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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신인호

입력 2020. 11. 08   16:32
업데이트 2021. 11. 0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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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베를린장벽은 그 존재, 그 이름만으로도 냉전의 상징이었다. 동독 국민은 눈부시게 성장하는 서독을 동경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에 실패해 죽은 이도 적지 않았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체제를 굳건히 해주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민들에게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1961년 8월 13일 하룻밤 사이에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철조망 담장으로 시작된 베를린장벽은 동구권의 개방과 자유화 물결이 급류를 이루던 1989년 어느 날 실수로, 혹은 천우신조로 무너졌다.

1989년 에리히 호네커의 실각을 전후로 동독 사람들은 언론 자유화, 여행 개방을 주제로 매주 시위를 벌였다. 동독 지도부는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여행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고 1989년 11월 9일 오후 6시58분쯤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사실 회견 자체는 알맹이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발표자인 정치국원 귄터 샤보브스키(1929~2015년)는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말했고, 이탈리아 기자가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라고 묻자 그는 “지연 없이 즉시(Sofort, unverzuglich)”라고 답했다.


회견하는 귄터 샤보브스키. 사진 = EPA
회견하는 귄터 샤보브스키. 사진 = EPA


이것은 그의 실수였다. 여행 규제 완화 정책을 심의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그는 ‘완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TV를 보던 시민들은 이 내용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고 인식했고, 장벽으로 뛰쳐나왔다. 군인들이 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내 국경을 개방해야 했다. 시민들은 장벽을 통과했고 망치를 들고 부수기도 했다. 장벽이 붕괴된 것이다. 


그해 1월만 해도 동독에서는 그 누구도 장벽이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 서기장은 “장벽이 50년이나 100년은 더 버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벽은 무너지고 그 후 1년도 채 안 된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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