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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엘리자베스 항모를 다녀오다

입력 2021. 09. 17   15:52
업데이트 2021. 09. 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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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소령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이종환 소령 해군본부 전력분석시험평가단

나는 지난 1일 동해에서 항해 중인 영국 해군의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항모)에 다녀왔다. 지난 5월 모항인 포츠머스항을 떠나 3개월 넘게 항해해 한국을 방문한 영국 항모전단은 코로나19 상황으로 부산항에 기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군본부와 영국 대사관, 항모전단이 긴밀하게 소통해 방문하게 됐다.

아침부터 내린 비 때문에 항모로 이동하는 헬기가 이륙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영국 해군의 멀린(Merlin) 헬기는 힘차게 날아올라 퀸엘리자베스 항모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비행하자 저 멀리 항모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0여 년 후 우리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경항공모함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매우 설?다. 퀸엘리자베스 항모는 배수량 6만5000톤, 길이 280m, 폭 70m 크기의 중형 항모다. 우리 해군이 추진 중인 경항모보다는 크지만 미 해군 항모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악천후 속에서도 헬기는 안정적으로 갑판 위에 내려앉았다. 방문자들은 함교로 이동해 F-35B 전투기 이륙 장면을 지켜봤다. 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리는 악조건이었지만 F-35B는 굉음과 함께 스키점프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B는 후미에 있는 리프트 팬(Lift Fan) 덕분에 짧은 이륙 거리를 극복하고 이륙할 수 있다.

미래 우리 경항모에 수직이착륙기가 탑재돼야 한다는 점에서 F-35B 이착륙 시연은 굉장히 의미 있었다. 특히 조함장교인 나로서는 무거운 전투기를 항모에서 운용하기 위해 함정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F-35B가 항모에 이착륙할 때 갑판 온도는 최대 1200도까지 올라가지만 불과 30초 만에 원래 온도로 돌아간다고 한다. 또한 함수 쪽 비행갑판에서 항공기가 이륙하는 동시에 함미 쪽 비행갑판에 항공기가 착륙하는 등 갑판을 비우지 않고 출격 횟수를 늘릴 수 있는 비결은 향후 우리 해군 항모에도 꼭 적용돼야 할 기술이다.

F-35B 이착륙 시연 이후에는 항모 이곳저곳을 견학하는 기회가 있었다. 최신식 항모답게 여러 가지를 새로 접할 수 있었다. 먼저 함재기를 운용하는 항모답게 내부 구조가 항공 임무 수행에 최적화됐다. F-35B 조종사가 침실에서 비행갑판으로 가는 모든 경로가 직선화됐고, 비행갑판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밀집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화됐다.

또 격납고도 정비를 최적화하기 위해 전·후부로 분리해 운영한다는 점은 경항모 설계에 참고할 만한 점이었다. 특히 항공기에 장착하는 무장을 자동으로 이송하고, 함정 내에서 항공기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항공통제체계는 아직 미 해군도 갖추지 못한 신기술이라고 한다. 영국 해군은 이 기술을 도입해 항모 운용 인력을 4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퀸엘리자베스 항모 방문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격언이 딱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나를 비롯한 해군 관계자들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소중한 경험이 미래에 바다를 누빌 우리 해군의 경항공모함에 고스란히 녹아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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