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게임과 무기

적함을 향해 전속력 돌진, 옆구리 겨냥 그대로 충돌

입력 2021. 05. 20   16:04
업데이트 2021. 05. 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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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갤리선과 충각
 
대포 발명 이전 가장 강력한 해전 전술
뱃머리 거대한 금속 무장 후 들이받기
목함 부딪치면 두 동강 날 정도 큰 위력
 
펠로폰네소스 전쟁 배경 ‘어쌔신 크리드’
충각 장착 3단 갤리선 호쾌한 액션 연출
‘토탈워’ 로마시대 함대 단위 운용 묘미

 
현대 해군의 교전 거리는 함포와 미사일, 어뢰와 함재기를 통해 킬로미터 단위로 길어졌지만, 바다에서의 전투도 초창기에는 지상전과 마찬가지로 근접 전투에 가까웠다. 원거리 무기라야 활 정도의 수준이었고, 나무로 배를 만들던 시대의 특성상 날씨가 따라주면 서로 간에 불화살을 날리는 정도의 화력이었다.

함선 자체의 화력이 대단치 않다 보니 대부분의 고대 해전은 배와 배를 맞대고 병력이 건너가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선박 기술의 발전이 일어나면서 고대 해전에는 새로운 배의 개념이 도입됐고, 이후 근현대 함선의 등장 이전까지 이 함선은 군함의 중심을 오랫동안 잡고 놓지 않게 된다. 바로 ‘갤리선(galley)’이다.


돛과 노의 조합으로 만든 충각의 강력한 한 방

한두 명이 타는 작은 배가 아니라 많은 물자를 싣는 커다란 배는 물에 뜨는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의 문제가 중요했다. 많은 민간 함선이 돛을 이용해 바람의 힘으로 나아가는 기술적 진보에 도달했지만, 군함의 경우에는 바람만으로 필요한 기동력을 다 확보할 수 없었다.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적의 약한 측면을 노리는 기동이 결국 해전의 승리를 부르기 때문이었다.

갤리선은 ‘돛’과 ‘노’라는 두 종류의 기동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전선(戰船)이다. 순풍이 불 때나 장거리의 전략적 이동에는 돛을 썼지만, 전장에서 급속한 방향 전환을 수행하거나 역풍 상황에서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갤리선은 노꾼들의 노 젓기에 큰 비중을 두어 운용했다.

사람의 손으로 젓는 노였기 때문에 노를 이용한 가속은 순간적으로는 급가속할 수 있었더라도 지속력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거센 물살을 팔심으로만 갈라야 하는 노젓기는 사람의 근력을 쉽게 지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꾼의 숫자를 늘리는 3단노선, 5단노선 등의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그만큼 비전투원인 노꾼의 무게가 배에 실린다는 문제 또한 극복이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돛과 노의 결합을 통한 순간 가속력을 갖게 된 갤리선은 기존처럼 함선과 함선을 맞대고 벌이는 백병전을 넘어선 새로운 전술을 가능케 했는데, 바로 충각(衝角) 전술이었다. 뱃머리 흘수선(배에 수면이 닿는 경계선)에 툭 튀어나오게 만들어 둔 충각은 빠른 속도로 적 함선의 측면을 향해 부딪치면 목제 함선 한 척을 그대로 두 동강을 낼 수 있는 위력을 발휘했다.

