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정은정 병영칼럼] 떡볶이는 맵다

입력 2020. 12. 29   16:37
업데이트 2020. 12. 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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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내가 처음으로 해본 요리는 초등학생 때 만든 떡볶이다. 학교에서 요리 활동으로 요리 메뉴를 정할 때 친구들 사이에서 이견 없이 모아지는 메뉴도 바로 떡볶이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개성도 강해 경연대회를 열기에도 좋다. 또 떡볶이 재료의 경우 가격이 비싸지 않아 골고루 분담하기에도 알맞다. 무엇보다 떡볶이는 한국사람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음식에는 취향이 있다. 취향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집단적이기도 하다. 먹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각자의 취향이 뚜렷해진다. 떡볶이도 그렇다. 떡볶이가 다 거기에서 거기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역색과 개인의 취향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음식 중 하나다. 떡볶이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드나들던 단골집의 떡볶이를 최고로 친다. 내가 살던 동네는 ‘후추 떡볶이’라 하여 언뜻 보면 희어멀건한데 여기에 후추를 잔뜩 뿌려 먹는 방식이다. 만두피로만 튀긴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푹 적셔 먹고 추가 비용을 내면 네모난 어묵 한 장을 통째로 주고 삶은 계란은 포크로 으깨서 소스와 함께 먹곤 했다. 타지에 흩어져 살다 오랜만에 여고 동창들이 모이면 후추 떡볶이를 먹으러 학교 앞으로 몰려간다.

떡볶이는 밀떡과 쌀떡으로 나뉜다. 쌀은 비싸고 밀가루는 흔했던 때 떡볶이용 밀떡이 대량생산되면서 대다수 떡볶이 가게에서 밀 떡볶이를 팔았다. 나도 어릴 때부터 밀떡에 익숙해서 여전히 밀 떡볶이를 좋아한다. 쌀이 흔해진 세상에서도 밀 떡볶이는 여전히 많이 팔린다. 물론 쌀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밀가루보다 소화가 잘 되고 쫄깃한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떡볶이는 양념으로도 나뉜다. 고추장 떡볶이가 대표적이지만 춘장을 넣은 짜장 떡볶이나 간장양념을 넣은 간장 떡볶이도 있다. 양념의 변주는 자유로워 고추장과 춘장을 적절히 섞기도 한다. 여기에 국물을 많이 잡아서 튀김이나 순대를 푹 담가서 먹는 국물 떡볶이도 있고 걸쭉한 물엿이 잔뜩 들어간 소스에 찍어 먹는 방법도 있다. 양배추를 꼭 넣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대파가 잔뜩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근래엔 치즈 같은 토핑을 얹은 떡볶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떡볶이는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다.

산업화 시대에 아무리 근면 성실해도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던 농촌 사람들이 대도시로 올라왔지만 좋은 일자리를 얻기에는 기술과 학력이 부족했다. 유일한 자본은 음식 솜씨와 성실성 하나뿐이던 여성들이 떡볶이 포장마차를 꾸려 가족을 건사하는 곳들이 많았다. 단골로 드나드는 떡볶이집들도 포장마차에서 출발했던 곳들이다. 단속반에 쫓겨 다니며 장사를 하다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한 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던 단골 떡볶이집 사장님에게 매운 떡볶이는 생존의 도구이자 삶을 지켜준 귀한 존재다. 여기에 주머니 가볍던 우리의 배도 든든하게 채워준 학창 시절의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떡볶이 전문점도 많아졌고 청년들도 떡볶이점 창업에 많이 뛰어든다. 소위 ‘아주머니’들이 하던 떡볶이 장사에 건장한 남성 청년들이 뛰어드는 현실 자체가 눈물 나도록 맵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생존을 해야 하니 창업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고 대중적인 음식인 떡볶이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여기에 식품기업에서 만드는 밀키트 제품도 쏟아져 나오고 있어 떡볶이 경쟁은 더 치열하다. 떡볶이의 세계가 점점 더 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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