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성과 충격력으로 중세까지의 전장을 지배한 기병은 근대 초기에 등장한 새로운 무기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화약을 사용한 총기의 등장은 기병 전력의 핵심이었던 빠른 돌격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병의 무기가 닿지 않는 곳부터 시작되었기에 의미 있었던 기병 돌격은, 이제 오히려 기병의 무기가 닿기 전에 먼저 보병의 머스킷총이 쏟아내는 화망(火網) 앞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총기와 함께 발달한 화포의 사정거리 증대도 기병의 역할을 축소하는 요소였다. 초장거리까지 포탄을 날려 보낼 수 있게 되면서 기병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는 포병이 더 선호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기병의 장점인 전략적 기동성은 아직 따라올 자가 없었고, 근대에 이르러 기병은 새로운 변화를 통해 전장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총과 결합한 말, 총기병의 탄생과 운용
새롭게 등장한 총기를 직접 들고 사용하는 형태의 기병이 근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드라군(dragoon)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용기병은 머스킷총으로 무장했지만 말 위에서 달리며 총을 쏘는 방식이 아니라,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서 전략적 목표에 도착한 뒤 실제 전투는 말에서 내려 머스킷총 전열보병과 같은 대열을 구성한 뒤 화망을 만드는 사격을 펼치는 방식으로 전투에 임했다.
초기의 드라군은 그래서 사실상 보병 편제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차량화 보병과 같은 의미로 이동수단의 기동력만 살린 보병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들 용기병은 서서히 마상에서의 사격술을 개발하고 총기 또한 흔들리는 말 위에서 쏠 수 있을 만큼의 정확도가 보장되는 라이플 시대에 이르면서 마상 사격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총기병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모든 기병이 다 총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주력 병과였던 전열보병을 상대하는 데 있어 기병은 여전히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총 대신 창과 칼을 든 경기병들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적 보병의 화망 구석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대열을 붕괴시키는 돌격전술을 유용하게 써먹었고, 패주하는 적의 추격에서도 빛을 발하며 총과 칼, 대포와 말이 얽힌 고대와 현대 사이의 독특한 근대 전장에서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양하게 활용된 근대 기병의 모습들
병과들과 무기체계가 다양해진 근대 초기의 전장 중 가장 대표적인 시대가 나폴레옹 전쟁 시대다. 총과 대포, 기병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제병합동 전장의 모습은 고전 시뮬레이션게임 ‘랑펠로’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에겐 ‘삼국지’ 시리즈로 잘 알려진 코에이 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랑펠로’는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삼아 유럽 제패를 진행하는 게임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군대는 크게 보병과 기병, 포병 세 병과로 나뉘는데, 기병은 방어를 아직 굳히지 못한 적 보병에게 압도적인 속도로 달라붙어 돌격을 해내는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단, 양성비가 비싸고 의외로 적 포병의 사격에 걸리면 쉽게 궤멸하는 특성이 있어 함부로 굴릴 수 있는 병과는 아닌 것으로 연출된다.
‘랑펠로’가 군대의 규모를 그저 숫자로만 채워 현실적인 느낌이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아주 고전 게임인 ‘노스 앤 사우스’는 근대 초기의 주요 병과인 보병, 기병, 포병이 액션 게임의 형태로 간략화되면서도 각 병과의 장단점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미국 남북전쟁을 담은 액션과 시뮬레이션의 혼합 게임인 ‘노스 앤 사우스’의 전투에는 키보드로 직접 조작하는 보병, 기병, 포병이 등장한다. 8명으로 구성된 전열보병은 머스킷 화망 사격으로 전방을 공격하지만 걸어 다니는 만큼 기동력이 약하고, 포병은 아예 최후방에서 좌우로만 움직이며 포 사격을 통해 적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는다.
