가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여전히 공란. 호국영웅들을 위해 잠시 묵념하며 언젠가 이곳에 이름이 가득 채울 수 있게 되길 기도했다.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에 세워진 백마고지전투 전사자 추모실. 신원이 확인된 4명의 호국영웅 명패 외에는 다 공란 처리돼 있다. 조용학 기자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에 세워진 백마고지전투 전사자 추모실. 신원이 확인된 4명의 호국영웅 명패 외에는 다 공란 처리돼 있다. 조용학 기자

 

2021년 시작된 백마고지 유해발굴 작전으로 총 67구의 유해와 유품 1만 5000여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유해 45구를 찾고, 유품 7400여 점을 발굴하며 속도를 더했다. 5사단은 작전 기간에 하루 240여 명을 투입하며 총력을 기울였다. 5사단 장병들은 공병부대 지뢰제거, 기초유해발굴(표범여단 철권대대), 경계작전(수색대대), 지속지원(의무·정비·통신) 임무를 수행했다. 유해발굴의 전면에 나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5사단 장병들의 헌신이 있었다.

유해발굴 작전에 가속이 붙었지만 박 단장은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워낙 치열한 고지전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사와 참전용사 증언을 종합해보면 유해 바로 밑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전사자 수도 많고 유해가 뒤엉켜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속도를 내기보다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전쟁 당시 지형 변화가 심하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발굴 현장을 깊게 파 내려가고 있죠.”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병들의 안전”이라고 강조한 뒤 “그 다음으로 유해·유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작업에 정성을 기하는 것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다 보니 보존이 잘 돼 있고, 그것은 발굴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라는 이유였다.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 치열한 전투로 많은 이들이 묻혀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깊게 파인 흔적이 눈에 띈다. 조용학 기자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 치열한 전투로 많은 이들이 묻혀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깊게 파인 흔적이 눈에 띈다. 조용학 기자

 

2021년부터 유해발굴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이 소령은 “작전에 참여하는 사단 장병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장병 모두가 긍지를 갖고 있다”면서 “선배 전우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잇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단 장병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현장은 박 단장의 말처럼 넓고 깊게 파헤쳐져 있었다. 1.5m 이상의 깊은 구덩이들은 장병들의 노고를 대신해 보여줬다. 경계 임무를 위해 유해발굴 현장은 처음 찾은 수색중대 최승교 중위는 “진짜 전쟁을 느낄 수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GP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엄호만 하다가 현장에 직접 와보니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파 내려간 흔적들을 보니 선배 전우들이 수행한 전투가 상상 이상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완전작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진칠(대령·왼쪽) 백마고지 유해발굴 TF 통제단장과 이종민(소령) 유해발굴 계획장교가 유해발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진칠(대령·왼쪽) 백마고지 유해발굴 TF 통제단장과 이종민(소령) 유해발굴 계획장교가 유해발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장면 7 - 언제나 실전처럼…우리가 훈련을 하는 이유

취재 마지막 날, 수색대대의 DMZ 수색 작전 투입 전 사격훈련을 참관할 수 있었다. 앞서 K1 기관단총만 활용하는 몇몇 부대와 달리 5사단 수색대대는 임무에 따라 K1 기관단총과 K2C1 소총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대대는 DMZ 수색작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주간 투입 전 즉각조치사격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야간에도 매복 작전을 위한 사격을 실시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대대의 설명이다.

 

사단 수색대대장병들이 수색작전 투입 전 즉각조치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사단 수색대대장병들이 수색작전 투입 전 즉각조치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1시 방향 적 발견! 사격 실시!”

사격을 시작하는 구호도 이색적이었다. 실전 상황을 부여해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날 사격은 입사호쏴 자세로 진행됐다.

소총 사격이 끝난 뒤 실시한 K3 기관총 사격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엎드려쏴 자세를 한 병사에게 여러 명의 간부들 함께 지도를 하고 있는 것. 첫 작전 투입을 앞둔 병사라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간부들의 세심한 지도 덕에 이 병사는 사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가는 글 - 영혼을 이어받은 자

화살머리고지의 한반도평화탑을 향해 가던 길.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목 위로 올라온 험난한 눈길을 걷던 기자에게 수색팀장 최한별 중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10일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부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표범여단 수색중대 장병들이 경계작전을 하고 있다. 조용학 기자

 

“힘드시죠? 원래 눈길을 걷으면 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앞서 난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조금은 편해지실 겁니다.”

실제로 그랬다. 약간의 숨이 돌아오자 최 중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것은 마치 눈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배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평화를 지키고 있는 5사단 장병들이 걷고 있는 길이 바로 이런 것일까? 70년 전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 우리는 조금은 더 수월하게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철원·연천 지역은 한반도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꼽힌다. 그런 이곳을 지키고 있는 5사단 장병들은 ‘영혼을 이어 받은 자’였다. 선배의 용기가 사단 장병들에게 끊임없이 전해지는 한 평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들었다. 맹수열 기자

글=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사진=  조용학 기자 < cat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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