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더 나아간 ‘CBM+’
5축 가공기·3D 프린터로
항공기 부품 만들고
다양한 방식 비파괴검사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딥러닝 기술 적용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
결함 발췌율 향상 기대
“CBM+ 핵심은
신뢰도 높이는 것”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은 인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도구의 제작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만들어냈다. 도구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정비로 이어진다. 좋은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구적 인간은 곧 ‘정비의 인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단순한 석기부터 정비는 시작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정비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고장 나면 고친다’는 사후 정비의 단순한 패러다임이 정비의 역사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고장을 막기 위해 미리 고장 날 만한 곳을 손보는 예방정비가 그것이다. 예방정비로 인간은 도구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대의 정비는 예방정비에서 더 진화한 상태기반정비(CBM)다. 장비 안에 내장된 각종 센서를 활용,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며 작동 이력과 정비자료 등을 수집·분석해 최적의 정비 요구도를 도출해내 이를 바탕으로 정비하는 상태기반정비는 불필요한 정비 소요를 제거해 안정성과 신뢰성, 효율성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국방일보는 이미 지난 2월 명확한 근거에 따라 상태기반정비를 활용하고 있는 육군항공작전사령부의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본보 2월 8일 자) - ‘경험치’ 자리 대신한 첨단 과학화 시스템 정비·점검 “100% 안전 신뢰”
하지만 국방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선제적 정비, 즉 CBM+를 추진하고 있다. 누적된 센서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활용, 신뢰도를 최적화해 정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국방부의 계획이다.
보다 빠르게, 보다 정밀하게… 부품 제작의 진화
국방부 장비관리과의 도움을 받아 CBM+ 추진 현장으로 찾은 곳은 공군군수사령부였다. 지난 10일 방문한 군수사에서 그동안 우리 군이 축적한 정비 노하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정비 연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확인해야 하는 법. 취재에 동행한 장비관리과 박광훈 중령과 함께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군수사 81항공정비창이었다.
“현재 저희는 부품을 제작하는 데 5축 가공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X·Y·Z축에 2개의 회전축을 더해 정밀도와 신속성을 압도적으로 높인 물건이죠.”
특수제작공장 기계공작팀 김영철 주무관은 마치 애인을 바라보듯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5축 가공기는 항공기 부품 제작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5축 가공기는 끊임없이 절삭유를 뿌리며 알루미늄 덩어리를 부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었다.
김 주무관에 따르면 5축 가공기는 기존 3축 가공기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속도로 가공이 가능하다. 특히 정밀도 부분에서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한다. 항공기에 있어 부품의 정밀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 5축 가공기는 항공기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풍경은 과거 ‘장인(匠人)’이 직접 선반, 밀링 등으로 자르고 두드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 김 주무관 역시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진다면 누구나 정밀한 부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창 내 한편에서는 3D 프린터를 활용한 부품 제작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설계팀 이준걸 주무관은 “이곳에서 설계, 출력한 각종 부품과 공구 등은 항공기술연구소(항기소)의 품질인증을 거쳐 사용되고 있다”면서 “HH-60 헬기의 ETS 탱크 플랜지(Flange)같이 실제로 사용하는 부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부품은 꼭 제작사 규격에 맞춰 제작돼야 합니다. 그만큼 정밀도가 중요하죠. 3D 프린터는 이 정밀도를 담보해 줄 수 있는 미래 장비입니다. 제작사가 단종해 더는 만들어지지 않거나 수급이 어려운 부품을 직접 만들 수 있어 정비 효율성도 높아지겠죠.”
박 중령의 설명이다. 그는 3D 프린팅이 단순한 모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창조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미래 발전성입니다. 기존 부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능력을 키워 상상을 구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분야니까요.”
CBM+의 대표적인 기술인 비파괴검사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81정비창은 현재 비파괴검사를 활용해 항공기 동체, 날개, 엔진 등 거의 모든 부속을 대상으로 파괴 없이 내부균열 등 결함을 잡아내고 있다. 특히 장비, 자재에 따라 침투검사, 자분탐상검사, 와전류검사, 초음파검사, 방사선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내시경 같은 비디오스코프를 활용한 비파괴검사였다. 81정비창은 항공기에서 고온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엔진의 핫섹션(Hot Section)을 비디오스코프로 점검하고 있다.
