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독창적이면 곱씹게 된다

입력 2021. 08. 02   15:50
업데이트 2021. 08. 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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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프랑스에서 만든 도쿄올림픽 광고

스모 선수 등장시킨 홍보 애니메이션
日 유명 풍속화가 이미지 차용 재해석
스포츠 정신·애국심 고취 정형성 탈피
개최국 특성 잘 표현…각인 효과 높여
차별화된 메시지 반추의 지혜 보여줘


도쿄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8일 폐회식이 끝나면 모두의 기억 창고에 저장될 것이다. 이제 올림픽을 시작하기 전으로 되돌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내외에서 많은 광고가 나왔는데, 대개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는 열정적인 내용 위주였다. 모두 좋은 내용이라 한 편씩 볼 때는 완성도가 뛰어난 훌륭한 광고였다. 하지만 실제 시청 상황에서는 여러 광고가 섞여 방송되기 때문에 거의 비슷비슷해 보인다. 각 광고가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텔레비전(France.TV)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내보냈던 광고 ‘스모’ 편(2021)은 올림픽이 끝나도 기억될 것 같다. 도쿄올림픽의 프랑스 중계권을 가진 프랑스TV가 사전에 올림픽 분위기를 띄우려고 만들었다. 영상은 화려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지만, 일본에서 만든 올림픽 광고보다 더 일본적인 느낌을 전달했다. 광고 영상은 낮은 채도와 누리끼리한 색감으로 종이의 질감을 표현했다. 오래된 진짜 종이에 일본풍의 만화를 그린 것 같다. 그래서 프랑스 방송사에서 만들지 않고 일본의 제작사에서 만든 광고로 착각할 수 있다.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프랑스TV의 광고 ‘스모’ 편 (2021). 필자 제공


스모 선수가 방에 앉아 묶었던 머리를 풀고 바다로 가는 장면에서 광고가 시작된다. 스모 선수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를 가르며 서핑을 시도한다. 짧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일본은 올림픽 준비를 마쳤고, 프랑스TV도 준비됐습니다!(Le Japon est pret pour les Jeux Olympiques, France TV aussi!)” 서핑을 하던 스모 선수가 일본 전통 가옥의 처마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면으로 영상이 이어진다. 화려한 회전 기술을 선보이던 스모 선수는 암벽에 매달려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다가 장면이 바뀌면 육상 선수로 변신한다.

육상 준비 자세를 취하다가 스모 선수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는 도중에 수박이 굴러오자 수박이 마치 농구공이나 된다는 듯 농구 골대를 향해 던져 넣는다. 농구 종목을 표현한 스모 선수는 다시 대나무를 집어 들더니 힘껏 도약하며 장대높이뛰기를 시도한다. 도약에 성공한 스모 선수는 장대높이뛰기 동작을 이어가며 실제 경기가 벌어지는 올림픽 주경기장의 한가운데에 도착한다. 그 순간 ‘도쿄올림픽,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라는 영어 자막이 흐르면서 광고가 끝난다.

광고에서는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 클라이밍, 육상, 농구, 장대높이뛰기 같은 올림픽의 여섯 종목을 1인 6역의 시연을 통해 흥미롭게 묘사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신설 종목으로 채택된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포츠 클라이밍을 포함해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일본의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스모 선수는 나타나는 자연환경과 지형지물을 이용해 여러 종목을 연습했다.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를 통해 여섯 종목을 차근차근 설명해내는 기발한 상상력이 놀랍다.

광고에서는 신설 종목으로 채택된 서핑을 표현하기 위해 일본의 풍속 화가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가나가와(神奈川) 해변을 그렸던 목판화 이미지를 차용했다. 일본의 에도 시대(1603~1867)에 서민층의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던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는 만화의 아버지로도 추앙받고 있다. 그의 스케치 작품집의 제목이 ‘호쿠사이 망가(북제만화)’인데, 여기에서 만화라는 말이 유래했다.

한·중·일의 한자 문화권에서 한낱 낙서로 취급되던 만화는 이제 대중문화의 주류가 됐다. 동양 문화권에서 만화는 희평(戱評), 희화(戱畵), 풍자화(諷刺畵)라는 말이 혼용되다 질펀하고 산만하게 그린다는 만화(漫畵)로 정착됐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삽화’나 ‘다음엇지’ 같은 말을 쓰다가, 작가 안석영(1901~1950)의 만문만화(漫文漫畵)가 인기를 끌면서 해방 이전에 만화로 통일됐다.

어쨌든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 스테판 르바루아(Stephane Levallois)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연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의 하나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かながわおきなみうら)’를 재해석해 광고를 만들었다. 해변의 파도 그림은 모네, 반 고흐, 드가, 르느와르, 피사로 같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 릴케의 시, 그리고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프랑스 사람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간주한다.

이 광고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인 스모를 내세웠다. 그리고 호쿠사이의 만화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의 만화 이미지를 차용해 그림, 음악, 영상을 버무리자 일본풍의 풍경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만화에서는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하려고 형상의 특징을 왜곡하고 과장시킨다. 그래서 이 광고는 만화 애니메이션 영상에 가깝다. 바람 솔솔 불고 파도가 몰아치는데 스모 선수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움직인다. 선수의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스모 선수의 경기 장면을 희화화시켰다. 육중한 체구에 특별한 의상을 걸치고 등장한 스모 선수는 일본의 이미지를 한눈에 파악하도록 했다.

올림픽을 주제로 해서 만드는 광고에서는 대개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거나 자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고취하지도 않았고,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일본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개최국의 특성을 충실히 담아냈을 뿐이다. 도쿄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서 사전에 집행된 광고를 분석해보는 까닭은 반추의 중요성 때문이다.

올림픽 광고를 만들었거나 광고를 보았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프랑스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나서, 차별화된 메시지만이 기억 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시작하기 전에 준비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건질 게 많다. 뭘 잘했고, 뭘 잘못했는지, 뭐가 옳고 뭐가 틀렸는지, 선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나 염소에 반추위(反芻胃)가 있는 것은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내 되새김질해서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반추하는 습관을 쌓다 보면 인생의 지혜도 그만큼 쌓일 것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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