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독립군의 최대 승전보인 청산리전투의 주역이자 광복 후 초대 국방부 장관이 되어 국군을 건설한 이범석 장군의 49주기 추모제가 11일 국립서울현충원 이범석 장군 묘소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대한 외부 인사 초청을 자제한 가운데 박재민 국방부 차관을 비롯해 윤의철 합동참모본부 차장, 이성춘 서울지방보훈청장 등 군 관계자와 유족, 그리고 철기 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 임직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범석 장군은 1915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중국의 명문 운남강무당에 입학해 기병과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교관을 역임한 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지휘해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범석 장군은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초대 참모장과 2지대장을 거쳐 광복 후 대한민국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되어 국군을 건설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정호영 기자
일제하 독립군의 최대 승전보인 청산리전투의 주역이자 광복 후 초대 국방부 장관이 되어 국군을 건설한 이범석 장군의 49주기 추모제가 11일 국립서울현충원 이범석 장군 묘소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대한 외부 인사 초청을 자제한 가운데 박재민 국방부 차관을 비롯해 윤의철 합동참모본부 차장, 이성춘 서울지방보훈청장 등 군 관계자와 유족, 그리고 철기 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 임직원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범석 장군은 1915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중국의 명문 운남강무당에 입학해 기병과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교관을 역임한 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지휘해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범석 장군은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초대 참모장과 2지대장을 거쳐 광복 후 대한민국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되어 국군을 건설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정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