노꾼들의 순간 가속력을 집중적으로 발휘해 적 함선의 측면을 노려 백병전 없이 한 방에 배를 날려버릴 수 있는 충각 전술은 고대 해전의 바다에서 매우 강력한 전술로 떠올랐다. 충각에 금속을 덧입히며 충격력을 보완하고, 충격력을 키우기 위해 함선의 크기를 더욱 키우기도 하는 등의 발전이 점차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고대 해전의 중심이었던 충각 전술은 화포의 발전과 함께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충각을 치기 위해 빠르게 다가오는 적 함선을 요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대포가 등장한 뒤, 갤리선의 충각은 오히려 자살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충각을 활용해 적함을 박살 내는 방식만 사라졌다뿐이지 현대에도 함급 차가 큰 경우, 화력 사용이 자제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배와 배의 충돌을 활용하는 전술이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함선들이 더욱 무겁고 튼튼해진 만큼 충돌의 피해량도 어마어마해졌기 때문이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주인공 기함 아드레스티아 호. 3단 갤리선 전면부 흘수선에 위엄 있게 튀어나와 있는 충각이 돋보인다. 색상이나 광택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음을 짐작케 하며, 게임 내내 강력한 한 방의 위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기로 자리매김한다.  필자 제공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주인공 기함 아드레스티아 호. 3단 갤리선 전면부 흘수선에 위엄 있게 튀어나와 있는 충각이 돋보인다. 색상이나 광택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음을 짐작케 하며, 게임 내내 강력한 한 방의 위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무기로 자리매김한다. 필자 제공


원샷 원킬의 충각전술, 대전략의 초석 되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주 무대로 삼는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서 해전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임 콘텐츠다. 플레이어의 주력 함선인 아드레스티아 호는 3단 갤리선으로, 그냥 봐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함선 앞부분에 튀어나온 거대한 충각일 정도로 이 갤리선을 활용한 해전에서 충각 전술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아드레스티아 호의 충각은 게임 속 해전에서 상당히 장대한 액션을 담당한다. 노를 활용한 빠른 선회력으로 전속력 항진해 적함의 옆구리를 들이받으면 다소 과장된, 적함이 두 동강이 나며 가라앉는 호쾌한 타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충각으로 적함을 일격에 날리면 추가적인 보너스 자원이 제공되는 등 게임은 갤리선의 충각 전술에 상당한 비중을 실어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 반목하고 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를 배경으로 삼기 때문에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해군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바다에서 갈등하고 있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때 인공지능(AI)이 관장하는 두 도시국가의 해전 또한 서로가 서로의 배 옆구리를 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플레이어도 적대하는 세력의 함선 여러 척과 교전하다 보면 아군 배의 측면을 향해 돌진해 오는 소형 함선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다행히 플레이어의 기함이 매우 빠른 선회력을 갖고 있어 어지간히 방심하지 않으면 충각으로 옆구리를 맞는 일은 드물다.



그리스 시대가 저문 뒤의 고대 세계에서도 여전히 해전에서의 충각 전술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임은 ‘토탈워: 로마 2’다. 로마 제국의 성장과 확장기를 다루는 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해전은 육전의 보조가 아닌, 전략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장으로 구성된다. 지중해를 낀 고대 유럽에서 육군에 비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상업과 유통이 원활한 항구지역을 점유할 수 있는 해군력은 값비싼 함선 비용에도 불구하고 제해권을 잡기 위해 반드시 투자해야 할 전략요소이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해전은 그리스 시대보다는 다양한 함선들로 구성되지만, 여전히 그 중심은 갤리선과 충각이다.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가 단 한 척의 갤리선으로 충각을 활용했던 반면 ‘토탈워: 로마 2’에서는 함대 단위의 갤리선 운용과 충각 활용을 체험해볼 수 있다. 아군 지휘관이 탑승한 기함을 중심에 두고, 후열에는 공성무기를 실은 거함들을 배치한다. 양 측면으로 불화살 공격이 가능한 함선들이 늘어선 가운데 좌우익의 가장 끝 열에 충각이 강화된 갤리선들이 배치되어 빠르게 항진하여 적의 측면을 노리는 것이 ‘토탈워: 로마 2’의 기본적인 해전 구도다.

지상군을 실어나르는 수송선은 별다른 충각 장치가 없어 그저 도선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정도로 참여하지만, 많은 노꾼을 동원해 전속력으로 들이받는 충각 갤리선들을 만나면 로마 군단의 정예병들도 한순간에 수장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바다를 통한 수송과 증원을 막고, 어지간한 길목들을 지상 병력으로 틀어막는 것이 ‘토탈워: 로마 2’의 기본적인 대전략이고, 이 전략의 수행에서 핵심적인 역량이 제해권이라는 사실은 갤리선의 충각이 갖는 의미와 무게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요소들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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