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와삶

[이광해 종교와삶] 공간을 사는 것

입력 2020. 11. 24   16:58
업데이트 2020. 11. 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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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해 해군 6전단 인사참모실 군종과 대위·법사
이광해 해군 6전단 인사참모실 군종과 대위·법사

필자는 낯선 장소에 가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본 적이 있는데, 타인과 친해지고 싶으면 낯선 장소에서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에 만나 함께 있어 보라는 거였다. 맨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간과 낯선 공간에 함께 있다면 그 환경이 주는 어색함과 그 어색한 순간들이 주는 자극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자극들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돼서 그 두 사람을 가깝게 해주지 않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낯선’이라는 단어다. 요즘은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사이사이에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변화 혹은 변칙이 숨겨져 있기는 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을 갈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 그 길에서 접하게 될 풍경이나 느낌도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을 생각해 보자. 점심시간과 그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다. 즉,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변칙은 가득하지만 그 시간과 거리에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 평일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카페에 가면 여러 사람이 있다. 유심히 잘 보면 그들은 커피를 구매했지만, 사실은 공간도 함께 산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데는 제한시간이 없다. 시험을 앞둔 이에겐 독서실이 되며 친구들과는 잡담의 광장이 된다. 창작자에겐 작업실이 되고, 연인들에겐 감정의 원두를 볶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때에 따라 혼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처럼 공간 속 ‘낯선 느낌’은 나의 일상에 변칙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날 하루를 할애해 찾아가는 공간이 감명과 깊은 인상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그때의 기억과 경험은 분명 내 안의 평범함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공간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에 상대가 침범했을 때는 불쾌감을 느낀다.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구한 사람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러나 낯선 공간에선 타인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자신조차도 공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 주는 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자신이 계획했던 것들을 이루지 못하고 느슨해지기 시작한 걸 느낀다면 낯선 공간에 가보면 좀 나아질 것이다.

주변이 익숙해 자신을 묶은 줄이 느슨해져 누워만 있고 싶을 때 낯선 곳에서 계획했던 일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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