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적의 침입이 많은 곳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인 섬인 탓에 예로부터 외적이 상륙하기 좋은 곳이었다. 고려 시대의 몽골항쟁,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던 비운의 섬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제주인들은 9개의 진성을 쌓았다. 또 해안을 따라 300리에 걸쳐 제주의 만리장성이라고 일컫는 환해장성을 축조하기도 했으며 삼별초 최후의 항몽유적지인 항파두리성이 남아 있다. 지금은 각종 개발로 제주도 성곽 상당 부분이 훼손되고 무너져 제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꾸준하게 복원이 진행되고 있어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편집 = 이경하 기자
■ 태종실록에서 확인되는 기록
제주읍성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제주 성지를 소개하는 표지판에 따르면 “1411년(태종 11) 정월 제주성을 정비토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태종실록’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신중국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성곽의 둘레가 4,394척, 높이는 11척”이라고 적혀 있다.
이 같은 기록에 의존하는 이유는 제주 도심을 중심으로 빙 둘러 축조된 제주읍성이 현재 대부분 도로와 주택가로 변해 옛 성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복원된 성곽은 일부 구간 150m 정도며, ‘오현단’ 쪽의 치성과 남문 동측 치성, 그리고 이 위에 건립된 누각인 ‘제이각’만 남아 있어, GPS 등 요즘 기술로 밝혀진 제주읍성의 외곽거리는 3.27㎞에 이르는 계란 형태의 모습이다.
■ 제주에 공헌한 5인을 기르는 오현단
오현단은 조선 시대 제주에 이바지한 오현(五賢)의 제단으로 귤림서원 옛터에 조성됐다. 제이각은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건립된 누각으로, 당시 이곳에서 제주읍성을 바라보면 성 안은 물론 주변 언덕과 하천, 해안까지 한눈에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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