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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못 뚫는 갑옷엔? 묵직한 ‘한 방’

입력 2021. 05. 06   16:20
업데이트 2021. 05. 0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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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둔기
 
휘두를 때 속도·질량 공격력에 반영…기동성 감안 크기·무게 제한
쌍절곤·플레일 등 사슬 달린 둔기류 회전시키면서 더 강한 타격력
‘몬스터 헌터’ 해머로 사냥…‘엠파이어즈’ 조선군 기병 편곤 무장 눈길

 
고전 시대 무기들을 이야기할 때 그동안 날붙이가 있는 칼과 창 같은 무기를 주로 거론해 왔지만, 전장의 냉병기(Cold Weapon·무기 중 화약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 것들을 총칭)가 언제나 날붙이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금속의 제련이 어려웠던 시기의 무기는 모두 몽둥이 같은 둔기의 형태였다. 이후 금속 생산량과 제련술이 발전하며 갑옷에 금속이 적용되자 날붙이만으로 유의미한 피해를 주기 어려운 시대가 나타날 때, 둔기는 다시금 전장에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낸 바 있었다.


갑주를 뚫고 들어가는 묵직한 피해량의 무기

금속으로 만든 날은 휘두르는 사람의 힘이 아주 좁은 단면적을 가진 날 끝을 시작으로 적에게 전달되면서 만들어내는 강한 절삭력을 기본으로 한다. 금속 날의 좁은 면적에 집중되는 힘을 통해 적의 갑주와 피부를 뚫고 들어가 신체에 유의미한 피해를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는 갑옷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차 일반 날붙이만으로는 뚫기 어려운 수준의 방호력을 마주해야 했다.

반면 애초부터 금속 날의 단면적에 의존하지 않는 둔기류의 공격력은 상대가 어떤 갑주를 입든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는 피해량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두꺼운 판금 갑옷을 둘러쓴 상대에게 들어가는 피해는 아무리 둔기라고 해도 상당 부분 줄어들긴 했지만, 날붙이(칼, 낫, 톱, 도끼 등) 무기처럼 아예 무용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둔기는 날붙이의 시대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예리한 날 대신 둔기류는 휘두르는 힘에 실리는 질량을 그대로 타격에 실어내기 때문에 반드시 원심력을 활용해 무거운 질량을 빠르게 휘두르는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날붙이와 둔기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도끼도 이런 원리를 활용하기 위해 도끼 머리를 무겁게 만들었고, 갑주를 입은 적을 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투용 망치 ‘워해머’ 또한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경우다.

그러나 둔기는 기본적으로 무거울수록 효과가 높다는 원칙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이는 더 강한 피해량을 내기 위해 무기의 무게를 늘렸다간 늘어난 무게만큼의 민첩성과 대응력을 잃게 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활용되는 둔기들은 적당한 선에서 무게를 타협해야 했다. 묵직한 한 방은 위력적이지만, 그 한 방이 빗나갔을 경우에는 치명적인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둔기류들은 마냥 무거워지기보다는 기동성과 피해량 사이에서의 적당한 지점까지만 질량을 늘리는 선택으로 발전해 왔다.

철퇴라고 불리는 많은 무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양의 메이스, 동양의 철퇴들은 대체로 한 손 검과 비슷한 길지 않은 길이에 무기 머리 부분의 금속 덩어리를 크게 만들어 무게중심을 밖으로 뺌으로써 휘두르는 힘에 질량을 크게 싣는 방법을 택했다. 한 손으로 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무게로 기동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이즈에서의 타협을 볼 수 있는 형태들이다.

휘두르는 힘, 원심력을 늘리는 방향으로의 발전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낳기도 했다. 단순하게 무기의 자루를 길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경우 무기 머리에 실린 질량을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색다른 방식이 동원되기도 했는데, 바로 편곤이나 플레일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슬 달린 둔기다.

둔기류 중 가장 인기 높은 무기는 쌍절곤일 것이다. 이소룡의 화려한 액션으로 대표되는 쌍절곤은 그러나 잘못 휘두르면 자신을 가격하는 무기로도 이름 높다. 사진은 영화 ‘맹룡과강’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둔기류 중 가장 인기 높은 무기는 쌍절곤일 것이다. 이소룡의 화려한 액션으로 대표되는 쌍절곤은 그러나 잘못 휘두르면 자신을 가격하는 무기로도 이름 높다. 사진은 영화 ‘맹룡과강’의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자루의 회전뿐 아니라 자루 끝의 사슬에 의해 무게추가 한 번 더 휘둘러지는 구조인 편곤(鞭棍) 등은 제한된 무기의 길이 안에서 두 번의 회전을 통해 더 강한 타격력을 만들어내는 무기가 되었다. 개인 병기인 쌍절곤도 이와 같은 맥락이 적용된 경우다. 편곤은 조선시대에 사용한 무구(武具)이다. 도리깨와 같은 편(鞭)과 곤봉과 같은 곤(棍)으로 구성된다.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클레릭. 날붙이 없는 무기를 쓴다는 설정하에 메이스와 라운드실드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딱히 둔기류 특유의 공격 방식이 묻어나오는 형태까지는 아니다.  필자 제공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클레릭. 날붙이 없는 무기를 쓴다는 설정하에 메이스와 라운드실드를 들고 나온다. 하지만 딱히 둔기류 특유의 공격 방식이 묻어나오는 형태까지는 아니다. 필자 제공


