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이지환 조명탄] 할머니와 우주선

입력 2022. 08. 05   16:13
업데이트 2022. 08. 0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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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이지환 정형외과 전문의·작가


나쁜 전화였다. 익숙하지 않은 아침, 어머니가 걸어온 전화는 불안한 목소리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낯섦은 으레 불온한 소식을 끌고 온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셨대. ‘우직’ 하는 소리가 났고, 지금 아파서 꼼짝도 못 한다고 하셔. 어찌해야 할까?”

미수(未壽)를 바라보는 연세에 넘어져 옴짝달싹 못 하신다니. 십중팔구 엉덩이뼈가 부러졌으리라. 군의관이던 나는 딱히 도움 드릴 방도가 없었다. 119에 연락하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엑스레이(X-ray)를 찍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드리고 기다릴 뿐이었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해 기본 검사와 함께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했다. “할머니 엉덩이뼈가 부러져 수술해야 한다고 하시네. 어떤 수술을 하게 될 것 같니? 엑스레이 사진 첨부할게.”

역시나 엉덩이뼈는 깨지고 부러져 있었다. 수술이 필요했다. 다만 깨진 모양새가 좋지 못해 금속으로 부러진 뼈를 고정하긴 어려워 보였다. 망가진 뼈를 제거하고 인공관절 치환물(Implant)을 넣어야 했다. 꽤 큰 수술이다.

뼈가 부러졌다고 인공관절 수술까지 해야 한다니. 무언가 과한 치료가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엉덩이뼈는 우리 몸을 지탱하고 지지하는 중요한 부위다. 모양도 꼭 지팡이와 닮았다. 골반에 연결되는 엉덩이뼈의 머리와 목 부분은 지팡이 손잡이처럼 생겼다. 뼈의 목을 지나면 지팡이의 단단한 자루처럼 곧게 뻗은 몸통이 무릎과 연결된다. 그러니 엉덩이뼈는 우리 몸에 내재된 두 자루의 지팡이인 셈이다.

몸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엉덩이뼈가 부러지면 걷지를 못한다. 약하게 고정하면 또 부러진다. 결국 견고하지 못할 모양으로 부러진 엉덩이뼈는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안전하다. 약한 뼈를 제거하고, 티타늄 합금과 고밀도 세라믹으로 만든 단단한 인공 치환물을 넣어 엉덩이 관절을 대체해야 한다.

물론 초창기 인공 치환물은 그리 튼튼하지 못했다. 1888년 기념비적인 첫 엉덩이 관절 인공관절 수술에는 석고와 시멘트가 치환물로 사용됐고, 1938년에는 스테인리스스틸로 인공 치환물을 만들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엉덩이 관절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뼈를 대체할 치환물은 너무나 약했다.

어떻게 하면 더 튼튼한 치환물을 만들 수 있을까? 실마리는 엉뚱하게도 우주선에서 나왔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소련은 세계 최초로 우주에 사람을 보냈고, 질 수 없던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통해 달을 탐사했다. 열띤 우주 경쟁에 세계는 열광했고 ‘스타워즈’ 같은 공상과학(SF)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우주선에 사용될 ‘더 가볍고, 더 안정적이며, 더 압력에 잘 견디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본이 유입됐고, 각종 합금 및 플라스틱 기술이 발전했다.

덕분에 인공관절 치환물도 혜택을 봤다. 티타늄·코발트 합금, 고밀도 세라믹 등 현대 인공관절 치환물은 우주선 소재가 꽤 많다. 할머니 엉덩이에 들어간 인공관절 치환물도 그러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할머니는 통증으로 고생했고, 수술 후 섬망으로 주변을 괴롭혔지만 이내 일상으로 복귀했다. 할머니 스스로 화장실도 잘 다니시니 자녀들도 걱정을 덜었다.

간간이 확인한 할머니의 걸음걸이는 꽤 예뻤고,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겹게나마 가능했다. 그런 할머니께 가끔 말한다.

“할머니, 할머니 엉덩이는 우주선이야. 그리고 할머니는 그걸 운전하는 우주비행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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