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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천 명' 관우의 언월도, 길지만 빠르고 무겁지만 예리

입력 2021. 06. 24   15:43
업데이트 2021. 06. 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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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폴암


긴 장대 끝 다양한 날붙이 장착 무기류
집단 운용 제식병기 분야서 많은 발전
밀집 진형서 창보다 효과 떨어져 쇠퇴


‘울티마’ 최상위 근접무기 핼버드 등장
‘진삼국무쌍’ 시리즈 언월도 폭풍 위력
‘포 아너’ 일본 무기 나기나타 활용 액션


자고로 무기의 사정거리는 길수록 최고였다. 길면 길수록 나는 안전하면서 상대를 손쉽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화약 무기의 출현은 그 파괴력도 파괴력이었지만, 긴 사정거리라는 우위를 바탕으로 아군을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적에게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컸다.

고전 시대에도 활과 투석기 같은 장거리 무기들이 존재했지만, 결국은 보병끼리 부딪치는 접전의 순간을 막을 만한 저지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많은 무기가 창처럼 좀 더 긴 형태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형태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른바 장대 무기, 폴암(polearm)의 출현이다.

긴 장대 끝에 여러 종류의 날붙이를 이어붙인 폴암은 하나의 무기를 가리키기보다는 긴 무기류 전반을 통칭하는 용어다. 일전에 소개한 창도 폴암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다. 밀집하여 진형을 이루고 싸웠던 고대 전투의 양상에서 자루가 긴 무기들은 적보다 먼저, 내가 안전한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날릴 수 있는 무기였기에 개인 병기보다는 집단으로 운용되는 제식병기에서 더 다양한 발전을 보였다.

워낙 다양한 폴암류의 모든 가짓수를 다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린, 혹은 여러 게임에서 익숙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폴암류들을 살펴보고 그 운용을 엿보고자 한다.

창과 도끼 사이의 어딘가, ‘극’과 핼버드
‘삼국지연의’로 유명한 중국 삼국시대의 주력 제식병기는 무엇이었을까? 대략 춘추전국시대 이래 삼국시대까지 보병의 주무기로 많이 활용된 무기는 ‘극’이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여포의 주무기 방천화극의 ‘극’도 이 계통이다.

극은 우리가 잘 아는 창과 창 이전에 쓰였던 ‘모’라는 무기를 합쳐놓은 폴암이다. 찌르기에 유용하도록 뾰족한 날이 전방을 향하는 창과 달리, 모는 자루를 휘두를 때 날이 적에게 들어가도록 휘둘러지는 방향으로 날을 향하는 무기로, 창과 모를 합친 범용성에 중점을 둔 무기다.

극을 활용하는 보병 밀집전투는 창에 비해 하나의 공격 루트를 더 가질 수 있었다. 창이 전방을 향해 찌르는 동안, 후열의 아군이 극을 높이 들어 적의 머리 위에서 아래로 찍어내리는 공격이 가능해서다.

비슷한 형태와 운용을 보이는 서양의 무기는 핼버드(halberd), 우리말로는 미늘창 또는 도끼창으로 번역되는 무기다. 마찬가지로 긴 자루 끝에 날이 달려 있는데, 찌르기용 날과 내리찍기용 날이 함께 붙어 있는 형태다. 극과 다른 점이라면 핼버드의 내리찍는 부분은 도끼처럼 되어 있어 도끼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는 두 무기 모두 평면에서의 공격 루트 외에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루트 하나를 더 만들 수 있어 각광 받을 것 같았지만, 실전에서 극과 핼버드는 모두 시대가 지나면서 고전적인 창에 밀려 사라지는 결과를 맞았다. 이는 두 가지 요인으로부터인데, 첫째는 보병 전투에서 병력의 밀집이 더욱 효율이 좋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병력이 점점 더 촘촘하게 밀집하는 형태가 보편화되었고, 비좁은 공간만을 갖게 된 밀집 방진에서는 창처럼 찌르는 공격 외의 휘두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그런 상황에서 찌르기에 특화되기 위해 창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며 장창에 이르고, 그 정도의 길이는 위로 드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밀집-찌르기라는 효율적 방식에 걸맞은 창만이 살아남으며 두 무기는 의장용, 제식용으로만 남게 된다.

