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1950년대 후반 혼란기 개봉 영화 주제곡으로 인기

입력 2020. 11. 13   16:04
업데이트 2020. 11. 13   16:09
0 댓글

37. 1956 댄서의 순정

작사 김영일 /작곡 김부해 /노래 박신자


김부해 작곡·박신자 노래
민감한 가사에 몇 차례 금지곡 지정
조카 주현미 등 리메이크 하기도


<댄서의 순정>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인 1956년 개봉한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自由夫人)’의 주제곡이다. 가수 주현미의 큰어머니인 박신자가 주제곡을 불렀다. 혼란한 시기에 탄생한 이 노래의 음반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59년 신세기레코드 스플릿 음반 B-1300으로 발매된다. A면에는 박신자의 <댄서의 순정>, B면에는 윤일로의 <기분파 인생>을 실었다. 두 곡 다 춤과 관련한 노래다. 앞 노래는 김영일, 뒤 노래는 강남풍이 노랫말을 쓰고 김부해가 곡을 엮었다.

블루스 리듬의 <댄서의 순정>을 알토 색소폰으로 카바레에서 연주하면, 리듬을 타고 함께 돌아가는 상대방의 허리보다 더 낭창거리는 선율이 귓전에 와서 휘감긴다.

<댄서의 순정>은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를 해서 원곡에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1974년 김추자의 리메이크 곡은 인기 절정이던1975년에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아 금지곡이 됐다. 이후 1987년에 김추자는 다시 리메이크로 부른다. 1988년 조미미·서울패밀리·김도향이 리메이크하고, 1989년 나훈아·현철과 문희옥이 듀엣으로 불렀고, 1990년 이미자, 1994년 장사익에 이어 1998년 주현미가 23세로 요절한 큰어머니 노래를 조카이면서 후배 가수로서 다시 불렀다.

이 노래가 탄생한 1950년대 후반기는 춤바람이 사회문제가 됐던 시기다. 비어홀·카바레 등 밤문화와 관련한 클럽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났고, 6·25전쟁 통에 가장을 잃은 여성들이 생계 수단을 찾아 고향을 떠나 여급 또는 댄서로 살며 가족을 책임졌던 시대다.

우리나라에 춤바람이 불어온 시기는 6·25전쟁 휴전 후인 1954년 전후다. 미군정(1945~1948)과 6·25전쟁기간(1950~1953) 전이된 서양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삼성영화사가 제작한 영화 ‘자유부인’은 등록문화재 제347호로 한국영상자료원(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에 보관돼 있다. 1956년 6월 9일 수도극장(2005년 철거된 충무로 스카라극장 전신)에서 개봉한 ‘자유부인’은 배우 박암·김정림·노경희·주선태 등이 출연한 124분짜리 흑백 영화다.

줄거리는 대학교수 장태연(박암 분)의 아내인 정숙한 가정주부 오선영(김정림 분)이 양품점(파리양행)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젊은 남자(남편의 제자 신춘호)를 만나는 내용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

“나 같은 늙은이도 춤을 배울 수 있을까?” “왜 늙은이, 늙은이 하십니까? 아주머니는 젊고 아름답고 양장이라도 하시면 아주 스타일이 베리 굿일 겁니다.” 영화 ‘자유부인’에서 오선영이 남편의 제자 신춘호와 나누는 대화다. 이 영화는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1956년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1957년 속편이 만들어졌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리메이크 작품이 제작된 바 있다.

영화의 원작인 정비석(1911~1991, 평북 의주 출신, 본명 정서죽)의 소설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됐다. 대학교수(장태연)와 그의 아내(오선영)가 벌이는 엇갈린 로맨스가 작품의 골격이다. 가정주부 오선영은 춤바람이 나 불륜 직전에까지 이르고, 근엄한 학자 장태연은 미군부대 타이피스트 박은미와 야릇한 관계에 빠져든다. 소설의 인기는 대단해서 연재 기간 서울신문은 가두에서만 5만 부가 더 팔렸고,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단행본 상편(上篇)을 서둘러 출판한 정음사는 10만 부 이상을 팔았다.

<댄서의 순정>의 원곡 제목은 <땐사의 순정>이었다. 춤바람 난 당시 사회를 직설적으로 꼬집은 민감한 가사 때문에 몇 차례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1968년 공연윤리위원회는 가사가 저속하고 퇴폐적이란 이유로 금지 처분했다. 이후 6년이 지나 1974년 섹시 가수 김추자가 <댄서의 순정>으로 리메이크하면서 크게 히트했고, 지금도 <댄서의 순정>의 오리지널 가수가 김추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댄서의 순정>은 1975년 가사가 방송에 부적격하다는 이유로 다시 금지곡 이름표를 단다. 금지번호-651.

이후 1987년 금지곡의 족쇄가 완전히 풀리면서 김추자가 다시 리메이크로 부르고, 수많은 가수들이 뒤따라 리메이크를 한다. 가수가 뛰어나면 수많은 모창(模唱) 가수가 뒤를 잇고, 노래가 좋으면 리메이크 가수가 많아지는 것이 대중가요·유행가·트로트의 매력이다. 이런 노래가 오래 가고, 이런 노래가 국민애창곡이며, 이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국민가수, 가요황제가 된다.

<댄서의 순정> 작곡가 김부해는 1918년 양주에서 태어나 서울전매청 소속 취주악단에서 악단장을 하다가 가극단 꽃에서 색소폰 연주자로도 활동했다. 작곡을 시작한 것은 반야월의 남대문악극단 주제가를 작곡하면서부터고, 1953년 신세계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그는 <밤비의 블루스> <심야의 탱고> <대전 블루스>를 작곡했고, 1965년 김세레나를 <새타령>과 <갑돌이와 갑순이>로 데뷔시켰다. 1958년 김부해가요학원을 운영했으며, 1961년에는 연예인협회이사, 1962년에는 음악저작권협회감사를 지냈다.

대표곡으로는 <유정천리> <남원의 애수> <눈물의 연평도> <항구의 사랑> <아리조나 카우보이> <잊지 못할 영등포의 밤> 등이 있다. 1988년 향년 70세로 작고했고, 묘지는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 주내 파출소 뒷산, 무연고 묘지처럼 허물어진 봉분 아래 쓸쓸히 잠들어 있다.

<댄서의 순정>을 부른 원곡 가수 박신자, 23세에 요절한 그녀는 어느 하늘 모퉁이에서 빛나는 별일까? 조카 주현미의 간들어진 목청,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댄서의 순정>에 걸쳐보고 있지나 않을까?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예비역 육군대령>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