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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종교와 삶] “소는 누가 찾아? 소는!”

입력 2020. 11. 03   16:07
업데이트 2020. 11. 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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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철 공군38전투비행전대 군종실 군종장교·법사·대위
이 성 철 공군38전투비행전대 군종실 군종장교·법사·대위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웃음을 전하는 코미디, 그것도 이미 지나간 방송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진한 웃음의 페이소스를 이끌어 내는 무대 한 판을 통해 현실의 응어리를 내려놓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얼마 전 브라운관 너머로 사라진 콘서트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의 재치있는 입담들은 코로나 블루에 빠진 세상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내 귀를 즐겁게 했다.

“우리 때는 말이야-!”,“소는 누가 키워? 소는!” 갓 입대한 장병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지금 사회에서 야기되는 여러 갈등의 체험판 같았던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다.

고대는 물론 불과 50여 년 전까지도 소(牛)는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재산이자 인간과 희로애락을 나누던 또 하나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고대 인도의 승려들과 달리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에 내몰렸던 동북아시아 승려들에게 소는 출가 이전 경작의 기쁨을 함께 나눴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쟁기를 짊어지게 할 수 없는, 익숙하지만 가깝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마음을 찾는 수행을 외양간을 뛰쳐나간 소를 찾는 것에 빗대 표현하는 심우도(尋牛圖), 수행자는 물론 농경으로 일상을 꾸려나갔을 대다수 불자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공통분모라는 점에서 그러한 모티브의 출현은 동북아시아 불교사에서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불교가 숭상하는 임제선의 잔향이 짙게 밴 곽암의 심우도 속 소와 목동은 각각 깨달음과 인간의 또 다른 페르소나다. 열 개로 나눠진 그 심우도의 시퀀스 가운데 깨달음과 인간의 탈주와 추격은 엇갈리며 이어지나 여섯째 장면에서 종료된다. 그러나 일곱 번째 장면부터 소와 목동을 연기했던 깨달음과 인간은 어느새 문턱을 넘어 잊고(忘) 돌아선다(還). 그리고 마침내 ‘깨달은 인간’의 마지막 행위는 세상에 들어서는 (入) 일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코로나 블루의 짙은 안개 사이에서 우리는 헤매고 있다. 때로는 부딪히고 종종 길을 잃을지라도 한 발 한 발 잘 내디디고 있다고 믿는다. 오리무중이면 어떠랴. 3리라도, 단 1리만 보일지라도 심우도의 목동처럼 차근차근 찾아 나간다면 수치(數値)와 욕망(欲望)으로 놓쳐버린 각각의 소 곁에 닿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버리고 돌아설 때 또 다른 깨달음으로의 길이 열려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한 복습에 자신감이 붙어 회심의 개그 하나를 노상에서 만난 법우들에게 시도했으나 이내 그들은 심우도 속 소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소보다 감부터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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