동양권에서 극의 활용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세부적으로는 아니지만 드러나는 편이다. ‘삼국지 11’에는 검병, 창병, 극병, 기병, 노병의 다섯 가지 병과가 등장하는데, 이때 극병은 창병에 상성상 우위를 드러내며 지형을 크게 타지 않는 범용 보병으로 등장한다. 검병이 사실상 무의미한 게임 안에서 창병은 대기병에 특화된 병과로, 극병은 일반적인 보병의 역할로 나타나며 창과 극의 차이를 보여준다.

고전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울티마’에는 핼버드가 게임 속 근접 무기 중 항상 최상위권의 무기로 등장한다. 마법 도끼 같은 유물류를 제외하면 최강급의 근접무기라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리즈마다 플레이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무기이기도 하다.

‘진삼국무쌍 8’의 관우. 사실상 언월도의 상징인 인물답게 청룡언월도를 들고 나온다.  필자 제공
‘진삼국무쌍 8’의 관우. 사실상 언월도의 상징인 인물답게 청룡언월도를 들고 나온다. 필자 제공
칼자루가 길어지면 어디까지 가는가? 언월도, 글레이브, 나기나타
폴암류는 창이나 도끼뿐 아니라 칼과 같은 베는 무기로도 발전한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도검계열 폴암으로는 언월도가 있을 것이다. ‘삼국지’ 관우의 주무장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삼국시대에는 언월도가 없었기에 소설적 창작으로 봐야 하는 이 무기는 초승달처럼 생긴 큰 칼날의 무게를 긴 자루에 실어 베는 무기로, 무게와 크기 때문에 주로 기병의 휘둘러베기 용도로 사용됐다.

자루 달린 큰 칼의 개념은 서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거의 같은 모양의 칼이 서양에서는 글레이브라는 이름으로 운용되었다. 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찌르기 용도보다는 베는 용도로 활용되었으며, 유럽에서 점차 판금 갑옷이 발달함에 따라 베는 무기의 효용이 떨어지며 결국 밀려나게 되었다.

‘포 아너’에 등장하는 노부시는 나기나타라는 무기 활용 방법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필자 제공
‘포 아너’에 등장하는 노부시는 나기나타라는 무기 활용 방법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필자 제공
일본에서는 나기나타라는 이름의 조금 독특한 대도 형식이 나타나는데, 언월도나 글레이브처럼 칼날이 크고 무겁기보다는 마치 일본도에 자루를 단 것처럼 길쭉하게 뻗은 형태였다. 언월도와 글레이브가 중량을 실어 내리치는 도끼에 가까운 도검이었던 것과 달리, 나기나타는 조금 더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형태였다. 일본에서는 대규모 백병전에 매우 널리 활용된 무기였는데, 훈련된 무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투에서는 집단운용에서 빛을 발하는 창보다 나은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속의 언월도라면 당연히도 관우의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드라마틱하게 관운장의 손에 들린 언월도를 보여주는 게임은 ‘진삼국무쌍’ 시리즈다. 혼자서 천 명을 베어 넘기는 다소간의 과장은 있고, 액션이 반드시 언월도 특유의 움직임에 연동되는 것도 아니지만 자루 달린 도검의 휘두르기에 대한 극한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액션은 상당한 시원함을 만들어내며 많은 게이머에게 언월도의 대표 장면으로 이 게임을 꼽게 만든 바 있었다.

나기나타의 움직임을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한 게임으로는 동서고금의 냉병기를 모두 모아 벌이는 액션게임 ‘포 아너’가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무사 캐릭터인 ‘노부시’의 주무장이 나기나타로, 특유의 긴 리치를 활용하면서도 다른 폴암류에 비해 속도가 그리 느리지 않고, 다양한 심리전으로 활용 가능한 패턴들을 통해 긴 무기이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나기나타 특유의 활용 양상을 보여준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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