3기로 구성된 기병이 이 게임에서 매우 특징적인데, 횡대와 종대로 대열을 변경할 수 있다. 적 보병의 화망 사격을 측면으로 피해 돌격에 성공할 경우, 순식간에 보병진을 전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보여준다. 적의 화력이 비는 공간 침투에 성공할 경우 치명적이었던 근대 기병의 역할이 아주 간단한 게임이지만 매우 잘 드러나는 경우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 상당한 시리즈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제3편은 주로 대항해시대 이후 신대륙으로 진출한 열강들과 현지 원주민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전쟁을 다룬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게임에 등장하는 유닛들도 정확히 대항해시대 이후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의 병과들이며, 그 속에서 머스킷총과 함께 근대 기병의 모습들 또한 게임이 추구하는 특유의 정확한 고증 속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의 기병은 같은 기병훈련소에서 양성되지만,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채로운 병과로 나뉜다. 창으로 무장한 중기병이 나와 측후방으로 돌격하기도 하고, 머스킷총을 든 용기병들이 적 기병을 향한 대기병 전술을 들고나오기도 한다. 가벼운 기병검을 들고 보병진의 측후방을 기습하는 것도 보기 쉽고, 아메리카 원주민 기병은 정통 유목민 궁기병과 같은 형태로의 운용이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적중률이 높아지는 라이플 시대의 기병은 정통 군사편제보다는 이른바 서부극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서부개척시대의 모습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 실제 체험해볼 수 있는 게임은 ‘레드 데드 리뎀션 2’다. 다양한 20세기 초반의 라이플들이 게임 내 실제 무기로 등장하고, 보병 사격을 기본으로 하지만 동시에 말을 타고 달리면서 기마 사격으로 뚫어야 하는 플레이 구간들이 존재해 다양한 라이플 기반의 20세기 기병 사격의 현장을 경험해볼 수 있다.
말은 사라졌지만 기병의 이름은 남았다
자동차의 발전과 보급이 정착하면서부터 기병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는 말의 의미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훨씬 더 강한 힘과 속도를 발휘하는 기계의 시대에 말 탄 기병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전략적 의미와 전장에서의 명예로움은 여러 이름과 개념으로 남아 이어진다. 실제로는 말을 타는 병과가 아님에도 기병사단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여러 기계화보병 부대와 헬리콥터 기동부대가 대표적이다. 기병이 위세를 떨쳤던 시기의 강렬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지만, 기병까지는 아니어도 말이 끌던 무기가 최신 1인칭 슈팅 게임(FPS)에 이름으로 남은 케이스도 흥미롭다. 인기 FPS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 등장하는 특수요원의 코드네임 ‘타찬카’는 러시아 적백내전기에 쓰였던 마차에 탑재한 기관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만 성능이 애매해서 타찬카는 실전에서 잘 쓰이기보다는 개그 밈(Meme)으로만 유행하는 느낌이어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퇴역한 말을 동원한 무기의 뒷그림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기동성과 충격력으로 중세까지의 전장을 지배한 기병은 근대 초기에 등장한 새로운 무기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화약을 사용한 총기의 등장은 기병 전력의 핵심이었던 빠른 돌격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병의 무기가 닿지 않는 곳부터 시작되었기에 의미 있었던 기병 돌격은, 이제 오히려 기병의 무기가 닿기 전에 먼저 보병의 머스킷총이 쏟아내는 화망(火網) 앞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총기와 함께 발달한 화포의 사정거리 증대도 기병의 역할을 축소하는 요소였다. 초장거리까지 포탄을 날려 보낼 수 있게 되면서 기병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는 포병이 더 선호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기병의 장점인 전략적 기동성은 아직 따라올 자가 없었고, 근대에 이르러 기병은 새로운 변화를 통해 전장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총과 결합한 말, 총기병의 탄생과 운용
새롭게 등장한 총기를 직접 들고 사용하는 형태의 기병이 근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드라군(dragoon)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용기병은 머스킷총으로 무장했지만 말 위에서 달리며 총을 쏘는 방식이 아니라,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서 전략적 목표에 도착한 뒤 실제 전투는 말에서 내려 머스킷총 전열보병과 같은 대열을 구성한 뒤 화망을 만드는 사격을 펼치는 방식으로 전투에 임했다.
초기의 드라군은 그래서 사실상 보병 편제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차량화 보병과 같은 의미로 이동수단의 기동력만 살린 보병의 형태였다. 그러나 이들 용기병은 서서히 마상에서의 사격술을 개발하고 총기 또한 흔들리는 말 위에서 쏠 수 있을 만큼의 정확도가 보장되는 라이플 시대에 이르면서 마상 사격을 기반으로 한 본격적인 총기병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모든 기병이 다 총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주력 병과였던 전열보병을 상대하는 데 있어 기병은 여전히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총 대신 창과 칼을 든 경기병들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적 보병의 화망 구석을 파고들어 순식간에 대열을 붕괴시키는 돌격전술을 유용하게 써먹었고, 패주하는 적의 추격에서도 빛을 발하며 총과 칼, 대포와 말이 얽힌 고대와 현대 사이의 독특한 근대 전장에서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양하게 활용된 근대 기병의 모습들
병과들과 무기체계가 다양해진 근대 초기의 전장 중 가장 대표적인 시대가 나폴레옹 전쟁 시대다. 총과 대포, 기병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제병합동 전장의 모습은 고전 시뮬레이션게임 ‘랑펠로’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에겐 ‘삼국지’ 시리즈로 잘 알려진 코에이 사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랑펠로’는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삼아 유럽 제패를 진행하는 게임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군대는 크게 보병과 기병, 포병 세 병과로 나뉘는데, 기병은 방어를 아직 굳히지 못한 적 보병에게 압도적인 속도로 달라붙어 돌격을 해내는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단, 양성비가 비싸고 의외로 적 포병의 사격에 걸리면 쉽게 궤멸하는 특성이 있어 함부로 굴릴 수 있는 병과는 아닌 것으로 연출된다.
