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R&D이야기 K9 자주포

[K9 28회] 신자포 공개시범사격....급속사격은 못했지만···

신인호

입력 2022. 06. 02   08:38
업데이트 2022. 06. 0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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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개발 시험평가에서 도섭 테스트를 받고 있는 신형자주포. 국방과학연구소.
선행개발 시험평가에서 도섭 테스트를 받고 있는 신형자주포. 국방과학연구소.

"전방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오리털 파카에 내복·양말 두 겹에 등산화로 완전무장했지만 탄착 관측을 위해 OP에 올라가는 날은 완전히 동태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추위와 싸우고 있는 전방 고지의 장병들이 새삼 떠오릅니다."(남석현 선임연구원) 


연구개발도 일종의 치열한 전투다. 땡볕을 피할 그늘도 없는 사격장에서, 영하 20도가 넘는 전방 고지에서 개발장비의 운용성과 개선점들을 찾는 모습은 실전,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안락한 연구 조건이 있을 리 없지만 더 좋은 장비를 개발하려는 연구진은 그같은 악조건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형자주포가 극한적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운용 가능한지 시험하기 위해 선행개발 기간 중 전용시험설비를 건설했다.


신자포를 시험 설비에 넣고 16곳에 온도계와 난방 장치를 설치해 영상 50도까지 높였다. 39시간이나 걸렸다. 신자포 전체가 이 온도로 올라가도록 29시간 동안 유지시켰다. 이어 시동을 걸어 시험 설비 밖으로 나간 뒤 5발의 사격을 실시했다.


이번에는 질소가스가 팽창하며 기화열로 주위 온도를 내리는 원리를 적용해 온도를 영하 32도까지 내렸다. 35시간이 걸렸고 22시간을 유지시켰다. 승무원들은 질소가스로 인한 호흡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산소호흡기를 쓴 후 자주포를 몰고 나와 5발을 사격했다. 성에가 하얗게 자주포 전체에 엉켜 붙었지만 사격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신자포는 사격통제장치, 포·포탑구동장치, 위치확인장치, 무전기 등과 같은 다양한 전자장치가 서로 연결되어 작동된다. 전자장치가 작동할 때는 전자파가 방출되어 다른 전자장비에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다. 설계부터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반대로 외부에서 전자파가 들어오더라도 오작동하지 않아야 한다.


자주포체계팀 임종광 박사, 전자파 전문실의 이응주·김응조 박사와 간종만·권준혁 선임연구원, 전자파시험장의 조재수·김승수 기술원으로 구성된 전자파 대책연구팀은 창원에 위치한 전자파 시험장에서 체계전자파와 관련한 기술 및 운용시험을 통합, 실시했다.


신자포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방사량 측정 결과 합격이고, 자주포 내부 전자장비 간 상호 간섭현상 시험 결과도 양호했다. 외부에서 자주포를 향해 전자파를 쏜 후 정상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시험 역시 합격이었다.


"전자파 실험실이 생기고 설계에서부터 구성품들, 체계조립, 그리고 시험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전자파 대책이 수립되도록 개발된 장비는 신자포가 처음이었습니다."(이응주 팀장)


창원의 기동시험장에서는 환경 적응시험으로 2시간 동안 240㎜에 달하는 강우량에 노출시킨 후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 것을 비롯해 기동성능으로 60% 경사로 등판, 장애물 극복 능력(도섭 및 수직장애물·참호 통과), 항속거리, 주행속도, 조향능력·제동성능 등이 시험되었으며 또한 내구도 주행시험이 실시됐다.


야전에서의 운용시험은 국방과학연구소와 업체 지원을 받아 군이 주도적으로 시험했다. 화포방렬, 사격통제, 자주포 조종수를 비롯한 승무원별 조작 편의성 등을 평가했다. 기존 무기체계와의 상호 운용 적합성은 전술적 사격·직접조준사격·영거리사격·정밀기록사격 등으로 확인했다.


