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의 ‘징비(懲毖)’ 정신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해군의 일원으로 보낸 지난 35년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징비의 연속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많이 방황했다.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소년가정이 되어야 했고, 살기 위해 주경야독의 삶을 선택했다. 21세의 어린 가장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해군 부사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사 계급장을 달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딸린 식구는 무려 10명이었다. 준비돼 있지 않은 어린 가장의 어깨는 무거웠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그런 나를 이해해준 것은 ‘해군’이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전단장님께서 자택을 방문해 격려해 주셨고, 같은 함정 전우들은 십시일반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내가 해군이었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삶의 안정기를 맞이했다. 그 안정은 해군에 대한 감사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나왔다. 해군에서 근무하며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자동차과에서 공부하면서 추기부사관으로서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했다. 더불어 자동차기능사부터 자동차기사까지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 엔지니어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20여 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 군 생활 속에서 연합훈련, 해외파병, 순항훈련 등 더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얻었다. 징비 정신으로 항상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고 살다 보니 부사관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준사관의 영예도 안게 됐다.
나는 지금 3년째 서애류성룡함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8년 국제관함식을 통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전 세계에 떨쳤다. 관함식 사전 행사로 진행했던 부대공개 행사에서 한 아이가 해군 제복을 보고 “해군이 되고 싶다”며 내게 필승을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징비 정신으로 환태평양훈련(RIMPAC)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함정이라 할 수 있는 서애류성룡함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2020년 11월 24일 오늘, 35년 군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족과 장병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서애류성룡함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31살이 된 아들이 “해군 아버지를 둔 것이 자랑스럽다. 존경한다”고 말했다. 평소 말이 없는 아들의 칭찬을 듣고 보니 군 생활에 대해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해군과 징비 정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내 삶의 시작은 비록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 끝은 창대했다. 해군이 있었기에 내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징비 정신을 통해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앞으로 남은 내 평생을 징비 정신으로 해군에 이바지하며 인생 2막을 항진해 나갈 것이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懲毖)’ 정신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해군의 일원으로 보낸 지난 35년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징비의 연속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많이 방황했다.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소년가정이 되어야 했고, 살기 위해 주경야독의 삶을 선택했다. 21세의 어린 가장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해군 부사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사 계급장을 달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딸린 식구는 무려 10명이었다. 준비돼 있지 않은 어린 가장의 어깨는 무거웠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그런 나를 이해해준 것은 ‘해군’이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전단장님께서 자택을 방문해 격려해 주셨고, 같은 함정 전우들은 십시일반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내가 해군이었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삶의 안정기를 맞이했다. 그 안정은 해군에 대한 감사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나왔다. 해군에서 근무하며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자동차과에서 공부하면서 추기부사관으로서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했다. 더불어 자동차기능사부터 자동차기사까지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 엔지니어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20여 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배움은 계속되고 있다. 군 생활 속에서 연합훈련, 해외파병, 순항훈련 등 더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얻었다. 징비 정신으로 항상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고 살다 보니 부사관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는 준사관의 영예도 안게 됐다.
나는 지금 3년째 서애류성룡함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8년 국제관함식을 통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을 전 세계에 떨쳤다. 관함식 사전 행사로 진행했던 부대공개 행사에서 한 아이가 해군 제복을 보고 “해군이 되고 싶다”며 내게 필승을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징비 정신으로 환태평양훈련(RIMPAC)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함정이라 할 수 있는 서애류성룡함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2020년 11월 24일 오늘, 35년 군생활을 마치는 전역식을 가족과 장병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서애류성룡함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31살이 된 아들이 “해군 아버지를 둔 것이 자랑스럽다. 존경한다”고 말했다. 평소 말이 없는 아들의 칭찬을 듣고 보니 군 생활에 대해 더욱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해군과 징비 정신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내 삶의 시작은 비록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 끝은 창대했다. 해군이 있었기에 내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징비 정신을 통해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앞으로 남은 내 평생을 징비 정신으로 해군에 이바지하며 인생 2막을 항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