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최미란 시가 있는 풍경] 저는 괜찮습니다

입력 2022. 03. 24   16:33
업데이트 2022. 03. 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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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란 시인
최미란 시인


말을 엮어 긴 줄을 만들고

줄을 엮어 쉴 자리를 만들고 싶을 텐데

- 저는 괜찮습니다

이 짧은 문장에 천 길 마음을

담아 봅니다



여기저기 밴드로 화장을 하고

이마에도 볼에도 깊게 파인 상처

입고 있는 옷은 신형 찜질방

그 밀폐된 공간엔 비가 내립니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기 전부터

하얀 꽃으로 피어나

희망의 백신을 전파하는

당신



- 저는 괜찮습니다

- 우리는 반드시 이겨 낼 것입니다

당신이 계신 자리에 하얀 봄이 피어납니다


시 감상

코로나19가 변종을 거듭하면서 우리네 삶을 옥죄고 있다. 어딜 가나 PCR 검사를 기다리는 다급한 인간 띠는 늘어진 뱀 꼬리처럼 길어서 종잡을 수 없다. 생각은 짧고 말은 예민하고 다급하다. 누구든 소통과 공감을 얘기하지만, 갓길 없는 일방통행로에서 부딪친 말은 저마다 ‘내 말을 들어달라’는 악다구니 소리로 시끄럽다. 갈수록 냉혹하고 민감한 시절을 다만 견디며 살아가는 지친 일상이 춥다.

무너지고 막힌 일상의 사슬 너머로 스마트폰이 길을 열지만, 우리네 존재의 가치와 삶의 진심을 올곧게 다 전하지 못하고 기진맥진한다. SNS는 문명의 이기와 소통의 경로가 분명할 테지만, 그것은 빛과 어둠이 들끓어 있는 곳이어서 저마다의 욕망을 분출하기에도 바쁘다. 말은 넘쳐 나지만 가슴에 담을 만한 말이 별로 없다.

생명의 존엄과 자유가 그리운 시절, 봄. 봄에는 봄의 언어로 말하고 싶다. 널브러진 쭉정이 말을 버리고, 알곡 차진 말로. “희망의 백신을 전파하는” 봄의 언어로 생각하고, 새순 돋는 일상의 거리에서 인사말을 나누자. “저는 괜찮습니다/우리는 반드시 이겨 낼 것입니다” -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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