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빠른 발을 빌려 속도전의 전장을 만들어낸 고대 전차는 특유의 단점들 때문에 결국 밀려났다. 교배를 통해 더욱 크고 힘이 세진 말은 대략 4세기 근방에 이르러 사람과 무장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물로 거듭났다. 더는 무겁고 불편한 수레를 끌 필요 없이 병사와 무기만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전장의 새로운 속도, 기병의 탄생이 그로부터 비롯됐다.
비싼 만큼 제값 하는 중세 전장의 핵심 전력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방향 전환과 지형을 덜 타는 기동력이 덧붙은 기병은 보병보다 고급 병종이었다. 개인이 자기 무장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던 고대 시대의 무장에 말이 덧붙는 것은 굉장히 비싼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기병은 말 한 마리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명의 기수에는 기본 전투마 외에도 갈아탈 말, 짐을 싣고 함께 이동하는 말 등 여러 마리가 따라붙어야 제 성능을 발휘하는 기병이 될 수 있었다. 말에 따라붙는 말먹이의 값과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비싼 값을 충분히 해내는 기병의 효과는 비싸다고 고개 돌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기병하면 떠오르는, 그저 말 타고 걷기만 해도 독보적으로 앞서는 전략적 기동력은 보병 중심의 편제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요새를 쌓아 철통같이 방어한다고 해도, 기병대는 그저 보병 요새를 우회해 다른 전략적 거점을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언제 싸울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전략적 기동력은 기병의 우위 중 가장 큰 부분이었다.
전장 현장에서는 충격과 공포라고 부르는 중기병의 돌격력이 빛을 발했다.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말과 기수의 무게가 고속으로 보병 대열을 향해 달려올 때 발생하는 흙먼지와 땅을 울리는 진동은 훈련되지 않은 징집병 대열을 창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패주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설령 정예병들이 버텨낸다 해도 어지간한 경차 수준의 무게가 실린 돌격이 지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을 버티기는 힘들었기에 기병의 압도적 우위는 강이나 성벽 같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지형이 아니라면 언제나 보병대를 능가했다.
충격력을 활용하는 중기병의 돌격 대신 말의 속도에 활을 얹은 전술도 존재했다. 유목민족들이 주로 활용하며 널리 알려진 궁기병은 가벼운 무장으로 만든 더 빠른 기동력으로 빠르게 접근, 활을 쏘고 다시 후퇴하는 이른바 ‘스웜 전술(Swarm Tactics)’로 유라시아 전역을 제패했다. 보병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는 마상 사격 기반의 이 전술은 보병대로서는 그저 서 있는 상태로 손실만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지속적인 소모를 강요하는 방식이었고, 동유럽의 많은 국가가 몽골 제국의 확장기에 스웜 전술에 휩쓸려 속절없이 무너졌다.
고대부터 출현해 전장을 휩쓴 기병의 위세에 동서 모든 국가가 비싼 유지비에도 불구하고 정예 기병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양성을 시작해, 중세 말엽에 이르면 거의 모든 국가가 정예 기병대를 보유하는 형태에 이른다. 이 시기에 이르면 중기병들은 발달한 금속기술을 토대로 만든 두꺼운 갑주로 보호받으며 어지간한 화살은 상처 하나 못 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또 갑주의 무게까지 더한 거의 1톤에 가까운 중량은 말의 속도에 실려 가공할 충격력을 발휘하며 보병진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화약 병기의 집단 활용을 통해 기병의 돌격이 쉽게 저지되기 시작한 근세 초기까지 기병은 언제나 전장의 중심에서 내가 원하는 전장을 직접 선택하는 최정예 병과로 이름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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