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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구나 ‘신라의 달밤’ 애절하구나 ‘백제의 여명’

기사입력 2022. 04. 21   17:06 최종수정 2022. 04. 21   17:14

옛 왕도로 떠나는 여행
 
신라의 천 년 역사
경주 대릉원·첨성대·감은사지 등 명소
보문단지~문무대왕릉~감포항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도 인기
 
백제의 고결한 정취
부소산성·백마강·궁남지 품은 부여
부소산 산책로 가볍게 걷기 좋아
미륵사지로 유명한 익산
왕궁리는 백제 궁궐터로 알려져

 

경주 안압지 야경
경주 문무대왕릉 일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감염병의 위세도 한풀 꺾였다.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여행은 옛 왕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스폿,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지도 좋지만, 역사의 흔적을 더듬으며 이 봄을 느껴보는 것도 한층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옛 궁궐을 거닐고 탑의 기단을 쓰다듬어 보는 일. 경주와 부여, 익산에서는 가능하다.


신라 천 년의 찬란한 밤을 걷다 - 경주

들판에 구르는 돌 하나, 길가의 기와 한 장도 하찮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문화재로 가득한 경주. 신라 천 년의 역사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경주 여행의 시작은 대릉원 주변이다. 첨성대를 비롯해 대릉원과 여러 고분군, 계림 등이 모여 있다. 낮도 좋지만 저물 무렵에 찾기를 권한다. 오후 6시 무렵이면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조명을 받은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화려하다. 첨성대 건너편은 계림으로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얽힌 곳이다. 그가 태어날 때 흰 닭이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해서 계림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첨성대에서 계림 방면으로 길을 걷다 서쪽으로 바라보면 둥그스름한 곡선의 능이 몇 기 있다. 부드러운 고분의 곡선이 뒤편 산의 능선과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빚어낸다. 그리고 그 곡선 위로 노을이 장엄하게 번진다.

안압지의 밤 풍경도 분위기 있다. 안압지는 신라의 궁궐을 장식했던 연못이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보이게 하도록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를 조망할 수 없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보문단지에서 문무대왕릉과 감포항을 잇는 코스는 경주 답사 여행코스로도 손색이 없고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추령재를 지나 동해 쪽으로 가다 보면 감은사지다. 완벽한 조형미로 인해 신라 탑의 전형으로 불렸던 감은사탑이 있는 곳이다. 감은사탑의 높이는 13.4m.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신라 탑뿐 아니라 3층 석탑 중에서도 가장 크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감은사탑의 완벽한 조형미는 보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감은사지에서 5분을 가면 문무대왕수중릉이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불에 태워 동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왕위에 있을 때 동해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자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이 같은 유언을 남긴 것이다.

문무대왕릉의 아침 일출은 장관 그 자체다. 거센 파도를 뚫고 문무대왕릉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커다란 햇덩이는 보는 이에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이곳에서 감포항을 지나 구룡포에 닿는 31번 국도는 바다의 낭만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부여 낙화암.


백제 역사의 보물창고 - 부여

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였던 부여에는 우리에게 백제 멸망의 현장으로 알려진 낙화암을 비롯해 수도 부여를 지키던 부소산성 등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여 초입,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부여 지도를 펼친다. 백마강이 부여의 중심을 지나며 크게 휘돌아 흐르는 것이 보인다. 백마강은 부여 사람들이 금강을 일컫는 이름.

백마(白馬)는 ‘큰 나라’라는 뜻으로 백마강은 ‘큰 나라가 있는 강’을 의미한다.

이 백마강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 부소산성이다. 위례성(서울), 웅진(공주)에 이어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사비(부여)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소산은 평소 왕과 태자들이 즐겨 찾는 후원이었다. 산 정상과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은 유사시에 피신처 구실을 했고 왕성을 지키는 보루 역할도 했다.

소나무, 왕벚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 사이로 산책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과 노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부소산성에서 낙화암이 가깝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하지만 삼천궁녀가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는 훨씬 사실적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여의 백제 때 이름은 사비다. 백제가 일군 600년 넘는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사비의 품에서 탄생했다. 당시 사비에는 13만 호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왕도 사비는 나당연합군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다행스럽게도 탑 하나가 남아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으니, 바로 정림사지5층석탑이다. 백제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정림사 탑이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적 유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여를 여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궁남지다. 궁남지는 ‘궁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궁남지 한가운데의 ‘뜬 섬’에는 포룡정(泡龍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다. 이는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에 살던 용이 나타나자 의식을 잃은 뒤 무왕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탄생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뜬 섬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정자로 들어갈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5층석탑 일출

하루 만에 다녀오는 백제 - 익산


전북 익산은 옛 백제의 유적과 근대문화유산이 다수 남아 있어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호남선 KTX를 타고 조금만 서두르면 당일치기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익산 왕궁리는 백제 궁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 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토성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왕궁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5층 석탑이다.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 삼국시대 최초의 화장실이면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도 발견됐다고 한다.

익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미륵사지다. 익산시 금마면 한가운데 솟은 미륵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다. 폐사됐으니 엄밀히 말해 미륵사지다. 신라 땅으로 가 섬섬옥수 선화공주를 데려왔던 사내 무왕이 나라가 기울어가는 시점에 지은 절이다. 시인 신동엽은 시 ‘금강’에서 미륵사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다.

“어느 날 선화는 미륵산 아래 산책하다 미륵불을 캤다. 땅에서 머리만 내놓은 미륵부처님의 돌, 마동왕의 손가락 이끌고 다시 가보았다. 안개. 비단 무지개, 백성들이 모여 합장, 묵념. 그들은 35년의 세월 머리에 돌 이고 염불 외며 농한기 3만 평의 땅에 미륵사, 미륵탑 세웠다.”

백제의 고결한 웅지를 집약한 이 절을 두고 훗날의 역사는 ‘동양 최대 최고’라는 수식어로 치장한다. 『삼국유사』에는 ‘전각 탑 회랑을 각각 3개씩 세우고 그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고 적혀 있는데, 2000개가 넘는 돌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미륵사탑은 목탑 양식으로 쌓은 최초의 석탑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컸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다. 국내외를 여행하며 신문과 잡지에 여행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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