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상승백마’ 전통 잇는다”

최한영

입력 2020. 10. 23   17:44
업데이트 2020. 10. 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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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9사단 창설 70주년 특집

전쟁 한창이던 1950년 10월 창설
치열한 고지전 끝에 백마고지 사수
현장서 작전 종결 대응태세 완비
장병 인권 보장·다양한 대민지원

지난 23일 열린 육군9사단 창설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동호 사단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단 창설 후 현재까지 모신 8946위의 전사자 명부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지난 23일 열린 육군9사단 창설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동호 사단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단 창설 후 현재까지 모신 8946위의 전사자 명부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육군9사단이 25일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6·25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와 베트남전쟁 파병 등으로 위상을 드높인 사단은 앞으로도 실전적인 교육훈련으로 ‘명품 백마부대’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다는 방침이다.


6·25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 승리

사단은 6·25가 한창이던 1950년 10월 25일 서울 청계초등학교에서 창설했다. 창설 후 지리산, 매봉·한석산 등에 투입된 사단은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의 삼각지대’에서 벌어진 백마고지 전투에서 이름을 드높였다. 백마고지 전투는 포탄 27만여 발이 쏟아져 표고가 1m 낮아지고 고지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6·25 전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다.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진 395고지를 하늘에서 보면 ‘한 마리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 해서 백마고지라고 명명될 정도였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중공군 3개 사단에 맞서 악전고투 끝에 무명 395고지를 사수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투 후 ‘상승백마(常勝白馬)’ 휘호와 함께 사단의 무훈을 격려했다.

사단은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해 21만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했으며 이후에도 국가적인 위기 때마다 최선봉에 섰다. 이에 힘입어 사단은 지난해까지 16회의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6·25전쟁 당시 육군9사단 장병들이 백마고지를 사수하고 있는 모습.
6·25전쟁 당시 육군9사단 장병들이 백마고지를 사수하고 있는 모습.


작전환경 변화 대응 노력도

사단은 자유로·통일로 등 유사시 적이 단시간 내에 수도권에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책임 지역으로 두고 있다. 장병들은 북한과 지척인 한강과 임진강을 동시에 경계하며 부여받은 소임을 다하고 있다.

작전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 5월 취임한 김동호 사단장을 중심으로 국방개혁 2.0에 기반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강안경계작전에 중·단거리 폐쇄회로(CC)TV 등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시간 감시·결심·타격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입영장정 감소에 대응한 부대 개편과 전력 공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신형 무인감시정찰기(UAV) 도입, 105㎜ 차량화 자주포 전력화 등도 시행하고 있다.

실전적인 교육훈련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백마부대 육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전 장병 특급전사 달성, 일일 체력단련 활성화, 전투형 체력단련 강화로 장병들이 강인한 체력을 기르도록 하고 있으며 초동조치 대응능력을 높여 현장에서 작전 종결이 가능한 대응태세도 완비하고 있다.

간부들에게는 ‘생각하는 전투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다양한 전장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을 ‘사전불퇴 백마의 날’로 제정해 사전불퇴(死戰不退·죽음을 각오하고 결코 물러나지 않음) 정신을 고양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간부 내적 가치 신념화 교육’을 시행해 올해 육군본부의 내적 가치 우수부대로도 선정됐다.



국민 신뢰 받는 백마부대

장병 인권을 보장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단이 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업무문화 정착과 병영환경 개선, 문화활동 등을 통해 ‘내 집과 같이 머물고 싶은 편안한 병영’을 조성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과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지원했으며 최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대민지원도 하고 있다.

사단은 앞으로도 선배 전우들의 희생정신, 국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해온 역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 사단장은 지난 23일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창설 70주년 기념행사 기념사에서 “‘백마고지 전사의 후예’로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백마부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글=최한영 기자/사진=부대 제공



[9사단이 배출한 전투영웅] 

백마고지서 중공군 3개 사단 격퇴
김종오 장군 


 



김종오 장군은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육군에 큰 족적을 남긴 전쟁영웅으로 꼽힌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졸업 후 육군소위로 임관했으며 6·25전쟁 발발 당시 6사단을 지휘했다. 6·25전쟁 중 2·8대 9사단장을 역임했으며 1952년 백마고지 전투 당시 사단장으로서 “여기에 우리의 뼈를 묻자”고 훈시하며 중공군 38병단 예하 3개 사단을 격퇴했다.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고 육군대장으로 예편했다. 태극·을지·충무 무공훈장을 수훈했다.

1951년 정선서 적 3개 여단 격멸
장경석 장군



장경석 장군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5기)를 졸업하고 포병장교로 임관했다. 6·25전쟁 당시 사단 예하 30포병대대장으로서 1951년 3월 강원도 정선군 송계리에서 야음을 틈타 철수하는 적 3개 여단에 집중 사격을 가해 격멸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8·36사단장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했다. 을지·충무·화랑무공훈장, 홍조근정훈장, 보국무공훈장, 미국 동성훈장 등을 수훈했다.


베트남전서 전사 태극무공훈장 수훈
송서규 대령



송서규 대령은 1957년 갑종 7기로 임관했으며 1966년 29연대 2대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1967년 닌호아 작전에서 마을을 포위한 월맹군과 교전 중 6중대 중대장·소대장이 모두 전사하자 직접 중대를 지휘하며 전과를 올렸으나 11월 6일 적탄을 맞고 전사했다. 전사 후 대령으로 추서됐으며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최한영 기자 < visionchy@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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