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이대화 조명탄] 완벽히 객관적인 시상식이란 없다

입력 2021. 02. 25   16:50
업데이트 2021. 02. 2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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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 화 
음악 저널리스트
이 대 화 음악 저널리스트

오는 3월 14일, 미국에서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이 열린다. 음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고 월드 클래스 무대들이 예정돼 있지만 올해는 시상식을 둘러싼 분위기가 날카롭다. 지난해 후보 발표 때 2020년 최대의 히트메이커인 위켄드를 어떤 분야에도 후보로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켄드의 4집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는 그래미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매체가 주목한 작품 중 하나다. 순위의 정도엔 차이가 있지만 지난해 위켄드가 대중성과 음악성 모두를 잡은 활동을 했다는 데는 대부분이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런데 그래미만 위켄드를 빼놓았다. 위켄드는 “그래미는 부패했다”는 트윗을 올려 선정위원들의 안목을 조롱했다.

위켄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그래미는 세계적 권위의 음악 시상식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때로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실수를 해 신뢰성에 의심을 받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열풍의 결정적 해인 2013년에 아비치·스크릴렉스 같은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알 월서라는 무명의 프로듀서가 ‘최우수 댄스 음악’ 후보에 올라 논란이 일었다. 일렉트로닉 씬의 흐름에 관심 없던 그래미 회원들이 알 월서의 꾸준한 홍보에 설득돼 전혀 대표성 없는 음악을 후보에 올린 것이다.

‘최우수 댄스 음악’ 분야는 특히 잡음이 많았다. 2001년에 바하 멘의 ‘후 렛 더 도그스 아웃(Who Let The Dogs Out)’은 “그냥 재밌는 노래”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명작으로 꼽히는 모비의 ‘내추럴 블루스(Natural Blues)’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리믹스 분야는 전체 투표가 아닌 선발된 소수 전문가끼리 후보를 결정한다. 그래미 회원들이 전체적으로는 리믹스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운영자들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성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특정 장르에 대한 편견도 늘 지적돼 왔다. 예를 들어 레드 제플린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밴드 중 하나로 칭송되지만 전성기에 단 한 개의 그래미도 가져가지 못했다. 힙합도 그래미의 꽃인 ‘올해의 앨범’ 분야에선 지금껏 한 번의 수상에 그쳤다. 하도 논란이 많자 그래미도 개선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투표인단의 인종, 연령, 성별 비율을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나이 든 백인 남성’ 위주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유색 인종, 여성, 젊은 회원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만 너무 늦은 대처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투표가 폭로돼 파장이 일기도 했다. 지금은 물러난 과거 그래미의 CEO 데버러 더건은 일명 후보검토위원회가 친하거나 비즈니스 관계인 아티스트에게 투표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후보검토위원회는 회원들의 전체 투표 결과를 검토해 최종 후보 리스트를 결정하는 중간 기구다. 비전문성이 끼어들 여지가 많은 전체 투표를 최정예의 안목으로 한 번 필터링하는 것이다. 신뢰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겠지만 위원회 명단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 데다 3분의 2를 걸러내는 막강한 권한을 가져 늘 도마 위에 올랐다.

물론 그래미의 찬사 받을 측면들도 있다. 종사자 및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2만 명 가까운 회원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넘사벽’ 클래스다. 매년 화제인 세계적 수준의 무대 연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취약점들을 아울러 바라볼 때 더 정확하게 수상의 의미를 짚을 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히 전문적인, 완벽히 객관적인 시상식은 없다. 그래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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