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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독자마당] 항일투쟁의 불꽃, 최 페치카

입력 2020. 11. 06   15:57
업데이트 2020. 11. 0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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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육군52사단 가락본동대장
한동훈 육군52사단 가락본동대장

지독한 가난에 굶주린 천인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고 한다면 논리적 모순이라 말하며 코웃음 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반증하듯 신분적 한계와 빈곤이란 벽을 부수고 차디찬 시베리아의 냉기를 따스한 민족애로 녹인 최재형은 그의 별칭인 최 페치카(난로)와 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항일투쟁의 불꽃이었다. 최재형의 일대기를 통해 받은 세 가지 자극이 있다.

첫째, 자산가로 성장하는 과정과 부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메시지다. 생계를 잇기 위해 건너간 러시아, 내세울 것 없었던 노비 집안이기에 선택한 가출과 6년 동안의 선원생활은 그에게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이 됐다. 모든 것이 익숙지 않은 타지임에도 적응력과 근면·성실은 최재형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축적한 부를 재러시아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국내외 의병조직의 재정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했다. 이는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부순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 타국인 러시아에서 최초 얀치혜 남도소의 도헌(군수)에 임명됐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다. 러시아가 인정한 자치기구의 대표로 임명됐다는 것은 러시아에서 가장 신임받는 한국인이란 의미인 동시 한인사회에서도 큰 신망을 얻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최 페치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러시아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계몽 및 경제운동을 주도했다는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동포들을 위해 더 애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동의회 결성을 통해 항일투쟁의 심장을 뛰게 하는 도화선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비록 정규군은 아니지만 끈질긴 저항의식에서 비롯한 의병봉기는 애국충정의 표상일 뿐만 아니라 군인정신의 정화로서 높이 평가된다. 러시아라는 타국에서 애국심에 기반한 재러 동포들의 연대의식은 의병활동으로 표출됐고 그 중심에는 최재형이 있었다. 의병투쟁이 조직적인 전투를 지속해 당시 전쟁의 대세를 바꾸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재러 동포들을 규합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를 지키고자 한 숭고한 호국의지가 표출되었다는 점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본다.

자기희생과 헌신은 자기중심에서 탈피해 타인을 위한 삶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군 장병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출발점인 이타성은 개인의 안위를 초월하는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선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최재형이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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