전력화 때 필요한 교리 발전·포반원의 편성·교육훈련분야도 점검됐다. 연구진은 이같은 시험평가 기간 중 겪은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장비도 개발했다. 많은 연구개발진이 경험했듯 사격 후 수입봉으로 8m나 되는 포신을 청소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훗날 자동 포구 청소기를 개발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또 좀 더 완벽한 자주포로 개발하기 위해 개선 요구 사항을 많이 도출해야 했다. 장비를 운용하는 병사들과 많은 대화를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계종합팀장 김동수 박사는 개선 요구 사항을 제안하는 병사에게 1건당 통닭 한 마리의 상품을 걸기도 했다.


처음에 병사들은 이런 연구진의 제안에 의아해했지만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 직접사격 및 영거리 사격용 사거리 카드 부착과 같은 연구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반영될 수 있었다.


8개월에 걸친 선행시험평가 결과 54개 항목 중 기준 충족이 36개였고 기준 미충족과 일부 미흡은 7개·11개 항목으로 나타났다. 이중 작전운용성능(ROC) 보완 및 수정은 5개 항목으로 전체적인 면에서 볼 때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선행시험평가를 끝내고 실용체계개발계획을 세우면서 국과연은 시범사격 계획안을 수립했다. 온갖 가혹한 시험을 거친 선행시제품으로 공개 시범사격을 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행시험평가 후 작전요구 성능을 대부분 충족시킨 상태, 이제는 개발 성공 확률이 높아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그것은 곧 연구진의 자신감이었다.


1996년 6월 충남 안흥의 종합시험장에서 열린 공개사격시범에서 신형자주포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국방일보DB.
1996년 6월 충남 안흥의 종합시험장에서 열린 공개사격시범에서 신형자주포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국방일보DB.


1996년 6월11일 안흥종합시험장. 오후 들어 해무가 다소 가시기는 했으나 시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김동진 합참의장·윤용남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고위 장성과 언론사 기자 및 방산업체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공개 시범사격이 실시됐다.


사업추진 현황 보고에 이어 시범사격이 진행됐다. 정지 상태에서 30초 이내에, 기동시 60초 이내에 각각 초탄이 발사됐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대사거리 40㎞ 시범이 이어지고 다시 1분 이내에 6발의 사격이 끝나자 박수 소리는 더 길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15초 이내에 3발을 발사하는 급속사격이 준비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카운트다운이 끝나도 발사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대기시킨 시제2호가 사격 위치에 등장했다. 다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연구진의 심장은 쿵쾅거리는데, 웬일인지 또 발사되지 않았다.


"장비 고장으로 시범사격을 종료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통제실의 방송이 나왔다. 연구진은 리허설 때는 이상 없이 작동하던 자주포가 하필 결정적 순간에, 그것도 2대가 동시에 고장났을까 하며 원망과 당혹감으로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서둘러 원인을 분석해보니 일부 부품의 단순한 접촉 불량이었다. 무기는 고장 없이 신뢰성 있게 항상 작동해야 한다는 점과 충격 누적이 주는 영향에 대한 고려 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치고는 다소 값이 비쌌다.


신형 자주포 선행개발 종료 후 국방과학연구소는 공개사격시범을 마련하고 주요 성능을 공개했다. 이날 시범 후 현수장치 등 주요 구성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당시 이양호(2020년 작고·왼쪽 둘째) 국방부장관, 김동진(국방부장관 역임·왼쪽 세째) 육군참모총장, 윤용남(2021년 작고·합참의장 역임·왼쪽 네째) 육군3군사령관. 국방일보DB.
신형 자주포 선행개발 종료 후 국방과학연구소는 공개사격시범을 마련하고 주요 성능을 공개했다. 이날 시범 후 현수장치 등 주요 구성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당시 이양호(2020년 작고·왼쪽 둘째) 국방부장관, 김동진(국방부장관 역임·왼쪽 세째) 육군참모총장, 윤용남(2021년 작고·합참의장 역임·왼쪽 네째) 육군3군사령관. 국방일보DB.


후덕한 성품의 이양호 장관은 다과회장에서 "선행개발품을 가지고 이 정도의 우수한 성능과 화력시범을 보인 연구개발진의 노력을 치하한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며 머쓱해 하는 연구개발진에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날 시범사격을 지켜본 국내 언론매체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었다. 신자포의 개발 내용과 성능상의 우수성을 크게 보도하고 또 서울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에도 비중 있게 다뤄짐으로써 국내외의 관련자는 물론 해외 전문가들, 특히 수출 예상국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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