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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2주년 특집] 참전용사에게 듣는다 6·25전쟁 영웅 이춘식 옹

임채무 기사입력 2022. 06. 23   15:59 최종수정 2022. 06. 23   17:24

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잊혀진 전쟁은 없다
조국을 지킨 전쟁이 있을 뿐

 
6·25전쟁 72주년 특집
연중 기획-참전용사에게 듣는다 ① 6·25전쟁 영웅 이춘식 옹

 
1947년 5월 22일 입대
6·25전쟁 처음과 끝 모두 겪으며
생사 고비 수없이 넘겨
우리 군 활약·참전용상 희생
젊은 세대들이 기억해줘야…

 
무공훈장만 4개, 많은 기장도 받아
생생한 증언 기록위해 『축어록』 제작



굳어진 표정과 탄식.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는 말이 나오자 6·25 참전용사 이춘식(92) 옹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듯 이옹은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겪은 전쟁이었다. 조국과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피의 고지를 넘고 또 넘었다. 그 공로로 받은 무공훈장 수만 무려 4개. 이런 ‘영웅’에게 잊혀진 전쟁이라니, 말문이 막힐 만도 했다. 포성이 멈춘 지 70년을 향해 달려가고, 전쟁의 상흔도 치유되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영웅들의 희생·헌신은 점차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6·25전쟁을 단순히 과거로 치부하며 잊어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6·25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국방일보는 6·25전쟁과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해 오늘부터 정전협정 70년을 맞이하는 내년 7월 27일까지 13개월에 걸쳐 참전용사 ‘특별인터뷰’를 진행한다. 그 첫 순서로 6·25전쟁의 산증인이자 영웅인 이옹을 만났다. 이옹이 연로한 점을 고려해 인터뷰에는 아내 김금순 여사와 아들 이병하 씨가 도움을 줬다. 글·사진=임채무 기자

1967년 3월 열린 베트남전쟁 파병 환송식에서 이춘식(오른쪽 넷째) 옹과 가족, 부대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들 이병하 씨 제공
6·25 참전용사 이춘식(왼쪽) 옹과 아내 김금순 여사가 이 옹이 6·25전쟁을 비롯해 군 생활 중 받은 훈장과 기장 등을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군 입대 초기 이춘식 옹. 

  아들 이병하 씨 제공


“6·25… 잊을 수 있는 전쟁 아니다”

긴 정적이 흐르고, 이옹의 입에선 “끝나지 않은 전쟁인 6·25는 잊혀진 전쟁도, 잊을 수 있는 전쟁도 아니다”며 “북한과 싸워 이긴 전쟁이자 대한민국을 지킨 전쟁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특히 그는 “전쟁 초기 마치 모든 국군이 해이해져 있었다고 왜곡하는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국군 17연대로 입대했고,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에는 38도선 최서단에 고립된 황해도 옹진반도 일대를 방어했어요. 전쟁 초기 우리가 밀린 게 훈련이 안 됐고, 군기도 해이해 그렇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더라고요. 나는 잘못된 말이라고 봅니다. 내가 있던 17연대만 해도 창설한 지 거의 2년이 된 부대였어요. 부대원 대부분이 숙련된 병사들이었죠. 계급도 다들 병장이고 그랬어요. 부대에 ‘신병’이라는 게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훈련도 참 잘돼 있었어요. 물론 우리가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북한이 계획적으로 대규모 침공을 준비했기에 장비와 병력의 열세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전쟁 중 국군이 수없이 보여 준 활약이 모든 것을 증명합니다.”


죽음 불사한 용기·희생으로 많은 활약

6·25전쟁 발발 전인 1947년 5월 22일 입대한 이옹은 6·25전쟁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증언은 구체적이고 생생했다.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국군의 활약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쟁 승리에는 우리 국군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6·25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앞서 말한 옹진지구전투와 1950년 7월 경북 상주에서 치러진 화령장전투, 1950년 8월 경북 포항에서의 비학산전투, 1953년 7월 강원도 화천 적근산전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모두 우리 국군이 활약한 전투이기도 하죠. 이 중 화령장전투는 우리 연대가 5일간의 전투로 북한군 1개 사단을 격멸한, 그야말로 대승을 거둔 전투였습니다. 덕분에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꿔 놓았죠. 정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비학산전투에서는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어요. 당시 특무상사에서 소위로 현지 임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적 수류탄 파편에 부상을 크게 입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쇳덩이가 몸에 박히고 그랬어요. 근데 당시 상황이 정말 급박했어요. 한 달 만에 병상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전우들도 웬만한 부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오로지 전투에서 싸워 이기는 게 중요했습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군이 맥없이 밀려났다가 유엔군의 도움으로 이긴 전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승리의 중심에는 우리 국군이 있었고,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용기와 희생을 발휘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6·25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노병의 증언, 기록으로 남긴 아들

이옹과 같은 6·25 참전용사들의 증언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전사 연구, 유해발굴, 무공훈장찾아주기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진행형인 6·25전쟁의 실상을 후대가 기억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고령인 6·25 참전용사들이 세상을 등지고 있는 상황.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이옹의 아들 이병하 씨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이씨는 6·25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아버지의 증언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 달여에 걸쳐 아버지의 증언을 녹음한 뒤 이를 문자화한 『축어록(逐語錄)』을 만들었다. 이 축어록에는 이옹의 입대부터 6·25, 베트남전쟁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씨는 “아들이기에 앞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증언이 단순히 추억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아버지와 같은 전쟁영웅들의 공훈을 후대에 남겨 주기 위해,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축어록』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옹은 “6·25 참전용사이자 아버지로서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한다”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68년 만에 주인 찾아온 을지무공훈장

이옹은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군에 남아 조국에 헌신했다. 베트남전쟁에는 주월사령부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소속으로 파병됐다.

중령으로 예편한 그는 군 생활 중 무려 3개의 화랑무공훈장과 방위포장(현재 무공포장), 수많은 기장을 받았다. 이런 그에게 지난해 11월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미수여된 을지무공훈장이 있다는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의 연락이었다.

“아들에게 연락했더라고요. 아버님께서 11사단 소속으로 적근산전투에서 공을 세우셔서 을지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됐는데, 당시 여러 상황으로 수여가 안 됐다고요. 알고 보니 68년 전에 수여된 훈장이었더라고요. 사실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전사한 것도 아니고, 전쟁 후 군에 남아 중령까지 근무했는데 이런 사실을 몰랐거든요. 얼마 뒤 조사단 관계자들이 훈장을 주기 위해 우리 집으로 왔는데, 내가 ‘이제 와 뭐 하러 주냐’고 목소리를 좀 높였어요. 나야 살아 있고 이미 많은 훈장을 받은 사람이지만,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의미였죠. 생각해 봐요. 그 유가족들은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 조사단 관계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지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깐 무공훈장찾아주기사업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돼 국가 예산 지원도 정식으로 받고 대대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네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는 고맙다고 했지요. 그래도 빼놓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고요.”


‘참전용사 예우’ 미래를 위한 투자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예우’를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 이옹과 아내, 아들은 한목소리로 예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이옹은 과거의 사람만 보지 말고, 미래의 사람도 보고 참전용사들의 예우를 높여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든지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이 없으면 극복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이러한 정신이 예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들을 예우하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미래에 대한 투자요, 우리나라가 굳건히 서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나라에 헌신했던 분을 기억해 달라는 말을 이 자리를 빌려 당부드립니다.”

글·사진=  임채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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