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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죽은 자의 편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입력 2021. 06. 23   15:55
업데이트 2021. 06. 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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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버지의 깃발’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두 편의 영화
일본군·미군 관점 ‘같은 전투 다른 질문’
죽어간 젊은 병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승리는 왜 연출되고 영웅은 왜 조작됐나
전쟁 옹호·반대도 않지만 묵직한 메시지

이오지마 수리바치산에 성조기를 꽂는 미군 병사들. ‘아버지의 깃발’의 소재가 되었다.  필자 제공
이오지마 수리바치산에 성조기를 꽂는 미군 병사들. ‘아버지의 깃발’의 소재가 되었다. 필자 제공
1944년 여름,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를 장악한 미군은 일본 본토까지 장거리 폭격에 나섰다. 그러나 마리아나 제도와 본토 중간지점의 이오지마에 주둔한 일본군의 요격으로 미군은 많은 폭격기를 잃었다. 결국 미군 사령부는 1945년 2월, 이오지마 침공을 결정했다. 이오지마를 점령하면 폭격기 손실을 줄이고, 비행장을 증설하여 연일 대규모 폭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일본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군은 이오지마를 수비하는 병력을 2만1000여 명으로 증원하고, 섬 남동쪽 수리바치산을 중심으로 섬 전체를 요새로 만들었다. 미군은 해병1사단을 필두로 대규모 병력과 함정을 동원했다.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 26일까지 한 달이 넘도록 이오지마는 혈투의 무대가 되었다.

쿠리바야시 중장이 쓴 41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이오지마 전투를 기록한 책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케하시 쿠미코 지음, 신은혜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  필자 제공
쿠리바야시 중장이 쓴 41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이오지마 전투를 기록한 책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케하시 쿠미코 지음, 신은혜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7). 필자 제공
이오지마전투는 기존에 벌어졌던 전투와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 일본군은 해안 상륙 저지와 돌격 전술을 주로 구사했다. 그러나 이오지마의 일본군을 지휘하는 육군중장 구리바야시 다다미치(1891~1945)는 그런 무모한 전술을 구사하지 않고, 미군의 상륙을 방치했다. 그는 미군 병력을 내륙으로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 최대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자 했다. 미군을 이오지마에 되도록 오래 붙들어 훗날 본토에 침공할 미군이 상륙작전에 부담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구리바야시의 목적이었다. 구리바야시의 의도대로 무사히 상륙한 미군은 내륙으로 진입하면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특히 동굴 진지가 다수인 수리바치산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오지마의 토양은 화산재라서 참호를 파기 어려웠다. 엄폐할 곳이 거의 없는 미군 병사들은 일본군의 사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미군은 동굴과 토치카 진지마다 화염방사기 공격을 가하는 악전고투 끝에 수리바치산에 성조기를 꽂을 수 있었다. 전투가 종결되었을 때 소수의 포로를 제외한 일본군은 모두 전멸했다. 미군의 사상자는 2만6000명을 넘었다. 이오지마전투는 태평양 전쟁을 통틀어 미군의 사상자가 일본군 사상자보다 많은 유일한 전투였다. 미국 HBO 방송의 태평양전쟁 10부작 드라마 ‘퍼시픽’(2010)의 주인공인 실존 인물 존 바실론(1916~1945) 하사가 전사한 곳도 이오지마다.

‘아버지의 깃발’(왼쪽)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영화 포스터.  필자 제공
‘아버지의 깃발’(왼쪽)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영화 포스터. 필자 제공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전투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와 ‘아버지의 깃발’(2007)이다. 두 영화는 시선을 분할해 같은 장소(이오지마)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응시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의 관점에서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에는 구리바야시 중장을 중심으로 일본군 장교와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구리바야시는 패전이 확실한데도 죄 없는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상황에 모멸감을 느끼지만, 군인으로서 이오지마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그는 군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남편이었다. 아내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한 채 전장으로 왔지만, 생존의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화 전반에는 젊은 장교들과 앳된 나이의 일본군 병사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린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 부모와 아내, 아이를 보고 싶어 한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들의 편지에 담긴 사연을 읊으면서 광적인 일본 지휘관들을 대조시킨다. 하버드 유학파 출신인 구리바야시는 합리적인 군인이었으나 결국 그도 국가주의자에 불과했다. 영화는 ‘국가’가 그들에게 무엇을 강요했는가를 되묻는다.


‘아버지의 깃발’은 태평양 전쟁의 상징이 된 사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리바치산에 6명의 미 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꽂는 사진이다. 6명의 대원 중 3명의 병사가 살아서 귀환한다. 수리바치산 성조기 사진은 미국 전역을 도배하다시피 했고, 그들은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미국 정부는 전쟁 자금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었고 3명의 병사는 애국 공채 캠페인에 동원된다. 긴 전쟁에 염증을 느꼈던 시민들은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애국 공채 홍보 모델로 나서자 열광한다. 이오지마의 성조기는 애국과 승리를 상징하는 견고한 이미지가 돼 있었다. 그 사진은 여러 차례 찍으면서 연출된 것이었지만, 그런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부와 시민들은 오직 정의로운 승리의 이미지를 갈망할 뿐이다. 전투 요원이 아닌 전령이었던 병사 ‘레니’는 영웅 대우를 받는 현실을 즐기지만 직접 전투를 겪었던 나머지 두 병사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날마다 그들은 이오지마의 악몽에 시달린다. 시간이 흘러 사진이 연출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언론과 시민들은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명령에 따라 깃발을 꽂았을 뿐이라는 그들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사진을 홍보하고 판매한 사람들에게 쏠릴 비판이 모두 생존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그 과정에서 생존 병사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르렀다. 가짜를 연출하고 호강한다는 누명보다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전장에서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그린 죄 없는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가’란 무엇인가. 일본인들이 신처럼 떠받들었던 일왕은 종전 후 인간 선언을 했고, 일본인은 그토록 처절하게 맞섰던 미국에 쉽게 순응했다. 그들이 신봉했던 국가는 나약한 허상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깃발’에서 영웅을 ‘제조’하면서 공채를 파는 국가와 언론은 병사들의 상실감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소비할 이미지일 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두 편의 영화로 이오지마전투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두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영웅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전쟁을 옹호하거나 맹목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소중한 삶을 허망하게 잃은 자들이었다.
<이정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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