“비디오스코프는 분해 없이 엔진의 이상을 잡아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때문에 더 꼼꼼히 점검해야 하죠. 필요하다면 3~4시간씩 한 곳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시연에 나선 항공지원팀 임래석 상사의 말이다. 임 상사의 설명은 비디오스코프가 인간의 눈을 대신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숙련도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공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항기소가 개발 중인 ‘인공지능 비디오스코프 영상 판독기’는 정비의 진화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정비의 개념을 바꾸다
항기소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비디오스코프 검사 시 결함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비디오스코프 검사는 검사자의 숙련도와 컨디션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진다. 장시간 비디오스코프를 관찰하다 보면 집중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항기소의 아이디어다.
인공지능 판독기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딥러닝 기술이다. 이미 인공지능 판독기는 축적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쉽고 빠르게 결함을 발견해낼 수 있다. 발견된 결함은 다시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되기 때문에 검사하면 할수록 인공지능 판독기는 더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판독기는 숙련도의 차이가 나는 검사자들의 편차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집중도 저하 문제도 해결해 결함 발췌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밖에도 항기소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 정비 수준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항기소 수명관리실은 항공기 비행기록을 컴퓨터로 분석해 기체의 구조수명과 설계대비 운용시간을 산출하고 있었다. 예상수명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미리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해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장비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한 경제적 이득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험분석실은 다양한 분석기술을 바탕으로 공군은 물론 육·해군 장비들의 주요 결함·손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항기소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위험 예측 기술 연구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두열(중령) 항공기술개발실장은 “현재 정비는 인간의 힘에서 과학적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앞으로 정비는 위험요소를 수치·데이터화해 예측함으로써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면 여전히 인간의 힘은 필수 요소다. 이 실장도 이 부분을 짚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간이 측정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은 인간의 보조자 역할일 뿐,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죠. 다만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람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 숙련자 못잖게 빠르고 정확한 정비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정비는 의미가 큽니다.”
‘예측하는 정비’ CBM+의 미래는?
정비 현장의 발전에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공군은 현재 CBM+를 통한 ‘정비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태기반정비(CBM)가 센서 등 측정을 통해 무기체계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한 경우 정비하는 개념이라면 CBM+는 최적의 정비 시점을 판단하기 위해 CBM에 기초해 상태감지와 통합분석을 하는 작업을 뜻한다. 군수사 항공자원관리단 김준오 소령은 “CBM+는 무기체계와 구성품의 신뢰성·정비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절차와 기술, 지식기반 역량을 적용·통합하는 것”이라면서 “핵심은 심리적 담보가 아닌 신뢰도를 높이는 연구”라고 강조했다.
군수사는 현재 신뢰도 기반 정비(RCM)와 센서 기반 고장진단 및 예측기술 적용을 추진하기 위해 항기소를 중심으로 연구능력 확대와 분석 사례 축적에 나서고 있다. 특히 CBM+ 기반기술 확보를 위해 ‘대기 부식환경 모니터링용 시편 정량적 분석기법 연구’ ‘광섬유 센서 활용 복합재 수리구조 상태진단 및 결함예측 기술 개발’ ‘방공관제 레이더 상태진단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연구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국방 빅데이터 분석체계로 수집된 항공기 데이터를 분석해 경향성을 예측하는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CBM+는 예상을 통한 선제적 정비를 가능토록 한다. 지금은 신뢰도와 정보처리 기술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각 군 주요 장비의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 CBM+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박 중령은 “센서데이터를 통해 수집한 정보가 누적되면, 이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선제적 예방정비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더 나아가 첨단기술을 정비현장에 활용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실시간 공정관리와 자동화 정비장비를 도입, 정비효율과 품질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작업자와 작업환경의 안전관리 기반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박 중령은 “앞으로 육·해·공군의 업무재설계(BPR)와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하는 등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장비 식별과 도입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취재 전 미리 받은 설명 자료를 보며 정비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결합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우리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는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비의 진보’에 대한 현장의 고민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또 뜨거웠다. 물론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의 정비사, 연구실의 연구원들의 옆얼굴에서 무한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군의 정비는 반드시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글=맹수열/사진=이경원 기자
