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R&D이야기 K9 자주포

[K9 17회] 신자포, 하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지만....

신인호

입력 2022. 04. 20   10:33
업데이트 2022. 04. 2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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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은 심수·잠수도하는 불가능하지만 엔진실에 물이 유입되지 않는 깊이를 고려해 1.5m까지는 도섭할 수 있다.육군28사단 K9자주포가 훈련장 인근 하천을 도섭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K9은 심수·잠수도하는 불가능하지만 엔진실에 물이 유입되지 않는 깊이를 고려해 1.5m까지는 도섭할 수 있다.육군28사단 K9자주포가 훈련장 인근 하천을 도섭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본래 계획대로라면 1993년 1월부터 자주포 시제(試製)를 1차 개발하는 선행개발 단계에 진입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가 연구 능력이나 기술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진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선행개발 사업 승인까지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하므로 선행개발 착수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육군이 제출한 ROC 보완 결과를 연말부터 검토하던 합참은 3월에 발칸 대공포 탑재 및 잠수도하 능력 구비가 가능한지 기술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각각 대공 능력을 강화하고 하천 장애물 극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적용불가’로 보고하고 합참이 이해를 같이하면서 합참의 체계개발동의서(LOA) 작성 지시는 그런대로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3월 초 육군참모총장이 김진영 대장에서 김동진 대장으로 교체되는 전격 인사가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단행됐다. 이를 계기로 군 지휘부에 대한 추가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4월5일 권영해 국방부장관은 6월에 실시되던 정기인사를 앞당겨 수일 내로 육군 4성 장군 2, 3명을 교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연구진이었다. 이제 LOA 작성 지시를 내리는 결재 과정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결재권자인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윤용남(尹龍男 육군참모총장·합참의장 역임, 2021년 별세)중장의 진급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육사19기로 늘 선두를 달려온 윤장군이 아니던가. 윤장군의 진급이 결정되더라도 임지로 떠나기 전에 LOA 작성 지시를 해주어야 했다. 만약 결재가 다음 본부장에게 넘어간다면?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게 된다. 


합참의장 재임(왼쪽) 및 예편 후 2002년 국방일보와의 인터뷰 때의 윤용남 장군. 국방일보DB.
합참의장 재임(왼쪽) 및 예편 후 2002년 국방일보와의 인터뷰 때의 윤용남 장군. 국방일보DB.


이윽고 4월8일 예상대로 윤장군의 대장 진급과 3군사령관 보임이 발표됐다. 윤장군에게는 9일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에 대한 진급 신고, 12일 군사령관 취임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진은 한숨을 절로 내쉬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뛰어가 결재를 조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9일 체계팀의 김동수(金東洙·육사32기·2009년 순직)박사가 전화기를 무겁게 들었다. 상대방은 뜻밖에도 윤 장군의 보좌관인 노정수 중령(육사34기·예편)이었다. 김박사는 육사 후배이자 축구부 활동을 함께했던 노중령에게 간절한 ‘어떤’ 부탁을 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고민은 그날 윤장군이 청와대 신고를 끝내고 즉시 임지로 향할지, 본부장실에 다시 들를지 보좌관도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천우신조라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윤장군은 합참에 모습을 나타냈다. 임지로 떠나기 앞서 부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보좌관은 얼른 결재 서류를 챙겨 "본부장님, 신자포 LOA 결재 건입니다. 마지막 결재입니다"라며 내밀었다. 입안이 바짝 마르는 듯했다. "아, 그거! 이리 줘." 윤장군은 흔쾌히 서명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한때 연구소 내에 ‘체계개발사업은 외줄타기’라고 비유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 아슬아슬함과 긴장이란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요. 신자포 개발사업은 그렇게 외줄을 타는 듯이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면이 적지 않았습니다."(김동수 박사)


이제 LOA 작성은 연말부터 육군이 사전 준비해 쉽게 완성되는 듯 싶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또 튀어나왔다. 육군 교육사·국방과학연구소가 체계개발동의서에 서명을 남겨 놓고 있을 때 군수분야에서 창정비 요소개발을 체계개발 기간 중에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가뜩이나 사업관리 진행이 더딘데 착잡하기만 했다. 창정비 요소개발은 예산·기간이 막대하게 소요된다. 전력화가 예정보다 4~5년 늦춰지고 예산도 재편성해야만 한다. 


또 창정비는 전력화 후 보통 10년이 지나야 수행되므로 관련 설비를 일찍 갖추면 실제 창정비 도래 때 설비의 가동 여부가 문제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런 이유를 들어 설득했지만 군수분야에서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결국 체계개발 기간 중 창정비 요소개발 계획을 작성키로 하고 8월 사용군·연구개발자 간 체계개발동의서가 작성되었다. 1년 2개월! ROC 보완과 LOA 확정까지 소요된 기간이다. 참으로 아까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국방일보 국산 무기체계 개발 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17> 외줄 타듯 긴장 속 진행 2002년 11월 27일자 


■ 용어해설 


체계개발동의서 

LOA·Letter of Agreement 


무기 체계 개발 착수 시 연구 개발을 관리하는 기관이 개발할 무기 체계의 운영 개념·요구 제원·성능·소요 시기·기술적 접근 방법·개발 일정 계획 및 전력화 지원 요소와 비용 분석 등에 대하여 소요군의 의견을 고려하여 작성하여 소요군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문서를 말한다.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2017 국방기술품질원.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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