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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억대 연봉 포기 후 입대, 선택이 틀리지 않았던 시간이었죠”

윤병노 기사입력 2021. 03. 15   16:54 최종수정 2021. 03. 15   17:08

우명소-시즌2/육군31사단 영광대대 TOD 운용병 김용권 병장

미국서 태어나 복수 국적…
6·25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
‘안중근뼈대찾기’ 활동한 아버지
한국인 정체성·군 복무 당연함
귀에 못 박이도록 듣고 자랐죠


군 생활하며 인내·자신감 얻어
전역 후 美 로스쿨 입학 계획
국제 소송 등 국익 일조하고파

휴가를 나온 육군31사단 김용권 병장이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한 뒤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사진=조종원 기자

모든 사람이 말렸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그만두고, 피할 수도 있는 군(軍) 복무를 자처하는 것을. 낯선 환경에서의 조직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도전을 마다치 않았다.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로서 군 복무는 당연하다는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귀국길에 오른 그는 당당히 입대했고,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군 생활은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행복한 추억을 쌓는 자양분이 됐다. 군 복무를 디딤돌 삼아 한 단계 더 발전된 청사진을 그렸다는 육군31사단 영광대대 열영상감시장비(TOD) 운용병 김용권 병장의 사연을 소개한다. 글=윤병노/사진=조종원 기자

거액 연봉·안정된 직장 뒤로하고 한국행

김 병장은 아버지가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1995년 태어난 복수(한국·미국) 국적 소지자다.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 제39조 및 병역법 제3조에 의해 병역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다만 △외국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부 또는 모와 같이 국외에서 계속 거주하는 사람 △부모와 같이 24세 이전부터 국외에서 계속 거주하는 사람 △국외에서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 등은 37세까지 병역을 연기받을 수 있다. 38세가 되면 제2국민역에 편입된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김 병장도 이에 해당한다.

김 병장은 미국 서부의 명문대인 UC버클리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중심에 있는 페이팔(PayPal)에 입사해 전략·서비스 가격 측정팀에서 2년을 근무했다. 페이팔은 결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결제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회사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근무 당시 김 병장의 연봉은 15만 달러(한화 약 1억7000만 원)에 달했지만, 주저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진=조종원 기자 

훈련소에서 끈끈한 정, 추억 차곡차곡

김 병장의 입대는 사실 어렸을 때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제10·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안중근의사숭모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고(故) 김영광 씨다. 아버지는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자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기획이사로 활동했던 김성수 교수다. 할아버지·아버지는 김 병장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군 복무의 당연함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할아버지는 ‘독립공채 상환에 관한 특별 조치법안’ 발의, 데라우치 총독 문고 국내 반환,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청산리대첩 기념탑 건립, 독립운동가 유해 봉안, 백두산 영유권 수호 등을 추진하며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6·25전쟁에 참전한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셨습니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학생들에게 국가 운영의 핵심 분야인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아버지 역시 미국 시민권자여도 군대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권하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서인지 입대를 피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김 병장은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포기하지 말라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2019년 10월 귀국했고, 이듬해 1월 28일 육군훈련소에 입영했다. 훈련병 교육은 자라온 문화가 다르고, 모국어에 조금은 미숙했던 김 병장을 완벽한 한국인으로 만드는 과정이 됐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통제’를 받으며 단체 생활을 한다는 것과 생활 환경이 바뀌면 나타나는 피부질환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전우들은 모든 게 서툰 저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최상철(원사) 소대장님을 비롯한 간부들도 친절하게 고민 상담을 해주고, 불편한 게 없는지 세심히 살펴줬습니다. 훈련소 동기들과는 연락을 자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휴가 때는 점심을 함께하는 등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 생활 발판 삼아 또 다른 목표 도전

김 병장은 부대에서 TOD를 운용하며 분대장 임무를 수행 중이다. 훈련소가 김 병장을 한국인으로 환골탈태시켰다면 자대는 인내심과 어떠한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하는 발판이 됐다.

“훈련소와는 다른 분위기, 해안경계작전의 최일선에서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적보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포용·격려해준 간부와 선임병들의 배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의 이름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직속상관이면서 긍정의 힘을 심어준 이한영(하사) TOD 반장님, 진로 상담 등 군 생활에 나침반이 되어준 박원익(중령) 대대장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 병장은 군 복무 중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를 무결점으로 완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역 후 미국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미 한 곳의 로스쿨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남은 군 생활 동안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부족한 게 많지만, 분대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간부와 용사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싶습니다. 이를 달성하면 다음 계단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입니다. 로스쿨을 졸업하면 정보통신 특허 및 지적재산 관련 변호사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장래성과 금전적인 여유를 마다하고 입대를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군대는 저의 부족함을 채우고, 행복한 추억을 가슴속에 새겨 넣은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보는 어떠한 이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력이나마 제가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게 뿌듯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국제 소송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익에 일조할 수 있도록 꿈을 향해 정진하겠습니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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