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방일보-ROTC중앙회 공동기획 ‘60년 전통 이어 미래로’

소대원 4명 구하고 산화…“41년 전 고귀한 헌신 귀감”

조아미

입력 2021. 06. 22   16:50
업데이트 2021. 06. 2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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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호국영웅 故 권영주 중위를 추모하며

학군17기…1979년 소위 임관
이듬해 전차 추락 사고로 순직
충남대 학군단, 매년 현충일 추모행사

30년 넘게 추모 이어온 학군 동기들
“권 중위, 살아 있다면 소주 한잔 하며
군대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어”

고(故) 권영주(학군17기) 중위의 학군 동기 장병모(오른쪽) 비엘엔에이치㈜부설연구소 수석연구원과 하영모 학군17기 총동기회장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권 중위의 묘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고(故) 권영주(학군17기) 중위의 학군 동기 장병모(오른쪽) 비엘엔에이치㈜부설연구소 수석연구원과 하영모 학군17기 총동기회장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권 중위의 묘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잊지 않는 것이 최고의 훈장입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한 번쯤 떠올리게 되는 문구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호국 영웅들 가운데 학생군사교육단(ROTC) 출신 중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가 있다.

고(故) 권영주(학군17기) 중위(추서계급)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명예로운 장교였고, 고인의 고귀한 살신성인은 후배 장병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권 중위와 육군3군단 전차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학군동기 장병모 비엘엔에이치㈜부설연구소 수석연구원과 하영모 학군17기 총동기회장이 최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나 그를 추모했다. 권 중위와 함께 충남대 학군단에서 후보생 생활을 한 김선봉 충남대 17기 동기회장은 서면 인터뷰로 진행했다.

전차 전복 후 화재…부하 구한 뒤 산화

권 중위는 1955년 10월 25일,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신곡리에서 6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9년 충남대학교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하면서 같은 해 2월, 소위로 임관해 육군3군단 2전차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임관 1년이 채 되지 않은 1980년 2월 9일 새벽, 권 중위는 야간 전차 기동훈련 중 조종수의 판단 실수로 M47 전차가 교량 난간을 들이받으면서 3.2m 아래로 추락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전차의 전원이 차단되고, 화재로 인한 유독 가스까지 전차 내부로 스며들어 숨 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기절한 포수와 탄약수 등 4명의 병사를 전차 해치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은 불붙은 전차와 함께 산화했다. 당시 장 연구원도 5소대장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불과 150m 사이를 두고 권 중위의 뒤를 따라 전차로 이동 중에 무전을 통해 권 중위가 탄 전차에서 사고가 난 것을 알게 됐다.

“‘차 떨어졌다!’ ‘불 났다’라는 무전을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너무나 안타까워서 4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합니다. 군의관과 둘이 시신을 닦았는데 눈물만 흐르더군요. 온몸이 전차 내부의 전선 줄로 감겨 있었고 불에 그을린 처참한 모습이었죠. 그날 훈련 출발 전 영하 25도의 혹한 속에서 함께 먹었던 누룽지 한 그릇이 마지막 식사였어요. 부대에 복귀하면 목욕하고 나서 인제 읍내에 나가 곱창전골을 먹자고 했었는데….”

다른 부대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김 회장은 당시 전우신문에서 산화 소식을 접했다.

“후보생 시절 함께했던 친구였기에 그 소식이 너무 생경하게 다가왔어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자문자답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고귀한 순직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당시 신문을 스크랩해뒀고 현재는 학군단 내 명예의 전당에 있는 ‘권영주 추모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현충원에 있는 권 중위의 묘비.
현충원에 있는 권 중위의 묘비.

부모에게 효도하며 동료들의 신망 두터워

장 연구원과 김 회장은 권 중위를 마음 따뜻한 친구로 기억했다.

“대학 시절 다섯 살 아래였던 둘째 동생과 대전에서 자취하는 동안, 학업과 ROTC 훈련을 병행하면서도 밥해 먹으며 동생 뒷바라지를 했어요. 부드럽고 친화력 있는 성격으로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솔선해 주위 친구들에게 호감을 주는 친구였고요. 운동을 즐겨 했고, 합기도 유단자였으며 학과 축구 대표 선수로도 활동했어요.” (김 회장)

“소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책임감이 투철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부하들에게 인정을 많이 베풀었어요. 초급 장교 월급으로 매달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보낼 정도로 근검절약한 친구였습니다.” (장 연구원)

아울러 장 연구원은 권 중위와 함께 여가 시간을 활용해 부사관 자녀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며 간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회상했다.

육군3군단 2전차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재직할 당시 고 권영주 중위의 모습들(위 사진 가운데, 아래 사진 왼쪽). 사진 제공=장병모 연구원
육군3군단 2전차대대 1중대 3소대장으로 재직할 당시 고 권영주 중위의 모습들(위 사진 가운데, 아래 사진 왼쪽). 사진 제공=장병모 연구원

후세 귀감 되도록 추모사업 더욱 확대할 터

해마다 현충일이면 충남대 학군단은 권영주 동상 앞에서 추모행사를 한다. 추모 행사는 1990년 2월 충남대 학군단에서 ‘추모 동상’ 제막식을 가진 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7기 총동기회는 임관 3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권영주 동기 추모’ 사업을 선정했다. 많은 동기들의 호응으로 기금을 마련해 2008년 6월 26일 동상을 개·보수하고 주변 정화사업 준공식을 한 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또한 2011년 11월 1일에는 육군학생군사학교에도 동기생 388명과 14개 단체가 약 1억 원의 기금을 모아 권 중위 동상을 세운 뒤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거룩한 부하 사랑을 기리고 있다. 동상 밑에는 타임캡슐을 설치해 17기의 임관 50주년인 2029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하 회장은 “17기 총동기회에서는 매년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서울국립현충원과 대전국립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12명의 자랑스러운 동기생들을 찾아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나누고 유가족들을 위로해오고 있다”면서 “특히 권영주 동기 추모식은 2000년부터 충남대학교 교정에서 총장 주관으로 개최하는데 총동기회 집행부와 대전·세종·충남지구 동기회에서 많은 동기가 참석해 고인의 얼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중위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기리고 그 뜻을 계승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권영주 중위 헌신 상(賞)’도 충남대 ROTC총동문회와 ROTC 17기 총동기회가 제정, 지난 4일 진행된 41기 추모제 행사에서 후배 후보생들에게 수여했다.

하 회장은 “육군사관학교에 ‘강재구 소령’이 있다면 ROTC에는 ‘권영주 중위’가 있다”면서 “자랑스러운 권영주 동기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부하 사랑은 우리가 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다운 귀감인 만큼 상의 수여 주체가 충남대 총장, ROTC중앙회 차원으로 격상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 이미 보국훈장 삼일장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이 권 중위를 ROTC 최초로 2007년 5월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했듯이 후세의 귀감이 되도록 추모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정부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도 “권 중위는 대한민국 군의 표상이 되는 인물로서 군대의 각종 교육이나 훈련과정에 소개하고 나아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그의 숭고한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이 계승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장 연구원은 후배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도 전했다.

“전우애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 정신이 근간입니다. 배려는 상대에 대한 존중심을 토대로 이뤄지며 그 존중심은 나 자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전우를 배려하는 마음이 나라를 지키고 겨레를 사랑하는 첫걸음이고, 여러분의 귀한 희생이 있어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합니다. 권 중위가 지금 살아 있다면 소주 한잔 기울이며 지나간 군대 이야기를 할 텐데 참 많이 그립네요.” 글=조아미/사진=한재호 기자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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