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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34회·끝] 터키형 자주포 화력시범 대성공

신인호

입력 2022. 07. 0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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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자주포의 야간사격. 국방일보DB
K9자주포의 야간사격. 국방일보DB


MTU 엔진의 한국 판매 문제가 수 개월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국방과학연구소·삼성테크윈의 연구개발진이 터키(‘튀르키예’ 이전의 국가명)에 파견돼 시제품 제작·조립을 지원했다.


이렇듯 터키의 자주포사업이 한국·터키 정부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고 있음을 파악한 독일 정부는 마침내 2000년이 저물어가는 12월15일 MTU회사의 엔진을 터키 자주포용으로 한국에 수출하도록 승인했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주효한 것이다.


"그때까지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실무선에서 책임지기로 각오한 점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는데, 정말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김응천 해병중령에게는 그때 큰 한숨을 쉬던 표정이 남아 있는 듯 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 그는 힘이 부칠 때마다 이 해병대 정신을 떠올렸다. 그런 정신으로 추진한 K9 자주포 수출 성사에 그는 만족해하며 보람찬 미소를 보여주었다.


K9 터키형 시제품. 사진=국방과학연구소
K9 터키형 시제품. 사진=국방과학연구소


2000년 12월30일, 6개월 만에 터키형 자주포 시제품이 완성됐다. 


"우리는 이미 개발해 보았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터키 기술자들은 K9에 대해 한가지라도 더 알기 위해 서투른 영어로 진지하게 많은 질문을 해왔어요. 과거 기술정보 습득을 위해 선진국에 나갔을 때 내가 저런 모습으로 물어보았을 텐데 이제는 가르쳐 주는 입장이 됐구나 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고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이종효 선임연구원) 


터키는 터키형 자주포를 한국의 K9 자주포의 수출 명칭인 천둥(thunder)과 형제의 의미를 갖도록 폭풍(storm)이라는 뜻의 터키어 프트나(firtina)로 명명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9 자주포의 시험평가 기준과 절차서를 영문화해 터키에 제공했다. 이어 동계·사격·하계시험이 한국 측의 기술지원 아래 터키포병학교 주관으로 실시토록 계획됐으며 1월 말부터 2월 초순까지 동계시험이 추진됐다. 동계시험 장소인 사르카므쉬는 터키 동부 산악지역. 해발 약 2100m에 한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까지 떨어지고 겨우내 눈으로 덮이는 곳이다.


K9 터키형 자주포를 생산하는 정비창과 성능시험을 실시한 사격장 등 주요 기지 위치도.
K9 터키형 자주포를 생산하는 정비창과 성능시험을 실시한 사격장 등 주요 기지 위치도.


"터키 측은 눈 위에서의 기동시험을 가장 중요하고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터키군의 경험과 지형상 그랬던 것인데 우리는 한국 스키장에서 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자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시제품의 기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삼성테크윈 전진모 차장)


터키에 파견돼 시험평가 기간 중 기술지원을 담당한 한국 연구개발진은 한국에서의 시험평가 경험을 바탕으로 시험에 대해 조언하고 시험간 발생하는 문제점을 현지에서 즉각 해소, 한국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했다. 특히 시험평가 중 터키 운용병의 실수로 이송기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 시험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한국 기술지원팀은 부품을 공수, 단 5일 만에 복구했다. 한국 특유의 신속성과 터키 자주포사업에 대한 한국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면서 수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사고마저 수출 성사에 플러스로 작용하는 계기가 되도록 했다.


강설과 혹한의 환경에서 사격성능시험 중인 K9터키형 자주포. 사진=국방과학연구소
강설과 혹한의 환경에서 사격성능시험 중인 K9터키형 자주포. 사진=국방과학연구소


시험기간 중 터키군 총사령관 크브르크올루 대장이 방문했다. 총사령관은 1㎞ 떨어진 곳에 드럼통을 세워놓고 사격하라고 지시했다. 그 의도가 의아스러웠지만 드럼통은 포탄에 그대로 관통됐다. 총사령관은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며 지상군사령관에게 터키형 자주포를 포함, 지상화력 장비를 모두 동원해 국민들에게 화력시범을 보이라고 지시했다.


