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방일보-ROTC중앙회 공동기획 ‘60년 전통 이어 미래로’

軍 생활은 큰 선물… 사회 공헌도 함께합니다

조아미

입력 2021. 03. 29   17:03
업데이트 2021. 03. 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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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OTC 출신 5형제


부친 뜻 따라… 늠름한 형 모습 보고
자연스럽게… 운명이라 고민없이 지원
현역시절 최선 다하며 임무 수행
전역 후 사회 각계서 역할 다해
아버지 설립 ‘애육원’ 운영도 한마음


‘5형제 ROTC 출신’ 가족이자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 이사들이 최근 이사회 참석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목련이 활짝 핀 나무 앞에 모인 5형제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4남 황영배 신망애육원장, 3남 황영제 전 교수, 1남 황영일 신망애육원 이사장, 2남 황영봉 신망애육원 상임이사, 5남 황영태 안동교회 담임목사. 사진=조용학 기자
‘5형제 ROTC 출신’ 가족이자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 이사들이 최근 이사회 참석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목련이 활짝 핀 나무 앞에 모인 5형제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4남 황영배 신망애육원장, 3남 황영제 전 교수, 1남 황영일 신망애육원 이사장, 2남 황영봉 신망애육원 상임이사, 5남 황영태 안동교회 담임목사. 사진=조용학 기자


5형제 모두가 학생군사교육단(ROTC) 출신인 가족이 화제다. 5남3녀 가운데 1남 황영일(학군2기·연세대·79), 2남 황영봉(학군8기·건국대·74), 3남 황영제(학군10기·중앙대·72), 4남 황영배(학군18기·고려대·63), 5남 황영태(학군22기·고려대·59)가 그 주인공.

이들은 지난 1984년 3월 당시, 5남 영태 씨가 소위로 임관하면서 ‘독수리 5형제 ROTC’로 주목받았다. 현역시절에는 국가안보의 일선에서 ‘호국의 간성’으로, 전역 후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다해온 이들을 최근 만났다.

아버지 애육원 설립, 봉사의 길 영향

5형제가 ROTC에 지원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부친 황용석(2000년 작고) 씨는 6·25전쟁 당시 우연한 기회에 보육원(옛 고아원)에 들렀다가 원생들이 사랑에 굶주린 채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고 전쟁고아들을 돌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1954년 사재를 털어 경북 문경에 틈틈이 개간한 하천 변 자갈밭 6611㎡(2000평) 위에 고아 12명이 생활하는 사회복지법인 신망애육원을 설립했다.

“아버지는 친자식과 고아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어요. 8남매를 모두 고아들 방에 1명씩 배정해 같이 생활하고 밥 먹고 학교 다니게 했죠. 항상 ‘봉사하며 살아라’ ‘남을 위해 살아라’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맏아들 영일 씨는 리더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ROTC에 입단했다. 둘째 영봉 씨는 형의 뒤를 이어 ROTC를 지원했다. 그는 “정복을 입고 보육원에 온 형을 보니 그렇게 멋지고 늠름해 보일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남 영제 씨는 “큰형과 둘째 형이 모두 장교로 임관하니, 저도 ROTC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됐다”며 “이왕 군 생활할 거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자 보람된 일이라 판단했었다”고 말했다.

4남과 5남은 형들의 뒤를 이어 ROTC가 되는 길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고.

5형제가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5형제가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조용학 기자


군 경험들 사회생활 큰 도움으로

장남 영일 씨는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을 거쳐 1사단 최전방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새벽 2시 기동타격대를 구성해 순찰하며 힘든 군 생활을 했던 그는 전역 후 인천 극동방송에서 기자와 PD로 제작에 참여했고 부사장을 끝으로 36년간의 방송국 생활을 마쳤다. 이후에도 CTS 기독교TV 부사장, C채널에서 사장 등 중책을 맡으며 46년간 방송전문가로 일했다. 현재는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신망애육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남 영봉 씨는 육군38사단(육군76사단으로 재창설·2011년 해체)에서 군 생활을 마쳤다. 그는 보육원 생활 덕분에 군대에서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전방 소대장이던 1971년 어느 날 밤이에요. 분대장의 괴롭힘에 시달린 고아 출신 분대원이 술을 잔뜩 먹고는 탄약고에서 수류탄을 꺼내 들고 분대장을 찾으러 다닌다는 다급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급히 달려갔지만, 살기등등한 병사를 마주하게 되자 다리는 굳어지고 머리는 하얘지더라고요. 순간 기지를 발휘해 ‘나도 고아다. 고아로 어렵게 자라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득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특히 영봉 씨는 “ROTC 인맥은 큰 선물과도 같았다”며 “과거 부산에서 사업할 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ROTC 동문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신망애육원 상임이사다. 부친이 작고한 이후 부친의 성품과 외모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신이 신망애육원 상임이사로서 애육원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3남 영제 씨는 육군8사단에서 병기 장교로 근무했다.

“장교 시절, 소위이지만 운영장교의 부재로 정보·인사 등의 업무를 다양하게 접해봤습니다. 훗날 현대중공업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소대장 경험을 백분 발휘할 수 있었어요.”

그는 이후 기업 경영 컨설팅 관련 분야에서 근무한 뒤 공학박사 학위를 받아 경남정보대학·부경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신망애육원장인 4남 영배 씨는 육군15사단 포병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전역 후 한국화약그룹·한국유니시스 임원 등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6년부터 고향 문경에 정착해 둘째 형과 함께 애육원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책임감과 리더통솔력을 키우는 데 ROTC만 한 과정이 없다”고 전했다.

5남 영태 씨는 서울 안국동에 있는 안동교회 담임목사다. 부친은 6·25 후 경북 문경에서 교회 장로로 시무했다. 다섯 아들 가운데 한 명은 목사가 됐으면 좋겠다는 신앙심이 깊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막내인 그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 유지 받들어 애육원 발전시킬 터

다섯 형제의 소망은 모두가 건강하고 아버지께서 가업으로 남긴 신망애육원을 잘 운영하는 것이다. 신망애육원은 지난 67년 동안 700여 원아들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만들었다.

4남 영배 씨는 “현재 애육원에는 갓난아기부터 대학생까지 50여 명의 원생이 있다”면서 “원명처럼 믿음·소망·사랑으로 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조아미/사진=조용학 기자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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