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만화로 문화읽기

웃음의 추억

입력 2021. 04. 27   15:59
업데이트 2021. 04. 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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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명랑만화의 시대를 추억하며
 
1953년 ‘꺼꾸리군, 장다리군’ 효시
1960~1980년대 주류로 전성기 구가
‘꺼벙이’ 작가 길창덕 본격 장르 개척
‘맹꽁이 서당’ ‘로봇 찌빠’ 등 큰 인기
1990년대 김진태 작품 끝으로 쇠퇴
명랑한 웃음 만화 발굴 독자들 관심을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있었다. 굳이 이렇게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명랑만화가 이제는 거의 잊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 만화가 잊힌 명랑만화라는 이름을 끄집어내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 시대에 수채화로 완성해 정겨운 느낌이 묻어나는  박윤선의 『고양이 클럽과 왕 친구들』.필자 제공
디지털 시대에 수채화로 완성해 정겨운 느낌이 묻어나는 박윤선의 『고양이 클럽과 왕 친구들』.필자 제공


출판사 딸기책방이 지난달 말 펴낸 박윤선의 만화 『고양이 클럽과 왕 친구들』의 보도자료 첫머리에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명이 ‘터억’ 하니 적혀 있다. 이 작품은 근래 여타 작품들과 달리 전면 수채화 채색으로 포근한 느낌과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도 이채로웠지만, 명랑만화라는 표현 덕분에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이번엔 명랑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명랑만화는 1960년대부터 1970·1980년대를 정점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만화 형식이다. 장르명으로서의 ‘명랑만화’의 정확한 원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짤막한 이야기도 ‘명랑소설’의 이름으로 불렸고, 광복과 6·25전쟁을 전후한 1950년대에 들어서는 어린이용 만화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에 ‘명랑만화’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명랑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인 길창덕의 『꺼벙이』.
1970년대 명랑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인 길창덕의 『꺼벙이』.


그리고 시사만화의 금자탑을 세운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이 1953년 발표한 ‘꺼꾸리군, 장다리군’이 사실상 명랑만화의 효시 격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60년대 김성환의 ‘소케트 군’을 비롯해 임창의 ‘땡이’ 시리즈, 박기준의 ‘두통이’,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 김경언의 ‘칠성이’ 등이 어린이 독자층의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명랑만화라는 장르의 형식미와 시각 기호를 개척해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꺼벙이’ ‘재동이’의 길창덕이다.

6·25전쟁이 터지자 월남해 신병 훈련 교재 등을 만화로 그렸던 길창덕은 그 공을 인정받아 전쟁 이후인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만화의 길로 들어섰다. 길창덕은 2010년 별세 후 본인의 뜻에 따라 ‘육군하사 길창덕’이라 적힌 묘비 아래 묻혔을 만큼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또한 이 땅에 산업화가 가속화될 당시에는 어린이와 소시민들의 일상 풍경을 섬세하고 친근감 있게 묘사해 사랑받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명랑만화 하면 떠올리는 형식미와 어린이들에게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는 목표 지점은 사실상 길창덕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길창덕이 본격적으로 길을 닦은 명랑만화의 틀 위에서 윤승운의 ‘요철발명왕’ ‘맹꽁이 서당’과 신문수의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고인돌’, 이정문의 ‘심술’ 시리즈와 ‘설인 알파칸’ 등이 각종 어린이 교양 잡지의 별책부록이나 단행본 등을 통해 1970년대 어린이 독자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김영하의 ‘펭킹 라이킹’, 윤준환의 ‘꾸러기와 맹자’ 등이 ‘보물섬’ 등 만화 전문 잡지와 주요 일간지들이 발간하던 어린이 신문들을 통해 발표됐다. 심지어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전과류 학습지에도 명랑만화들이 곧잘 실리곤 했다.

하지만 1970~1980년대 어린이용 만화의 대표격이던 명랑만화는 본격적인 전문 만화 잡지 시대가 도래한 1980년대 후반에는 연령별·성별로 특화한 잡지들을 중심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영향력을 잃게 된 주요 원인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대중들이 만화와 대중문화에 원하는 점이 달라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명랑만화의 최후 계승자이자 한국 개그만화의 원류로 평가받는 김진태의 『신한국 황대장』.
명랑만화의 최후 계승자이자 한국 개그만화의 원류로 평가받는 김진태의 『신한국 황대장』.

명랑만화의 위상은 떨어졌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도 명랑만화의 형태를 띤 작품들은 계속 등장했다. 김진태의 ‘대한민국 황대장’ ‘신한국 황대장’, 홍승우의 ‘비빔툰’, 김미영의 ‘야 이노마!’, 김나경의 ‘빨강머리 앤’, 그리고 근래 애니메이션화로 더 유명한 이빈의 ‘안녕 자두야’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최후의 명랑만화가’ ‘명랑만화의 마지막 계승자’라는 칭호를 받은 건 김진태다. 김진태는 윤승운의 ‘요철발명왕’을 따라 그리며 만화를 익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전환기에 데뷔했다. 그는 명랑만화가 추구하던 웃음의 형태를 가장 잘 구현한 작가이자 이후 1990년대에 맞는 웃음을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김진태 만화가 개그를 대표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던 개그의 스타일도 변했다. 이에 맞물려 지상파 TV의 대표 개그 프로그램도 연이어 폐지되는 등 웃음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대중문화 장르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화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나를 향한 자조조차 없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와 조롱을 대놓고 개그의 소재로 삼으려는 시도가 미디어 인플루언서화한 만화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돼 우려를 낳고 있다. 명랑만화 시대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그대로 좇기보다는 현재의 젊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전하는 만화를 발굴하는 데에 독자들이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할 듯하다. 그리고 만화가들은 소중하고 값진 일상의 기쁨들을 반영한 웃음을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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