시험평가 중인 자주포로 전 국민 앞에서 화력시범이라니? K9 터키형 자주포의 성능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시험평가단은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총사령관이 내린 화력시범 지시의 속내를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터키형 자주포는 터키 중남부에 위치한 카라프나르 사격시험장으로 이동, 2001년 3월10일부터 23일까지 사격시험을 실시했다.


"카라프나르 시험장은 지상에서 직접관측으로 40㎞ 사거리 및 분산도 확인이 가능한 시험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다에 사격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생각할 때 참 부러운 사격장이었습니다. 시험기간 중 최대사거리·발사속도·분산도 등 사격 관련 기본성능을 확인했는데 모두 기준을 충족했습니다."(이진영 책임연구원) 


2001년 3월28일 시범사격의 성공적 실시에 이어 낮기온이 40도를 웃도는 터키 동남부 디야로바카르 지역에서 하계시험을 실시한 후인 2001년 5월12일, 화력시범의 날이 마침내 밝아왔다. 터키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장과 전 장관·국회의원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력시범이 시작됐다. 


특이한 점은 이때 나눠 준 모자 정면에 바로 K9 터키형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메모지도 그랬다. 우리 측 관계자들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우며, 이 수출사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긍지를 느꼈다.


화력시범은 터키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터키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 지상화기가 차례차례 화력시범을 보였다. 이윽고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K9 터키형 자주포가 등장했다. 날렵한 기동시범에 이어 혹시나 하는 우려를 일소하듯 급속사격, 최대발사속도 및 최대사거리 사격까지 완벽하게 사격을 마쳤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인사가 기립, 성공적인 화력시범에 참가한 장병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화력시범 성공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삼성테크윈 해외영업팀장 김하섭 상무는 터키에 2001년 2월 불어닥친 외환위기를 우려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터키의 군사비 감축 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따라 군사비를 삭감하게 되면 자주포사업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범이 성공하자 속으로 이제는 됐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화력시범은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에게 군이 추진하는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됩니다.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이후 군사비 감축 여론이 수그러들기 시작했거든요. 그때 시범장에서의 자주포 모습, 벅찬 감정, 감격스러운 장면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합니다."(당시 주터키 국방무관 고현수 대령)


화력시범·시험평가가 성공리에 끝나자 2001년 7월 터키 지상군사령부와 삼성테크윈이 터키 자주포 1차 생산 24문에 대한 공급계약을 6500만 달러(850억 원)에 체결했다. 우리 방위산업 사상 최대의 수출이 성사된 것이다. 2011년까지 350문 이상 10억 달러(1조3000억 원) 이상의 수출이 예상된다.


현재 터키와는 K9 자주포용 탄약 기술 이전 및 수출 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 또 개발 중인 탄약운반장갑차도 협의 중이어서 대터키 방산협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중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추가 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 수출된 K9과 K10탄약운반장갑차. 사진=노르웨이 육군
노르웨이에 수출된 K9과 K10탄약운반장갑차. 사진=노르웨이 육군


일찍이 KH179 견인곡사포를 개발한 직후인 1983년 화포자동화 구상에서부터 대(對)터키 수출이 이뤄지기까지 근 20년, 그리고 터키에 진출하기까지 그 힘들고 어려운 연구개발의 험로를 걸어온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산업체 연구진은 이제 그동안 묻어두었던 소감을 쏟아낼 만도 한데 정작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는 등 짤막한 몇 마디 뿐이다. 


K9이 성공적으로 개발될 수 있었던 요소는 무엇일까. 미래 전장환경을 내다보고 최초 설정한 연구 방향을 개발 완료 때까지 유지했던 점, 역량 있는 사업책임자 등을 개발단계에 따라 적시에 임명해 사업을 이끌어간 점, 많은 연구원들이 체계종합·무장·탄약·사격통제·기동체계 등 관련 분야의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며 발전시켜온 점, 특히 힘든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투철한 사명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명품은 어느 한두 명의 힘에 의해, 그리고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31회에서 설명했듯 전력화가 한 해만 늦어졌어도 K9이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K9은 포병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현재 전방 포병부대에 속속 실전배치되고 최근 육군이 K9의 통상 명칭을 천둥으로 정했다는 소식,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들은 K9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명품을 위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촌각을 아끼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음을 전하며 우리의 명품 155㎜ 자주곡사포 K9의 연재를 마친다.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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