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박영욱 조명탄] 나침판에서 위성으로

입력 2021. 03. 16   16:02
업데이트 2021. 03. 1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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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욱 사단법인 한국국방기술학회 학회장
박영욱 사단법인 한국국방기술학회 학회장


100년 전만 해도 바다에서 길잡이는 나침판과 별자리였고 지도 없는 여행은 어려웠다. 이제는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나 갈 수 있고, 위치와 경로는 실시간 데이터로 저장된다.

PNT(positioning·navigation·time: 위치·경로·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내비게이션(항법)기술이 없었다면 자동차·비행기·로켓 등 어떤 이동체도 우리 일상에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 기술문명에서 항법기술과 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양대 항법시스템, 즉 관성항법시스템(INS)과 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GNSS)은 모두 군사적 목적에서 개발돼 민간 영역으로 확대된 국가기반 기술이다. 관성항법시스템은 2차 대전 때 독일이 비행제어 목적으로 관성센서 자이로스코프를 V2 로켓에 처음 탑재한 후 발전을 거듭해 미사일 유도나 군용기 항법 등에 다양하게 적용됐고 민수기부터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엄청나게 커졌다.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는 우주로 향하는 첫발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미국의 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인 GPS를 구축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존스홉킨스대학 응용물리학연구소 연구팀이 스푸트니크를 추적하며 뜻밖의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스푸트니크의 전파신호가 위치와 거리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하는 도플러 효과를 관측했고 이에 착안해 전파 수신으로 위성의 위치를 찾는 방법과 이를 역으로 적용해 지상의 위치정보를 얻는 방법을 고안했다.

미 국방부의 첨단연구개발국(ARPA)이 이를 발전시켜 최초로 위성 기반의 항법시스템인 트랜짓을 개발했고 1960년부터 해군 핵잠수함과 핵미사일 운용에 이용하고자 했다. 1978년 GPS용 1호 위성 발사 후 28년간 30여 개의 위성을 띄워 전 지구를 감싸는 군용 위성항법시스템이 완성됐고 지구 어디라도 위치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대다수 무기에 관성항법장치와 GPS가 함께 적용됐는데 초기에는 미 공군의 GPS 윙이, 지금은 우주사령부가 전 세계의 GPS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

군용으로 출발한 GPS가 상용화된 과정에는 안타까운 역사가 숨어 있다. 1983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운항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관성항법장치 이상으로 경로를 이탈했고,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승객 모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군사용 GPS를 구축하던 미국은 이를 계기로 민간에서 활용하도록 GPS 신호의 조건부 개방을 결정했다.

물론 지금은 더 정밀하고 보안에 강한 군용 GPS가 미국의 패권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 GPS 종속과 일방적 패권을 경계하는 강대국들도 자국 중심의 위성항법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쏟아부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러시아는 글로나스시스템을 구축했고 유럽 EU는 갈릴레오, 중국은 베이두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인도(나빅)와 일본(QZSS)도 지역 기반의 위성항법시스템 운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위성항법기술의 국제적 경쟁은 군사적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광범위하게 민간 활용처가 늘어나면서 산업경제적 목적과 비중이 지대해졌다. 스푸트니크 이후로 우주의 군사화가 시작됐으나 GPS의 민간상용화를 기점으로 우주 공간의 산업화도 본격화됐다. 최근에는 우주기술이 ICT 기반의 4차 산업혁명과 결합하면서 우주산업의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내년에 착수하는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이 무사히 구축돼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스마트한 국가 우주전략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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