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삶의 전부였던 연인의 죽음…더욱 섬세해진 시선

입력 2021. 08. 03   15:50
업데이트 2021. 08. 0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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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임스 티소와 오르세

19세기 상류층 여성 생동감 있게 묘사
영국·프랑스 패션 논문 인용되며 주목
세밀하고 사실적…자료적 가치 인정

열여덟살 차 캐슬린 뉴턴과 운명적 조우
결핵으로 연인 잃고 말년 종교화에 집중

‘꿈꾸는 그녀(La Reveuse)’
‘꿈꾸는 그녀(La Reveuse)’
‘야망 있는 정치 여성’.(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미지=필자 제공
‘야망 있는 정치 여성’.(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미지=필자 제공
‘저녁 무도회’(오르세 미술관 소장).이미지=필자 제공
‘저녁 무도회’(오르세 미술관 소장).이미지=필자 제공
프랑스 파리에는 오르세 미술관이 있다. 문을 닫은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그곳에는 19세기 작품이 주로 전시돼 있다. 오늘은 그중 제임스 티소(1836~1902)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임스 티소는 원래부터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다. 사진 같은 정교함은 돋보였지만 새로운 사조를 만든다거나 하는 예술적 위대함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다. 세밀하고 사실적인 작품에 담긴 자료적 가치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제임스 티소의 작품이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패션을 다루는 여러 논문에 인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한 가지 호기심이 더 생겼다. 여자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한 여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캐슬린 뉴턴(Kathleen Newton)이다.

제임스 티소는 프랑스 사람이다. 아버지는 의류 사업을 했고, 부유한 편이었다. 그는 사업을 이어받으라는 아버지의 뜻을 뒤로하고 스무 살 무렵 미술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간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한창 활동할 때였다. 처음에는 그들과 어울린다. 하지만 작품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제임스 티소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자유로우며, 성공보다는 삶을 즐겼던 스타일로 보인다. 성공을 원했다면 아카데미 미술이나 인상주의 미술로 갔겠죠. 제임스 티소는 한때 자치정부 코뮌에도 가담한다. 하지만 코뮌이 붕괴해 입장이 곤란해지자 훌훌 털고 영국으로 간다. 그리고 상류층에게 예쁜 작품을 그려주며 큰돈을 벌고 정원이 넓은 집도 산다. 여기까지 보면 제임스 티소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며, 사업수완도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40세 런던 생활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영국의 수도원 학교에 다니던 16살의 소녀 캐슬린 뉴턴은 인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부른 이유는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오랜 선상 여행 중에 모르던 사람과 사랑을 나눈 것이다. 인도에 도착한 그녀는 사실을 숨기고 아버지가 정해 놓은 사람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국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혼당한다. 딸까지 임신한 17살의 이혼녀 캐슬린 뉴턴은 인도를 떠나 런던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언니 집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22살 때의 일이다.

그런 22살의 캐슬린 뉴턴과 40살의 제임스 티소가 런던에서 운명처럼 마주친다. 수군거림을 참고 살던 어린 이혼녀와 귀부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중년 화가와의 만남이다. 소문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제임스 티소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임스 티소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산다. 안 좋았던 소문은 제임스 티소를 경제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귀부인들이 그에게 주문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티소는 연연하지 않는다. 주문이 없으면 캐슬린 뉴턴을 그린다. 하지만 꿈 같은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캐슬린 뉴턴은 결핵이었다. 당시로는 불치병이었다.

제임스 티소는 점점 아파가는 그녀를 바라봐야 했고, 그때 그린 작품이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꿈꾸는 그녀(La Reveuse)’다. 정원에 있는 커다란 의자에 누워 있는 그녀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 팔은 불편하게 구부러졌지만 움직일 힘도 없는지 그대로 둔 그녀의 눈 밑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캐슬린 뉴턴은 28살에 세상을 떠난다. 제임스 티소는 그녀의 시신을 4일간 지키다가 5일 후 모든 런던에서의 흔적들을 대충 처분하고 훌훌 영국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는 런던에 가지 않았다. 사실 캐슬린 뉴턴이 화가 제임스 티소의 작품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임스 티소의 삶은 그 후 크게 변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제임스 티소는 얼마 후 작품의 방향을 완전하게 바꾼다. 그의 말년 작품은 종교화들이다.

‘저녁 무도회’와 ‘야망 있는 정치 여성’은 종종 비교 작품이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남녀의 모습을 45도쯤 뒤에서 그린 것인데 구성이 거의 같다. 여인의 옷 색깔만 다르지 포즈는 비슷하다. 물결치듯 휘감긴 고급 드레스가 돋보인다. 하나하나 손으로 붙인 주름 장식이 수없이 많은 값비싼 드레스이다. 세트로는 타조 깃털로 만든 커다란 부채가 있다. 두 여인 모두 같은 각도로 부채를 들고 있으며 왼편을 바라본다. 연미복을 입은 남자는 머리가 하얗다. 얼굴은 여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실루엣만으로도 나이가 지긋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왼편 윗부분에서 장소를 알 수 있다. 연회장의 사교모임 파티다. 전체 내용은 중년 남자가 고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과 사교 파티 장소에 들어서는 광경이다.

이제부터는 다른 점을 찾아볼까? 먼저 제목이다. 제임스 티소가 42살에 그린 노란 드레스 그림의 제목은 ‘저녁 무도회’다. 특별할 것이 없다. 보이는 그대로가 제목이다. 그에 반해 46살에 그린 핑크 드레스 그림의 제목은 ‘야망 있는 정치 여성’이다. 감정이 숨어 있다. 여인이 야망을 갖고 정치적으로 행동한다고 본 것이다. 세밀하게 보면 좀 더 차이가 보인다. 먼저 노란 드레스 여인의 표정은 무심하다. 초점 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반면에 핑크 드레스 여인의 표정은 주변을 의식한 듯 애써 미소를 짓는다. 정치적 행동이다.

중년 남성도 차이가 난다. 노란 드레스 그림의 남성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들어선다. 반면 핑크 드레스의 남성은 허리를 굽히며 왼편을 바라본다. 들어서며 눈이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뜻이다. 정치적인 행동이다. 주변을 보면 노란 드레스 그림에는 없는 장면이 핑크 드레스 그림에는 그려져 있다. 한 신사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옆 사람에게 수군댄다. 나이 든 부자와 찰싹 붙어서 있는 젊은 여자를 본 것이다. 왼편 붉은 벨벳 소파 위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피곤한 듯 기대 앉아 있다. 맞은편에는 머리가 벗겨진 노신사가 보이는데 중년 여인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고 핑크 드레스 여인을 힐끔거린다.

노란 드레스 여인이 주인공인 ‘저녁 무도회’가 그려질 즈음 제임스 티소는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둬 돈을 많이 벌었으며, 넓은 집도 샀고, 18살이나 어린 예쁜 애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부러울 것이 없으면 주변을 보더라도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저녁 무도회’는 겉으로 보이는 정도까지만 그려졌다.

반면에 핑크 드레스 여인이 주인공인 ‘야망 있는 정치 여성’이 그려질 즈음 제임스 티소는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부였던 캐슬린의 죽음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면 주변을 보는 눈이 전과는 달라진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작품은 가장 달콤한 시절과 가장 아팠던 시절에 그려진 대조적 그림이다. 노란 드레스 여인이 주인공인 ‘저녁 무도회’가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서정욱 미술토크 유튜브 채널.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관련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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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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