‘랑펠로’가 군대의 규모를 그저 숫자로만 채워 현실적인 느낌이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아주 고전 게임인 ‘노스 앤 사우스’는 근대 초기의 주요 병과인 보병, 기병, 포병이 액션 게임의 형태로 간략화되면서도 각 병과의 장단점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미국 남북전쟁을 담은 액션과 시뮬레이션의 혼합 게임인 ‘노스 앤 사우스’의 전투에는 키보드로 직접 조작하는 보병, 기병, 포병이 등장한다. 8명으로 구성된 전열보병은 머스킷 화망 사격으로 전방을 공격하지만 걸어 다니는 만큼 기동력이 약하고, 포병은 아예 최후방에서 좌우로만 움직이며 포 사격을 통해 적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는다.
3기로 구성된 기병이 이 게임에서 매우 특징적인데, 횡대와 종대로 대열을 변경할 수 있다. 적 보병의 화망 사격을 측면으로 피해 돌격에 성공할 경우, 순식간에 보병진을 전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보여준다. 적의 화력이 비는 공간 침투에 성공할 경우 치명적이었던 근대 기병의 역할이 아주 간단한 게임이지만 매우 잘 드러나는 경우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중에서 상당한 시리즈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제3편은 주로 대항해시대 이후 신대륙으로 진출한 열강들과 현지 원주민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전쟁을 다룬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게임에 등장하는 유닛들도 정확히 대항해시대 이후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의 병과들이며, 그 속에서 머스킷총과 함께 근대 기병의 모습들 또한 게임이 추구하는 특유의 정확한 고증 속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의 기병은 같은 기병훈련소에서 양성되지만,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채로운 병과로 나뉜다. 창으로 무장한 중기병이 나와 측후방으로 돌격하기도 하고, 머스킷총을 든 용기병들이 적 기병을 향한 대기병 전술을 들고나오기도 한다. 가벼운 기병검을 들고 보병진의 측후방을 기습하는 것도 보기 쉽고, 아메리카 원주민 기병은 정통 유목민 궁기병과 같은 형태로의 운용이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적중률이 높아지는 라이플 시대의 기병은 정통 군사편제보다는 이른바 서부극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서부개척시대의 모습들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 실제 체험해볼 수 있는 게임은 ‘레드 데드 리뎀션 2’다. 다양한 20세기 초반의 라이플들이 게임 내 실제 무기로 등장하고, 보병 사격을 기본으로 하지만 동시에 말을 타고 달리면서 기마 사격으로 뚫어야 하는 플레이 구간들이 존재해 다양한 라이플 기반의 20세기 기병 사격의 현장을 경험해볼 수 있다.
말은 사라졌지만 기병의 이름은 남았다
자동차의 발전과 보급이 정착하면서부터 기병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는 말의 의미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훨씬 더 강한 힘과 속도를 발휘하는 기계의 시대에 말 탄 기병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전략적 의미와 전장에서의 명예로움은 여러 이름과 개념으로 남아 이어진다. 실제로는 말을 타는 병과가 아님에도 기병사단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여러 기계화보병 부대와 헬리콥터 기동부대가 대표적이다. 기병이 위세를 떨쳤던 시기의 강렬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지만, 기병까지는 아니어도 말이 끌던 무기가 최신 1인칭 슈팅 게임(FPS)에 이름으로 남은 케이스도 흥미롭다. 인기 FPS 게임인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 등장하는 특수요원의 코드네임 ‘타찬카’는 러시아 적백내전기에 쓰였던 마차에 탑재한 기관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만 성능이 애매해서 타찬카는 실전에서 잘 쓰이기보다는 개그 밈(Meme)으로만 유행하는 느낌이어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퇴역한 말을 동원한 무기의 뒷그림자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