한 발 더 나아간 ‘CBM+’
5축 가공기·3D 프린터로
항공기 부품 만들고
다양한 방식 비파괴검사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딥러닝 기술 적용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
결함 발췌율 향상 기대
“CBM+ 핵심은
신뢰도 높이는 것”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은 인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다. 도구의 제작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을 만들어냈다. 도구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정비로 이어진다. 좋은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구적 인간은 곧 ‘정비의 인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단순한 석기부터 정비는 시작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정비의 개념은 변하지 않았다. ‘고장 나면 고친다’는 사후 정비의 단순한 패러다임이 정비의 역사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고장을 막기 위해 미리 고장 날 만한 곳을 손보는 예방정비가 그것이다. 예방정비로 인간은 도구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대의 정비는 예방정비에서 더 진화한 상태기반정비(CBM)다. 장비 안에 내장된 각종 센서를 활용,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며 작동 이력과 정비자료 등을 수집·분석해 최적의 정비 요구도를 도출해내 이를 바탕으로 정비하는 상태기반정비는 불필요한 정비 소요를 제거해 안정성과 신뢰성, 효율성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국방일보는 이미 지난 2월 명확한 근거에 따라 상태기반정비를 활용하고 있는 육군항공작전사령부의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본보 2월 8일 자) - ‘경험치’ 자리 대신한 첨단 과학화 시스템 정비·점검 “100% 안전 신뢰”
하지만 국방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선제적 정비, 즉 CBM+를 추진하고 있다. 누적된 센서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활용, 신뢰도를 최적화해 정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국방부의 계획이다.
보다 빠르게, 보다 정밀하게… 부품 제작의 진화
국방부 장비관리과의 도움을 받아 CBM+ 추진 현장으로 찾은 곳은 공군군수사령부였다. 지난 10일 방문한 군수사에서 그동안 우리 군이 축적한 정비 노하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정비 연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확인해야 하는 법. 취재에 동행한 장비관리과 박광훈 중령과 함께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군수사 81항공정비창이었다.
“현재 저희는 부품을 제작하는 데 5축 가공기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X·Y·Z축에 2개의 회전축을 더해 정밀도와 신속성을 압도적으로 높인 물건이죠.”
특수제작공장 기계공작팀 김영철 주무관은 마치 애인을 바라보듯 뿌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5축 가공기는 항공기 부품 제작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5축 가공기는 끊임없이 절삭유를 뿌리며 알루미늄 덩어리를 부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었다.
김 주무관에 따르면 5축 가공기는 기존 3축 가공기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속도로 가공이 가능하다. 특히 정밀도 부분에서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한다. 항공기에 있어 부품의 정밀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 5축 가공기는 항공기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풍경은 과거 ‘장인(匠人)’이 직접 선반, 밀링 등으로 자르고 두드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 김 주무관 역시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진다면 누구나 정밀한 부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창 내 한편에서는 3D 프린터를 활용한 부품 제작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설계팀 이준걸 주무관은 “이곳에서 설계, 출력한 각종 부품과 공구 등은 항공기술연구소(항기소)의 품질인증을 거쳐 사용되고 있다”면서 “HH-60 헬기의 ETS 탱크 플랜지(Flange)같이 실제로 사용하는 부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부품은 꼭 제작사 규격에 맞춰 제작돼야 합니다. 그만큼 정밀도가 중요하죠. 3D 프린터는 이 정밀도를 담보해 줄 수 있는 미래 장비입니다. 제작사가 단종해 더는 만들어지지 않거나 수급이 어려운 부품을 직접 만들 수 있어 정비 효율성도 높아지겠죠.”
박 중령의 설명이다. 그는 3D 프린팅이 단순한 모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창조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미래 발전성입니다. 기존 부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 능력을 키워 상상을 구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분야니까요.”
CBM+의 대표적인 기술인 비파괴검사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81정비창은 현재 비파괴검사를 활용해 항공기 동체, 날개, 엔진 등 거의 모든 부속을 대상으로 파괴 없이 내부균열 등 결함을 잡아내고 있다. 특히 장비, 자재에 따라 침투검사, 자분탐상검사, 와전류검사, 초음파검사, 방사선검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내시경 같은 비디오스코프를 활용한 비파괴검사였다. 81정비창은 항공기에서 고온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엔진의 핫섹션(Hot Section)을 비디오스코프로 점검하고 있다.
