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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섭 교수실에서] 전쟁 연구가로서 투르 드 프랑스를 보는 소회

입력 2022. 07. 25   15:03
업데이트 2022. 07. 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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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섭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소령
심호섭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소령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의 열기는 한창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1903년 시작된 투르 드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클 로드 레이스이자,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시청자 수가 가장 많은 스포츠 대회다.

우리나라도 2019년 기준 자전거 이용 인구가 1300만 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사이클링은 대중적인 운동이다. 사이클링의 가장 큰 매력은 내 힘으로 페달을 굴려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과 자전거가 결합한 ‘반인반기(伴人半機)’ 운동이기에, 혹자는 자전거를 잘 타려면 좋은 장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이클링의 주역은 언제까지나 동력원인 사람이다.

사이클링은 혼자 해도, 여럿이 함께해도 좋다. 혼자 타면 유유자적하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고, 전력으로 타면서 체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여럿이 함께하면 좋은 이유는 주로 바람 때문이다. 무풍이어도 속도로 인한 공기 저항 때문에 뒤 바람이 아닌 이상 바람은 늘 적이 되곤 한다. 여럿이 함께 타면 동료와 서로 선두에서 번갈아 가며 바람을 막아주어, 힘을 덜 들이며 오랫동안 탈 수 있다.

투르 드 프랑스는 팀 스포츠다. 올해 참가한 22개 팀 176명의 선수는 21개 구간으로 구성된 총거리 3500㎞를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달려야 한다. 코스에는 해발고도 3400m의 피레네와 4800m의 알프스산맥이 포함돼 있어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

연속된 레이스에서 쌓은 피로와 스트레스, 최대 시속 100㎞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다 한순간에 큰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 장비 고장, 주행을 방해하는 게릴라 시위나 관중들 그리고 천재지변과 같은 마찰,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만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팀원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극복해 나간다.

투르 드 프랑스 대회 전체를 전쟁에 비유하면 각 구간에서의 경쟁은 전투다. 대회에 임하는 각 팀의 궁극적 목표는 팀 리더가 종합우승을 거머쥐어 옐로우 저지(우승자가 입는 옷)를 입는 영광을 맞이하는 것이다.

대회의 최종 우승은 총 걸린 시간으로 결정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전투에서 승리가 필요하지 않듯이, 우승을 위해 21개 구간 모두에서 이길 필요는 없다. 어떤 구간에서는 체력을 비축하고 어떤 구간에서 압도적으로 기록을 낼지 전투력의 집중과 절약을 위해 머리를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경쟁자와 시간 격차를 벌릴 수 있도록 우리 팀이 자신 있는 구간에서 시간을 버는 게 승리를 위한 기본 전략이다. 또한, 각 구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팀원의 탈락을 최소화하고 수적 우위를 확보해 전술을 다양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이스에서 팀 동료가 많이 남아 있을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 팀과 선수를 견제하고 체력을 소모하게 하면서, 우리 팀 리더가 승리할 여건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클 로드 레이스에서 우승의 영광은 보통 팀 리더가 갖는다. 팀 리더의 우승은 팀 전체의 우승과도 같다. 전략, 전술상 팀원의 기여와 헌신 없이 리더의 우승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승한 리더는 그 영광을 팀원에게 돌린다. 군대의 생리도 마찬가지다. 지휘관이 빛나는 건 부대원이 있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부대원에게 존경받고 부대가 그 지휘에 기꺼이 따라 함께 공을 세우고, 지휘관은 그 영광을 부대원에 돌릴 수 있는 군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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