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견장일기

[염수현 견장일기] 칼의 무게를 담을 힘을 기르다

입력 2020. 10. 29   16:09
업데이트 2020. 10. 29   16:12
0 댓글
염 수 현 해군 박위함·대위
염 수 현 해군 박위함·대위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배어나니 천하가 피로 물들었다’는 글귀가 새겨진 이순신 제독의 칼은(보물 326호) 길이가 사람 키보다 긴 2m에 무게가 6㎏에 이른다.

군인들이 장성으로 진급 시 대통령에게서 하사받는 칼(삼정검)은 길이가 1m에 무게가 3㎏ 정도다. 일반적인 칼의 무게가 1㎏ 내외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두 종류의 칼 모두 보통 사람이라면 들기조차 힘든 무게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긴 글 중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라’는 문구가 있다. 권한에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뜻이며 권한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 또한 커진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이순신 제독이 지닌 칼과 장성들이 하사받는 칼의 무게는 이러한 책임과 의무의 무게와 그 의미가 같지 않을까.

2010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사관학교 1학년 생도로서 생활을 시작한 후 어느새 연수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닥을 의미하는 사관생도 1학년 바텀(Bottom)일 때는 나 하나 혹은 동기들만 신경 쓰면 됐다. 임관 후 소위가 된 후에도 내가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이 대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었다. 혹여나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미치는 결과는 주로 나 자신이나 예하 직별에만 그쳤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다양한 직책을 경험해 나아가던 중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행동과 판단에 영향을 받는 인원과 그 파급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만 가는 영향력에 비해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까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쯤 해상전 고등군사반 교육에 입교하게 됐다.

해상전 고등군사반 교육은 해군 교육사령부에서 대위를 대상으로 약 4개월간 진행하는 교육이다. 참모업무, 국제법 및 군수 관리 등의 일반과목에서부터 대잠전, 국지도발대비작전 및 작전계획 등의 전술 과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학습한 후 각 분임 별로 선정된 주제에 대해 토의하고 매주 그 결과를 발표하는 토의식 수업으로 진행된다.

이 교육을 통해 다양한 선·후배 장교들과 수업을 듣고 토의를 하며 평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진지한 고민 없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외우고만 있던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그로부터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선후배 장교들과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보다 깊고 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해보지 않은 직책에 대해서까지 알게 됨으로써 더 늦어지기 전에 나의 능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군사적·외교적 측면에서 많은 소식을 들을수록 새로운 고민이 앞서면서 ‘내가 과연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들 속에서 이겨낼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지니고 있을까?’ 라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고민은 나를 더 교육에 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 배워가면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자랑스러운 충무공의 후예임을 자각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로움을 키울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수호’라는 책임의 엄중함을 느끼며 지휘관으로서 짊어지고 가는 칼의 무게를 견디고 주어진 임무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