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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축 울리는 말발굽, 바람을 가르는 갈기… 보병은 혼비백산

입력 2021. 06. 10   15:43
업데이트 2021. 06. 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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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병
 
투자 비용 크지만 효과 만점…중세 전장 휩쓸어
보병 진영 자유자재 누비며 마상 활쏘기 공격도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실전 같은 돌격·후퇴 전술
고증 충실 중기·궁기병 등장…운용의 묘 중요

 
말의 빠른 발을 빌려 속도전의 전장을 만들어낸 고대 전차는 특유의 단점들 때문에 결국 밀려났다. 교배를 통해 더욱 크고 힘이 세진 말은 대략 4세기 근방에 이르러 사람과 무장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물로 거듭났다. 더는 무겁고 불편한 수레를 끌 필요 없이 병사와 무기만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전장의 새로운 속도, 기병의 탄생이 그로부터 비롯됐다.


비싼 만큼 제값 하는 중세 전장의 핵심 전력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방향 전환과 지형을 덜 타는 기동력이 덧붙은 기병은 보병보다 고급 병종이었다. 개인이 자기 무장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던 고대 시대의 무장에 말이 덧붙는 것은 굉장히 비싼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기병은 말 한 마리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명의 기수에는 기본 전투마 외에도 갈아탈 말, 짐을 싣고 함께 이동하는 말 등 여러 마리가 따라붙어야 제 성능을 발휘하는 기병이 될 수 있었다. 말에 따라붙는 말먹이의 값과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비싼 값을 충분히 해내는 기병의 효과는 비싸다고 고개 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기병하면 떠오르는, 그저 말 타고 걷기만 해도 독보적으로 앞서는 전략적 기동력은 보병 중심의 편제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요새를 쌓아 철통같이 방어한다고 해도, 기병대는 그저 보병 요새를 우회해 다른 전략적 거점을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언제 싸울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전략적 기동력은 기병의 우위 중 가장 큰 부분이었다.

전장 현장에서는 충격과 공포라고 부르는 중기병의 돌격력이 빛을 발했다.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말과 기수의 무게가 고속으로 보병 대열을 향해 달려올 때 발생하는 흙먼지와 땅을 울리는 진동은 훈련되지 않은 징집병 대열을 창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패주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설령 정예병들이 버텨낸다 해도 어지간한 경차 수준의 무게가 실린 돌격이 지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을 버티기는 힘들었기에 기병의 압도적 우위는 강이나 성벽 같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지형이 아니라면 언제나 보병대를 능가했다.

충격력을 활용하는 중기병의 돌격 대신 말의 속도에 활을 얹은 전술도 존재했다. 유목민족들이 주로 활용하며 널리 알려진 궁기병은 가벼운 무장으로 만든 더 빠른 기동력으로 빠르게 접근, 활을 쏘고 다시 후퇴하는 이른바 ‘스웜 전술(Swarm Tactics)’로 유라시아 전역을 제패했다. 보병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는 마상 사격 기반의 이 전술은 보병대로서는 그저 서 있는 상태로 손실만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지속적인 소모를 강요하는 방식이었고, 동유럽의 많은 국가가 몽골 제국의 확장기에 스웜 전술에 휩쓸려 속절없이 무너졌다.

고대부터 출현해 전장을 휩쓴 기병의 위세에 동서 모든 국가가 비싼 유지비에도 불구하고 정예 기병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양성을 시작해, 중세 말엽에 이르면 거의 모든 국가가 정예 기병대를 보유하는 형태에 이른다. 이 시기에 이르면 중기병들은 발달한 금속기술을 토대로 만든 두꺼운 갑주로 보호받으며 어지간한 화살은 상처 하나 못 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또 갑주의 무게까지 더한 거의 1톤에 가까운 중량은 말의 속도에 실려 가공할 충격력을 발휘하며 보병진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화약 병기의 집단 활용을 통해 기병의 돌격이 쉽게 저지되기 시작한 근세 초기까지 기병은 언제나 전장의 중심에서 내가 원하는 전장을 직접 선택하는 최정예 병과로 이름을 떨쳤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의 궁기병들은 정확히 유목민 기병의 스웜 전술을 그대로 구사한다. 보병진은 속도에 밀려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쓰러져 간다.  필자 제공
‘마운트 앤 블레이드’의 궁기병들은 정확히 유목민 기병의 스웜 전술을 그대로 구사한다. 보병진은 속도에 밀려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쓰러져 간다. 필자 제공