“비디오스코프는 분해 없이 엔진의 이상을 잡아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때문에 더 꼼꼼히 점검해야 하죠. 필요하다면 3~4시간씩 한 곳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시연에 나선 항공지원팀 임래석 상사의 말이다. 임 상사의 설명은 비디오스코프가 인간의 눈을 대신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숙련도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공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항기소가 개발 중인 ‘인공지능 비디오스코프 영상 판독기’는 정비의 진화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정비의 개념을 바꾸다
항기소는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비디오스코프 검사 시 결함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 비디오스코프 검사는 검사자의 숙련도와 컨디션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진다. 장시간 비디오스코프를 관찰하다 보면 집중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 인공지능 영상 판독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항기소의 아이디어다.
인공지능 판독기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의 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딥러닝 기술이다. 이미 인공지능 판독기는 축적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쉽고 빠르게 결함을 발견해낼 수 있다. 발견된 결함은 다시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되기 때문에 검사하면 할수록 인공지능 판독기는 더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판독기는 숙련도의 차이가 나는 검사자들의 편차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집중도 저하 문제도 해결해 결함 발췌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밖에도 항기소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 정비 수준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항기소 수명관리실은 항공기 비행기록을 컴퓨터로 분석해 기체의 구조수명과 설계대비 운용시간을 산출하고 있었다. 예상수명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미리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해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장비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한 경제적 이득도 창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험분석실은 다양한 분석기술을 바탕으로 공군은 물론 육·해군 장비들의 주요 결함·손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항기소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위험 예측 기술 연구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두열(중령) 항공기술개발실장은 “현재 정비는 인간의 힘에서 과학적 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앞으로 정비는 위험요소를 수치·데이터화해 예측함으로써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면 여전히 인간의 힘은 필수 요소다. 이 실장도 이 부분을 짚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인간이 측정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은 인간의 보조자 역할일 뿐,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죠. 다만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람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 숙련자 못잖게 빠르고 정확한 정비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정비는 의미가 큽니다.”
‘예측하는 정비’ CBM+의 미래는?
정비 현장의 발전에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공군은 현재 CBM+를 통한 ‘정비 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태기반정비(CBM)가 센서 등 측정을 통해 무기체계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한 경우 정비하는 개념이라면 CBM+는 최적의 정비 시점을 판단하기 위해 CBM에 기초해 상태감지와 통합분석을 하는 작업을 뜻한다. 군수사 항공자원관리단 김준오 소령은 “CBM+는 무기체계와 구성품의 신뢰성·정비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절차와 기술, 지식기반 역량을 적용·통합하는 것”이라면서 “핵심은 심리적 담보가 아닌 신뢰도를 높이는 연구”라고 강조했다.
군수사는 현재 신뢰도 기반 정비(RCM)와 센서 기반 고장진단 및 예측기술 적용을 추진하기 위해 항기소를 중심으로 연구능력 확대와 분석 사례 축적에 나서고 있다. 특히 CBM+ 기반기술 확보를 위해 ‘대기 부식환경 모니터링용 시편 정량적 분석기법 연구’ ‘광섬유 센서 활용 복합재 수리구조 상태진단 및 결함예측 기술 개발’ ‘방공관제 레이더 상태진단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연구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국방 빅데이터 분석체계로 수집된 항공기 데이터를 분석해 경향성을 예측하는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CBM+는 예상을 통한 선제적 정비를 가능토록 한다. 지금은 신뢰도와 정보처리 기술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각 군 주요 장비의 센서 데이터를 활용한 CBM+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박 중령은 “센서데이터를 통해 수집한 정보가 누적되면, 이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선제적 예방정비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더 나아가 첨단기술을 정비현장에 활용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실시간 공정관리와 자동화 정비장비를 도입, 정비효율과 품질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작업자와 작업환경의 안전관리 기반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박 중령은 “앞으로 육·해·공군의 업무재설계(BPR)와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하는 등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장비 식별과 도입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취재 전 미리 받은 설명 자료를 보며 정비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의 결합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우리가 그리는 장밋빛 미래는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비의 진보’에 대한 현장의 고민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또 뜨거웠다. 물론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의 정비사, 연구실의 연구원들의 옆얼굴에서 무한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군의 정비는 반드시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글=맹수열/사진=이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