느린 공속, 강력한 한방의 게임 속 재현들


20세기 오락실의 인기 게임이었던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 의외로 둔기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중세 유럽 판타지의 설정에는 성직자가 날붙이가 있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는데, 이 때문에 게임 안에 등장하는 성직자인 클레릭 캐릭터는 기본 무기로 둔기류인 메이스를 들고나온다. 게임 내 전사가 들고나오는 검에 비해 딱히 공격력이 다르거나 하는 느낌은 아닌, 외형만 둔기라는 정도의 설정에 가깝다.

게임에 등장하는 투척용 보조 무기 중에는 단검과 함께 망치가 나오는데, 전형적인 한 손 워해머의 형태이면서도 투척무기로 나오는 점은 조금 특이한 부분. 그러나 이 해머도 잘 보면 다른 클래스에 비해 성직자가 던질 때 조금 더 연사 속도가 높게 나오는 부분이 있다.

이 코너에서 냉병기를 다룰 때 꽤 자주 등장해 온 ‘마운트 앤 블레이드’는 둔기와 날붙이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현한 게임으로 손꼽힌다. 게임상 모든 무기는 세 가지의 공격 속성을 갖는데, 도검류가 갖는 베기 속성, 창류가 갖는 찌르기 속성, 둔기류가 갖는 타격 속성이다. 베기가 가장 기본 공격력이 좋지만 적의 갑주가 두꺼울수록 입히는 피해량이 크게 떨어지며, 둔기류는 가장 기본 피해량이 적지만 적의 방어력이 좋아도 대미지가 별로 깎이지 않아 판금 갑옷을 둘둘 감은 중기병(重騎兵) 등을 상대할 때 유용하다.

이 시리즈에서 둔기류의 타격은 적을 살상하는 대신 전투 불능 상태에만 빠뜨릴 확률이 높다는 또 하나의 특성이 붙는다. 덕분에 게임에서 둔기류는 주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할 시 포로 생포율을 높여 몸값을 받고 풀어주기 위한 용도로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 이는 실제 역사를 반영하기도 한 고증으로, 중세 유럽의 전쟁은 적을 죽이기보다는 살려두고 몸값을 받는 편이 이득이었다는 점이 들어간 부분이다.

다양한 무기의 특성을 적당한 과장으로 표현해 살려내는 게임 시리즈인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는 해머라는 이름의 둔기가 등장한다. 전통적인 둔기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다소 느린 공격 속도와 길지 않은 리치라는 특징을 담은 몬스터 헌터의 해머는 다른 무기들과 달리 몬스터의 머리를 제대로 때려 내면 기절 상태를 불러내는 스턴 공격이 사실상 테마로 자리 잡은 무기다.

두꺼운 껍질과 같은 갑주로 방비한 몬스터들을 두들겨대면서 손쉽게 갑주를 부숴내기 쉽고, 힘 모으기를 통해 강력한 한 방 피해를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둔기 특유의, 헛쳤을 때의 공백이 적지 않아 초보자가 쓰기에는 다소 어려운 무기로 분류되곤 한다.

조선군 근접 기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편곤 기병. 사슬 연결을 통한 강력한 원심력을 무게에 실어 타격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엠파이어즈: 근대의 여명’에서 조선군 기병유닛으로 출전한 바 있다.  필자 제공
조선군 근접 기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편곤 기병. 사슬 연결을 통한 강력한 원심력을 무게에 실어 타격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엠파이어즈: 근대의 여명’에서 조선군 기병유닛으로 출전한 바 있다. 필자 제공

2003년에 만들어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엠파이어즈: 근대의 여명’은 아주 유명한 게임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이름이 좀 알려진 게임이다. 중세 시대의 조선군에 대한 고증이 상당히 잘 구현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삼지창으로 널리 알려진 당파를 활용하는 창병이나 천자총통 같은 무기들이 잘 구현되어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바 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조선군 기병 중에 둔기를 쓰는 기병이 있다.

게임에서 ‘도리깨 기병’으로 나오는 조선군 기병 유닛은 우리에게 편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무기를 장비한 경기병이다. 실제 조선군의 기병 편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던 편곤 기병은 둔기로서의 편곤을 활용해 말의 가속력을 얹어 적의 머리를 노리는 돌격 형태로 운용했으며, 이런 점을 게임 안에서 살려낸 경우에 속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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