중갑기병들의 보병진 정면 돌파 장면. 보병진의 대열이 두껍지 않아 쉽게 돌파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열이 무너지고 기병이 뚫고 지나가면 그대로 전열이 붕괴되며 패닉에 이른다.   필자 제공
중갑기병들의 보병진 정면 돌파 장면. 보병진의 대열이 두껍지 않아 쉽게 돌파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대열이 무너지고 기병이 뚫고 지나가면 그대로 전열이 붕괴되며 패닉에 이른다. 필자 제공


‘마운트 앤 블레이드’, 기병전술 눈앞서 경험

이런 기병의 활약을 눈앞에서 보거나 혹은 직접 창을 잡고 기병 돌격을 뛰어볼 수 있는 게임은 훌륭한 고대 전장 고증으로 이 코너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게임,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다. 아예 게임 제목이 말을 탄다는 ‘마운트’로 이루어질 정도로 이 게임은 기병의 돌격과 후퇴라는 운용법이 전투의 중심에 들어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기병 돌격은 실제 기병의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따른다. 말의 속도를 전속력으로 올려 적진을 향해 달리다가 기병창을 정확하게 내지르면, 적에게 부딪히는 순간의 속도와 말의 무게를 계산해 나온 충격력으로 최종 피해량이 결정되는 식이다. 이런 기병 돌격을 플레이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뛰는 아군 기병대가 대량으로 들이받으면, 적 보병대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반대로 플레이어가 보병일 때는 기병의 그 돌격력을 더욱 절절하게 체감해볼 수 있다. 아군 보병대를 목표로 포착한 적 기병이 돌격해 오는 장면의 아찔함은 그 공격을 알면서도 도저히 기병의 속도를 피해 도망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타난다. 뒤에서 달려오는 기병을 눈으로 보면서 돌격을 맞는 일은 꽤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는 그러나 기병이 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병 운용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인, 돌격이 보병대와 얽히면서 기동력이 멈춘 그 순간을 게임은 매우 정확하게 포착해 그려낸다. 돌격 후 빠져나오지 못해 얽힌 기병을 향해 보병들의 창칼이 쏟아지고, 기병들은 순식간에 낙마한다. 그래서 기병들은 항상 들이받는 순간에도 말이 빠져나올 수 있는 경로를 점검하며 신중하고 날렵한 돌격로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 또한 실전의 기병 운용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중기병의 돌격뿐 아니라 ‘마운트 앤 블레이드’에서는 앞서 소개한 궁기병의 스웜 전술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여러 세력은 실존했던 고전 시대의 여러 병과로부터 모델을 가져왔는데, 그중 유목민족의 스타일로 궁기병 중심의 병과 체계를 가진 쿠자이트의 기병이 대표적이다.

쿠자이트의 군대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애초에 기병 위주의 편제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계 징집병을 레벨업하면 바로 궁기병이 출현하는데, 이들은 기본 무장으로 활을 들고 있어 마상 사격을 가장 기초적인 전술로 운용한다.

적으로 만나면 인공지능은 정확히 전통적인 궁기병의 그 스웜 전술을 구사한다. 궁기병이 떼로 몰려오더니 화살을 한 발씩 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리는 방식이다. 특히 아군 궁병대가 지키는 범위에서는 어물쩍거리다가 궁병과 보병의 거리가 벌어지면 바로 달려 나와 쏘고 빠지는 전술은 처음 이 게임을 잡아보는 사람들에겐 식겁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니 베테랑이라고 해도 자신의 부대가 보병 중심으로 편제된 상황인데 쿠자이트 궁기병대를 만나 싸우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줄줄이 쓰러지게 된다. 심지어 퇴각도 기병보다 느려서 못 하는 전멸의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중세 시대까지를 이렇게 주름잡던 기병도 그러나 화약의 시대에 이르면 서서히 그 전성기를 놓게 된다. 하지만 무기로서의 말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편에서는 화약 시대에 활약한 기병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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